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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Apr 13. 2025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을 흔드는 무료 카지노 게임 유치환

힘겹게 오른 그곳에서 무료 카지노 게임를 만나다.

"진실한 시는 마침내 시가 아니어도 좋다."


청마문학관 입구에 적힌 글이다. 이 글을 읽고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진실한 시라면시의 형식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이미 시인 것이라는 말일까?


청마문학관은 통영의 바다가 내려 보이는 망일봉 언덕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뒤로는 유치환의 생가가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처음 도착해서 느낀 것은 전용 주차장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과 돌계단을 통하지 않고는 문학관에 접근할 수 없다는 불편한 마음이었다. 가뜩이나 바로 전에 다녀온 박재삼 문학관도 접근이 가까운 곳은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곳에서 똑같은 마음을 느꼈다. 당연히 휠체어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주차장을 돌아보니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잘 검토해 보면 주차장의 가장 먼 구석에서 출발하여 한차례 굽어지면서 문학관까지 오를 수 있는 경사길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일 경사로로 인해 주차 면 수가 줄어들 것이 걱정된다면, 지금의 돌계단이 있는 자리를 조금 깎아내고 축대를 쌓은 후, 그 축대에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시를 몇 편 새겨 넣으면 깎여 나간 돌계단 부분에 주차 면 수도 늘릴 수 있을 것이고, 시각적으로도 훨씬 보기 좋을 것이다.게다가 더운 여름이나 눈 내리고 추운 겨울의 관람객을 위해서라면 경사로의 윗부분을 캐노피로 덮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그저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하는 아내를 생각하다 보니 떠오르는 상상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돌계단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아내의 손을 잡고 올랐다. 중간에 한차례 쉬었다가 올라가려니 몇 개 되지도 않는 계단이 왜 그리 많게 느껴지던지. 아무튼 그렇게 계단을 다 오르니 정면에 사무동이 있고 작은 잔디 정원 건너 왼쪽으로 무료 카지노 게임이 보였다. 다 오르고 나니 이제는 내려갈 일이 까마득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을 방문한 이야기를 쓰면서 이런 부분은 꼭 언급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무료 카지노 게임 방문을 결심한, 무릎이 성치 않은 관람객들은 미리 염두에 두고 찾아가시라는 뜻이다.


문학관은 단층의 건물 내부를 한 공간으로 별도의 구분 없이 구성되어 있었다. 많은 전시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문학관에서와는 다르게 벽면 한쪽에 무료 카지노 게임 시장(靑馬 詩欌)이라는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물이 있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작품 중에서 선별한 시들을 인쇄하여 아크릴판에 붙인 후 그 아크릴판을 마치 장롱 안에 세워서 보관하듯 켜켜이 세워서 끼워놓은 것으로 관람객은 편하게 아크릴판을 뽑아서 시를 감상한 후 다시 제자리에 끼워 넣으면 되는 그런 구조였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중 몇몇 판을 꺼내어 시를 읽어 보았다. 그 이외에 직접 쓴 시집, 산문집을 비롯하여 육필 원고와 편지, 유품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청마의 시라고 하면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시작하는 깃발 이외에 기억에 남는 시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청마의 문학적 위상과 가치에 비해 나에게는 초라한 기억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 내가 문학관에 와서 느낀 것은, 다른 어느 문학관보다 시인의 작품을 손쉽게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청마 시장(靑馬 詩欌)에는 60편이 넘는 시가 관람객 마음대로 꺼내 읽어 볼 수 있었고, 전시실 내부의 다른 벽면에도 A4 용지 정도 크기에 시가 인쇄된 종이가 빼꼭하게 부착되어 있었다. 덕분에 전혀 몰랐던 청마의 작품도 손쉽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전시물들은 주로 벽을 빙 들러 설치되어 있었고 전시실 중앙은 관람객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아무런 전시물이나 조형물이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흔히 보통의 전시실에서는 전시물을 건드리기라도 할까 봐 이동이 조심스러운 법인데, 이곳에서만큼은 그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주의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한국 문학사의 거목인 무료 카지노 게임는 1908년 경남 거제에서 출생하였다. 극작가인 동랑 유치진이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맏형으로, 형제에게는 예술적 자질이 충만했음을 알 수 있다. 1930년 〚문예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 후, 1939년 첫 시집인 <무료 카지노 게임시초를 출간한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생애를 읽어가다 보니 왜 그렇게 문인들은 교직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 많은지 궁금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의 강단에 선 문인들까지 포함하면 내가 지금까지 다녀온 문학관의 문인 중 거의 절반 이상이 교직 출신이었다. 사소한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소한 궁금증이 일었다.


청마는 총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총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록을 출간한다. 청년문학가협회 제1회 시인상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 많은 수상 실적을 남기고 1967년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60세라는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청마의 시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초기적 시는 일제 탄압에 맞서 대항하지 못한 시인의 회한과 내적 갈등을 극복해 가려는 의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시기의 시집 <생명의 서에서는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모순에서 비롯되는 허무에 대한 인식과 조국을 상실한 망국민으로서의 회한을 노래하고 있었다. 중기적 시에서는 조국과 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애국 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쟁의 비인간적 실상을 고발하는 현실 참여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신(神)에 대한 성찰을 문제로 삼기도 한다. 1960년대에 이르러 청마는 시를 통해 인간성 옹호의 정신을 실천하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면목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청마는 삶과 시 세계에서 인간의 삶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문학정신을 보여준 시인이다.


전시실을 나와 왼쪽 언덕 위에는 생가로 오르는 역시 돌계단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아내는 더 이상 오를 생각도 못 하고, 나보고 혼자 다녀오라고 한다. 돌계단을 오르니 깨끗하게 단장되어 복원된 생가가 보인다. 의약당으로 쓰이던 본채와 또 하나의 초가집이 시옷자 형태로 늘어서 있었다. 생가를 돌아보고 내려갈 때를 생각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올라왔던 돌계단 옆의 다른 입구로 나가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쪽은 오히려 더 좁은 계단이었다. 결국 난간을 붙잡고 엉금엉금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가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향했다.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조금은 아쉬웠던 진입로를 지닌 무료 카지노 게임이었다.



전시실 벽면에 붙어 있던 시들 중에서 몇 개를 골라 보았다.



항구에 와서


바다 같은 쪽빛 깃발을 단 배는

저 멀리 바다 너머로 가버린 지 오래고

포구에는 갈매기 오늘은 그림도 그리지 않고

멀거니 푸른 하늘엔 고동도 울리지 않고

선부들은 이렇게 배들을 방축에 매어 둔 채로

어디로 다들 피하였는가.

그늘진 창고 뒤 낮잠 자는 젊은 거지 옆에

나는 뉘도 기다리지 않고 앉았노라



오월우(五月雨)


어드메 요란(撩爛)한 화림(花林)을

낭자하게 무찌르고 온 비는 또

나의 창 앞에 종일을 붙어 서서

버럭지처럼 무엇을 조르기만 한다.



구배(勾配)


그 구배에선 반짝이는 바다가 보이고

구배를 내려가면

해저같이 별다르게 환한 시가(市街)

거기서 사람들은 인어같이 상가(商賈)하고

해가 지면

아무것도 안 뵈는 어둔 이 구배를

안벽(岸壁)인 양 사뭇 기어올라 오는

패류(貝類)처럼 노한 슬픈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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