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약관의 나이에 전쟁에 참여할 수 있을까?
그것도 나의 조국이 아닌 이역만리 타국이라면......
나는 그와의 만남을 그런 물음으로 시작했다.
역사시간에 책으로 배웠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로부터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어렸을 때나 들었을 법한 기억뿐이었다. 매년 현충일 '똘이장군'이라는 만화영화가 방송될 때면 그것을 그냥 재미로만 봤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쟁이라는 참상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로서 그렇게 전쟁은 나와는 먼 나라 이야기 같기만 했다.
그런데, 2022년 우연히 해외 한국전 참전용사를 국내로 초청해야 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아무런 배경지식도, 관련 자료도 없는 상황에서 우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찾다 보니 여러 참전용사들에 대한 기사와 자료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연락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관련기관에 문의도 해보고 연락처를 얻어보려 했지만 개인정보라서 접근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우연히 해외 참전용사의 후손들이 우리나라 정부의 도움으로 유학을 온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Facebook과 인스타그램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카밀로라는 학생의 페북 계정을 찾았다. 그 즉시 내 소개와 함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DM을 한국어와 영어로 보냈다. 오래지 않아 그로부터 영어로 답변이 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 용산역에서 그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19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카밀로라는 이름의 콜롬비아 출신의 학생이 내 앞에 나타났다.
서툰 한국말로 나에게 인사를 한 그는 곳 바로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 역시 이 프로젝트의 취지와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가 초청하려는 해외 참전용사에 대해서도 설명을 곁들였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한국전 발발 70주년이었던 2020년에 추진하려 했던 행사였으나 코로나로 인해 늦춰져서 2022년에 추진되게 된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 줬다. 유추해 보면 한국전에 참석했던 참전용사들은 적어도 연세가 90 전후가 되어 장거리 비행과 이동이 쉽지 않다고 설명을 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No Problem'이라고 답 했다.
그리고는 휴대폰 속 영상 한편을 보여줬다.
영상 속 노인은 90이 넘은 연세임에도 정정했고 활력이 넘쳐 보였다. 그가 하려는 대화 속에는 여전히 힘이 넘쳐 보였다. 그는 바로 카밀로 학생의 무료 카지노 게임(Marco)였다. 마르코 무료 카지노 게임는21살 때인 1952년한국전 참전을 위해 약 두 달가량군함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오사카와 부산을 거쳐 한국에 도착하여 콜롬비아 소속 UN군으로서 경기도 연천 전투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었다. 마르코 할아버지를 이번 프로젝트에 초청하기로 하고 당사자인 마르코 할아버지의 의견을 확인해 달라고 제안하고 그 후 며칠을 더 기다렸다. 며칠 뒤 카밀로로부터 연락이 왔다. 예상대로 '본인(마르코 할아버지)을 한국에 초청해 줘서 고맙다'는 전언이었다.
그리고 석 달 뒤 마르코 할아버지와 그의 며느리(카밀로의 어머니)가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을 했다.공항에 마중을 나간 나는 그들을 열렬히 환영을 해줬다. 그리고 함께 마중 나왔던 카밀로는 몇 년 만에 만나는 마르코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는 눈물바다를 이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마르코 무료 카지노 게임와 일행을 식당으로 모신 뒤 무료 카지노 게임께 70여 년 만에 한국에 온 소감을 물어봤다.
'초청해 줘서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내가 참전했던 한국이 이렇게 발전했다는 것에 너무 놀랍다'는 말을 스페인어 통역사를 통해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한 번 마음 한편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물론 해외 파병, 참전은 물론 그냥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참전 수당을 받았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20살의 나이에 내 조국도 아닌 타국의 전쟁에 참전할 수 있겠냐고 묻는 다면 당연히 쉽사리 답을 못할 것이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적지 않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그 당시 각국에서 온 유엔군들은 목숨을 걸고 참전을 했고,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지켜준 분들이기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1952년 21살이었던 마르코가 한국전에 참전을 했고 70여 년이 흐른 지금, 그의 손자(카밀로)가 한국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서 유학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수많은 마르코 할아버지들의 헌신에 감사하기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마르코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그의 손자 카밀로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안정적인 직장을 갖도록 추천서를 써주기도 하는 등 그의 후원인이자 선생님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봤자 마르코 무료 카지노 게임의 희생에 비할바가 못 될 것이기에......
그리고, 지난 3.1절마르코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정정했던 마르코 무료 카지노 게임께서 갑자기 노환(약 94세)으로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May he rest in peace'라는 말로 카밀로에게 위로의 인사를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