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의 시학
『러시아 문학의 넓이와 깊이』;주제로 읽는새로운 러시아 문학사 by 조주관
죄와 벌의 경계선: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III)
경계선의 시학
도스토옙스키는 작품 전체의 주제를 아우르는 제목을 선호한다. 『죄와 벌』은 현실을 뛰어넘고자 열망하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망령된 집념을 그려 낸 작품이다. 그래서 이 소설 제목은 작가가 의도한 함축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의 러시아어 제목이 갖는 함축의미는 아주 흥미로운데, 그 제목은 일종의 ‘경계(선) 넘기’에 대한 독특한 담론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첫걸음을 내디딘다’라는 표현이 소설에 자주 나온다. ‘한 걸음 내딛다’라는 경계선 넘기 담론은 죄의 어원적 의미와 연관이 있다. ‘죄’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преступление’(작품 속에서의 빈도수 46회)의 동사형은 ‘переступить, преступить(넘다, 뛰어넘다, 위반하다, 벗어나다)’으로, 목적어에 따라 ‘(문지방을) 넘다(переступить порог)’ 혹은 (법)을 어기다(переступить закон)‘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친구인 마이코프에게 보낸 편지(1867)에서 제목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을 밝히고 있다.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나는 마지막 경계까지 간다. 평생토록 나는 늘 선을 넘어섰다.” 그리하여 『죄와 벌』의 ’선 넘기‘는 간단히 말해 ’죄짓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빈번하게 접할 수 있는 선들 가운데 하나는 문지방이다. 러시아인들에게 문지방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문지방은 항상 경계선을 상징한다.
그들은 관습적으로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하면 불행이 온다고 믿는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노파를 살해하기 전에 전당포의 문지방이라는 선을 넘고 이중살인이라는 죄를 짓게 된다. 그의 ’비범인 사상‘은 경계선을 넘어가는 사상이다. “역사 속카지노 게임 사이트 마치 찬란한 횃불처럼 등장하여 시대의 암흑을 몰아내고 미래를 밝혀 주는 비범한 인간들”은 ’모든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에게는 살인뿐만 아니라 대량학살까지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그들이 바로 경계선을 넘은 ‘초인’이다. 그런 식으로 초인사상이라는 이론을 위해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범하여 사회의 법률을 어기고, 이교도적인 인신(人神) 사상으로 종교적인 선을 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도덕적 경계선뿐만 아니라 종교적 경계선까지 뛰어넘은 죄인이 된다. 이러한 해석은 죄란 ‘특히 의식적인 행위에 의한 신적인 혹은 도덕적인 법의 위반’이라는 옥스퍼드 사전의 개념 정의에 잘 부합한다.
작가는 ‘경계선을 넘은 자’인 라스콜니코프에게 ‘8년 형기의 제2급 징역형‘을 가하나, 그 벌은 설득력 있는 논리적인 벌이 되지 못한다. 『죄와 벌』은 여섯 개의 부와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이 중 제1부카지노 게임 사이트만 주인공의 전당포 노파 살해 행위, 즉 ’죄‘를 다루고, 나머지 다섯 부와 에필로그는 ’벌‘을 다룬다.
이 소설카지노 게임 사이트 죄와 벌은 단순히 살인이라는 형법상의 죄와 그에 따른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제도적 처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벌‘은 법적 처벌이나 제도상의 형벌을 뜻하지 않는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벌‘은 주인공에 대한 외적 형량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이다. 라스콜니코프가 범한 살인이 결국 자기 자신을 죽였다는 게 핵심이다. 살인에 대한 ’벌‘은 양심을 저버린 인류에게 내리는 벌이며 고통이다. 에필로그카지노 게임 사이트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에게 내려진 벌이었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 재판 후 시베리아 유형지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는 “내 양심은 편안하다”라고 말한다. 법적 처벌은 오히려 그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 주어, 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보상으로 작용한다. 형사상의 벌이 오히려 그를 마음의 고통카지노 게임 사이트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다. 즉 양심의 고통이 진정한 벌이라는 의미이다. ‘경계선 넘기’를 시도한 자들은 더 있다. 아내를 죽였다는 살인 혐의를 받는 스비드리가일로프와 매춘부인 소냐가 그들이다.
라스콜니코프가 인간으로서 초인사상을 품은 것 자체가 ’범죄 이전의 죄‘, 즉 ’원죄¹‘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원죄‘를 러시아 정교회 사상에서 찾았다. 구약성서에서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느님같이 된다‘라는 뱀의 말에 넘어가 그것을 먹고 죄인이 되어 낙원에서 추방되었다. 아담이 추방당한 원인은 그가 신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신이 되고자 자신의 경계선을 넘는 것을 ’오만, 자만‘이라고 한다. 이 자만과 오만이 바로 ’범죄 이전의 죄‘이다. (<주제와 동기에서 계속함)
[옮긴이 註]
1) 원죄(原罪, peccatum originale, original sin)는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긴 죄이다. 원죄의 결과로 전 지구와 모든 인류가 타락하여 인간은 죄를 짓기 시작하게 되었고 중생(重生 regeneration-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5장 17절, 공동번역 개정판)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라틴어로 문헌을 작성한 아우구스티누스 영향이 큰 서방기독교의 주류 교리이다. 반면, 동방기독교에서는 죄에 대한 교리는 있지만, 원죄에 대한 구체적인 교리는 없으며, "조상의 죄"에 해당하는 "프로파토리코 아마르테마"(προπατορικο αμαρτημα)의 개념이 있다.
3세기에 서방기독교에서 구체화하기 시작하여 아우구스티누스가 '원죄(peccatum originale)'라는 이름으로 성숙한 교리가 등장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연구에 기반하여 카르타고 공의회와 제2차 오렌지회의에서 원죄의 교리를 교회의 정통 교리로 승인하였다.
서방기독교 신학을 따랐던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 등의 종교개혁자들은 원죄가 욕정의 근원으로 세례 이후의 인간에게서도 유지되며, 자유의지가 전적으로 타락하여 자발적으로는 선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반면 천주교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세례 시 원죄 역시 사해진다고 본다.
원죄론의 발달
출현
유대교는 인간의 본성이 어떤 한 사건 등으로 돌이킬 수 없이 더럽혀졌다고 보지 않는다. 이러한 견해는 사도 바울로가 처음 제안한 것인데, 사도 바울로는 아담의 행위로 죄와 죽음이 인류의 자연스러운 운명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4세기 이전의 초대 교회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원죄에 대한 구체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원죄의 개념은 신약성경이 작성된 후 수 세기 동안 초기 교회 교부들의 저술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서기 1세기카지노 게임 사이트 2세기에 쓰인 《디다케》, 《헤르마스의 목자》, 《바르나바의 편지》는 모두 아이들이 죄 없이 태어났다고 보았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로마의 클레멘스와 안티오케이아의 이그나티오스는 인류 전체에게 보편적인 죄가 있음을 인정했지만, 이것이 어떤 누구의 잘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는 않았다. 2세기 후반에 활동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죄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보았지만 죄의 유전에 대해서는 더 탐구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 이전
2세기 기독교 변증학자이자 철학자인 유스티노 순교자는 바울로 이후로 아담의 죄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 기독교인이다. 유스티노는 원죄에 대한 개념을 주장하지 않고 죄의 잘못은 그 죄를 범한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보았다. 유스티노는 《트리포와의 대화》 86장에서 "그리스도는 아담 이래로 사망의 권세에 넘어져 독사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 각자 자신의 잘못으로 악을 범한 이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라고 적었다. 또한, 124장에서는 "인간[...]은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나님과 유사하게 창조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를 때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릴 자격이 인정되었지만, 아담과 이브처럼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다"라고 적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원죄론의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한 이레네오는 아담의 죄가 후대가 인식하는 것만큼 심각하다고 믿지 않았고, 그 죄가 초래한 결과에 대해서도 명확히 남긴 바가 없다.
아우구스티누스
4세기~5세기에 에 활동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의 죄가 "해로운 욕구"인 욕정으로 후대로 전달되어, 인간의 자유의지가 심각한 손상을 입어 인류는 저주를 받았다(massa damnata)고 보았다. 인류의 본성이 아담이 죄를 지은 순간부터 바뀌어,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죄를 짓거나 짓지 않는 것 중 선택할 능력이 있었지만, 아담의 타락 이후 전 인류는 죄를 짓지 않는 자유를 선택할 자유가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과 이브의 성적 번식을 통해 이 세상에 나타난 그들의 후손은 이제 단순히 심리학적 영역을 넘어서 형이상학인 의미의 죄 속에 살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욕정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선의 결핍으로 생긴 ’빈자리‘라고 주장했다.
성경적 근거
·원죄론의 근거가 되는 성경적 근거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데, 첫 번째와 마지막 구절은 왜 원죄가 '원(原)죄'라는 이름을 가졌는지 보여준다.
·창세기 3장: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카지노 게임 사이트 쫓겨난 이야기.
·시편 51장 5절: "실로,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공동번역)“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5장 12절~21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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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의 개념은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카지노 게임 사이트 유래하고 있다. 창세기의 1장카지노 게임 사이트 3장에 의하면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神) 가까이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는 것이 가능하고, 죽음과 질병이 없는 축복받은 낙원의 상황에 놓여 있었으며,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지키며 살고 있었다. 하느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계명과 더불어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허락했으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만큼은 먹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악마의 화신인 뱀은 이브를 교묘히 말로 속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는 것에 성공했다. 아담도 이브에게 이끌려 열매를 먹고야 말았다. 두 사람은 돌연 나체인 것을 창피하게 여겨(이전에는 이성에 대한 인식과 부끄러움을 모르고 지냈었다) 얼른 무화과나무 잎을 몸에 둘렀다. 하느님은 이것을 아시고 징계하였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하느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잃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잃고, 자연과 완전한 조화도 잃게 되었다. 하느님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善惡果)를 먹은 것에 노하시고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했다. 이른바 실락원(失樂園)이다.
두 사람의 죄의 결과로서 지상으로 추방된 상태는 그 자손에게도 이어지게 되었다. 두 사람의 자손들은 결코 죄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역사 그것이 낙원 추방 전의 하느님과의 교제의 부활을 바라는 노력이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낙원카지노 게임 사이트 추방된 것은 열매를 먹어서인데 결국은 하느님의 계명 한 가지를 어겼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카지노 게임 사이트 생각해 보면 만약 두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해 주는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에덴동산카지노 게임 사이트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였지만, 한편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때문에 에덴동산카지노 게임 사이트 쫓겨 난 아담과 이브는 땅카지노 게임 사이트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을 성취하게 되고, 타락한 결과로 그와 그의 후손들이 험난한 세상의 삶을 경험하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원죄란 믿음은 아담의 타락(불순종)으로 인한 죗값이 자손들에게 유전되어 형벌을 받는다는 한 측면이 제시되고, 또한 이에 비교되는 믿음으로서 아담의 타락(불순종)으로 인한 죄는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희생으로서 갚음이 되어 이제는 죄의 유전 사슬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 또 다른 한 측면이다.
오거스틴은 원죄의 본질이 우리 인간 자신에게로 기울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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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 12-19카지노 게임 사이트 보는 관점은 '모든 인류에게 임한 사망의 원인이 바로 죄의 결과'이다. 죄가 한 사람, 즉 아담에게서 이 세상에 들어왔고, 그 결과로 사망이 모든 인류에게 임했다는 것이다. 12절에 아담 안에 있다는 것은 아담의 죄가 우리 모든 인류의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를 해석하는 데 아담은 온 인류를 대표하는 대표성의 원리가 필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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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선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를 용서하였기 때문에 원죄가 없다고 본다. <위키백과
Sandro Botticelli, Sant'agostino Nello Studio, 1480 circa, dall'ex-coro dei frati umilia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