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장바구니는
늘 반쯤 비어 있었어
매일 보는 장인데
가득 채울 일이 없었거든
대신 잔술을 가득 채우고
연거푸 한잔 두잔
벌게진 얼굴로 딸집에 얹혀사는
신세타령이 저물도록 이어졌지
축 늘어진 젖을 빨면
기적처럼 매달린 하얀 이슬방울
잔에 가득 찬 젖을 달라 칭얼대면
설탕 넣어 한 모금 마시게 해 줬어
할미와 내가 함께 취해 휘적휘적
붉게 취한 해가
우리를 휘적휘적 따라왔지
장마가 길어지면
감자 고랑 이마에 깊숙한 할머니
강원도 새색시 속살 같은
뽀얀 감자를 강판에 갈았어
한 장을 부치고 한 잔을 마시고
그렇게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진흙같이 흐믈해진 세월을
서럽다 우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