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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 Lee Apr 03. 2025

[EAT] 소울푸드

겨울의 맛 : 무료 카지노 게임

식구(食口):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게도 현대의 많은 식구들은 한 집에 살면서도 끼니를 같이 하지 못한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아침, 직장으로, 학교로, 쫓기듯 나가는 남편과 아이들이, 같은 시간에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점심 식사도 각자 회사 구내식당, 학교 급식실, 또 집에서 먹게 된다. 그나마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저녁 시간마저도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학원 일정 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주말에도 네 식구가 한 식탁에서 마주 보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많아야 겨우 두 세끼 정도다.

그러다 보니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 다 같이 밥을 먹는 때면 메뉴 선정에 신중해진다. 아이들이 밖에 음식을 먹는 일이 워낙 잦아지다 보니, 기회가 있을 때면 양질의 재료로 집밥을 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은 배달 음식을 주문하거나 외식하고 싶어 하는 때도 많은데, 그러면 몸은 편하지만 사실 마음은 불편하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엄마 표 된장찌개, 간장 닭고기 조림, 김치볶음밥 대신 ‘엄마가 시켜주던 투움바 치킨’, ‘엄마가 시켜주던 로제 마라 떡볶이’나 기억하는 건 아닐까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런 상상은 친정 엄마가 해 주셨던 추억의 음식은 뭐가 있었나, 동생이랑 아빠, 엄마와 뭘 많이 먹었었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김장 김치가 폭 익어 그 맛이 제대로 드는 1-2월, 추운 겨울이면 엄마가 자주 해 주시던 김치밥. 기름기 없는 돼지고기 부위는 숭덩숭덩 한입 크기로 자르고, 씻어 불린 흰 쌀과 섞어 압력 밥솥에 안친다. 새콤하게 맛이 든 김장 김치의 배춧잎은 배추 고갱이처럼 노르스름 해지는데, 그 노릇한 색이 드러날 때까지 양념을 잘 씻어낸다. 그리고 역시 한입 크기로 쫑쫑 썰어, 돼지고기와 흰 쌀을 덮을 만큼 수북하게 쌓아준다. 씻은 김치에서는 아무래도 수분이 나오니, 평소보다는 물을 덜 잡고 보글보글 강불로 끓이다 압력추가 치익 치익 소리를 내며 끝까지 올라가면, 약불로 10분을 더 끓인다. 불을 끄고 10분 정도 뜸을 들이고 나면 김치밥은 완성이다. 압력솥밥의 뚜껑을 열면 마구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에는 이미 침이 꼴깍 넘어갈 만큼 맛있는 냄새가 한가득 배어 있다.

김치밥의 짝꿍은 마늘 양념장이다. 간장, 고춧가루, 깨, 참기름과 같은 기본 간장 양념장을 만들고 다진 마늘을 듬뿍 넣어 만든다. 고루 뒤적여 김치, 고기, 밥이 고루 섞인 김치밥을 커다란 면기에 가득 푸고, 마늘 양념장을 취향껏 뿌려 비벼 먹으면, 새콤한 김치 맛, 고소한 돼지고기 맛, 알싸한 마늘 맛이 입 안에서 아우성친다.


김치밥은 이북식 음식이다. 엄마는 결혼을 하고야 김치밥을 처음 먹어봤고, 너무 맛있어서 엄마의 시어머니이자 나의 할머니께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하셨다. 이미 맛있는 김장 김치와 돼지고기의 조합이니, 요즘 말로 맛없없-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엄마는 별다른 반찬 없이, 김치밥과 함께 마늘 양념장과 차가운 동치미 김치의 무, 고추를 곁들여 주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네 가족이 무조건 두 그릇을 먹어, 김치밥을 할 때면, 엄마는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양의 밥을 하셨다고 했다. 또 강력한 마늘 양념장 덕분에, 김치밥은 늘 저녁 단골 메뉴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해 주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친정에 자주 가다 보니, 아이들도 김치밥 먹을 일이 왕왕 있었다. 씻어낸 김치가 들어간 밥이라 맵지도 않았고 고기도 들어 아이들은 곧잘 맛있게 먹곤 했지만, 어렸을 때의 나처럼 겨울마다 주기적으로 먹지는 않다 보니, 겨울이 된다고 딱히 그 맛을 그리워하거나 찾지는 않는다.

그런 아이들과는 달리, 친정 아빠는 아직까지도 추운 겨울, 지글지글 아랫목에 아빠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소반에 둘러앉아 다 같이 김치밥을 먹었던 일을 기억하신다고 했다. 이렇듯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리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 추억이 되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도 몸도, 마음도 추운 어느 날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온 가족이 함께 푹푹 퍼먹던 김치밥을 떠올리면 좋겠다. 자신들을 사랑하고 지지해 준 가족들이 있음을 기억해 내고 심신을 따뜻하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올 겨울에는 잊지 말고 친정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을 초대해 김치밥을 먹으며 온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한다. 겨울이면 김치밥 생각에 아이들이 자동으로 입맛을 다실 때까지, 나의 김치밥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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