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문학관은 사천시 삼천포항과 삼천포대교 사이에 있는 노산공원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노산공원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낮은 언덕이지만, 평지가 아닌 만큼 문학관에 접근하기가 편하지만은 않다. 물론 내가 여러 문학관을 다녀오면서 문학관 가까이 주차장이 없는 문학관도 몇몇 보았지만, 박재삼 문학관은 특히 걸어서 오르지 않으면 찾아갈 수 없었던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아내도 무릎이 편치 않았던 까닭에 고민했는데, 하물며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의 접근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문학관으로 접근하는 길은 노산공원을 빙 둘러서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이 세 곳, 그나마 완만한 경사로로 이루어진 길이 두 곳 있었는데, 우리도 해안을 끼고 올라가는 경사로를 이용해서 공원에 올랐다. 중간에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삼천포 아가씨 동상과 물고기들을 주제로 제작한 조각상, 그리고 바다를 향한 작은 정자가 하나 있어서 사람들이 곧잘 이용하는 것 같았다. 정상으로 가는 산책로에는 벚꽃과 동백꽃이 즐비했고 문학관 초입에는 박재삼 시비가 우리를 반겼다.
무료 카지노 게임 문학관은 3층 건물로, 1층은 전시실, 2층은 세미나실, 기회전시실로 이용되는 다목적실, 그리고 관람객을 위한 어린이 도서관 및 휴게실과 문인들의 창작 공간으로도 이용되는 3층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의 무료 카지노 게임 좌상이 있는 벤치에서 사진을 찍고 문학관 안으로 들어갔다.
박재삼은 일본 동경에서 태어났으나 곧바로 가족이 모두 귀국하여 삼천포에 자리 잡게 되면서 유년 시절을 바닷가에서 보냈다. 중고등학교까지 삼천포에서 지낸 시인을 바다가 낳은 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삼천포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모윤숙 시인의 추천으로 시조 ‘강물에서’를 ‘문예’지에 발표하게 된다. 박재삼은 특히 겨레의 정(情)과 한(恨), 삶에서의 기쁨과 슬픔을 그만의 특이한 목소리로 노래하였다. 문학관이 노산공원에 세워진 이유는 박재삼 시인이 생전에 자주 올라 시심을 기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박재삼은 김소월, 김영랑으로부터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등의 청록파로 이어지는 순수 서정시인의 정통을 이어받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박재삼은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시를 썼다고 한다. 특히 광복과 한국전쟁 등의 시기를 겪은 서민의 감정을 아름다운 운율로 표현했다. 박재삼 시인의 시의 주제적 측면에서 보면 가장 슬픈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한’과 ‘슬픔’의 정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 ‘한’과 ‘슬픔’은 햇빛, 나무, 땅, 물, 바람과 같은 자연적인 소재와 자연의 의미를 통해 형상화되었다가 사랑의 힘으로 극복되는 구조로 발전한다. 결국 후기 시로 가면 갈수록 ‘한’과 ‘슬픔’의 근원으로 ‘허무’를 깨달으면서 ‘허무’를 수용하는 형태로 ‘한’과 ‘슬픔’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 외에 전시물 중에 박재삼을 기억하는 벗, 후배, 부친, 글 친구들의 추억을 보여줌으로써 전시물을 감상하는 관객을 박재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재삼이 소설도 쓰고 싶어 했지만,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한 줄의 글이라도 완벽을 추구했기 때문에 원고지 몇백 매, 혹은 몇천 매의 글을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었다든지, 박재삼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삼천포 생활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가장 곱고 깊게 가르쳐 준 선배였다는 고향 후배의 말이나, 박재삼처럼 제 고향 삼천포를 아름답게 노래한 시인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던 글 친구들의 말로 미루어 짐작하더라도 박재삼은 영원히 삼천포의 자연과 고향 사람의 한과 슬픔의 정서를 사랑한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자신만의 인생관으로 삶의 괴로움을 극복하는 시를 꾸준히 써온 박재삼은 생전에 15권의 시집과 10권의 수필집을 남겼다. 박재삼은 삼천포 문학상과 시인으로서는 특이하게 바둑문화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시를 잘 쓰기 위한 비법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박재삼은 이렇게 말한다. ‘비법은 없다. 다만, 많은 문학 체험과 꾸준한 연습, 반복된 수정이 중요하다. 깊고 풍부한 사고능력과 사물을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볼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생명의 근원지인 자연에서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시를 잘 쓰기 위한 비법은 없지만, 다양한 노력을 통해 본인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시인 지망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나도 잘 몰랐던 박재삼 시인의 시를 몇 편 소개하겠다.
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울음이 타는 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춘향이 마음에 초(秒)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 아는 내마음의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뻗은 채
참말로 참말로
사람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웃어진다 하겠네
재미있는 것은 노산공원 주변의 주차 행태이다. 특별한 주차장 시설은 없고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냥 공원을 오르는 계단이나 경사로 근처 아무 곳에나 질서 있게 차를 세우면 된다고 한다. 이런 것은 정말 편리해 보였다. 사실 차로 지방을 다니면 주차 문제가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자차로 문학관에 다녀오실 분이 있다면 참고하시라는 뜻에서 몇 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