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가방보단 명품토분을 사는 가드너 (feat. 두갸르송 토분)
혹시 위 사진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판매 가능신가요?
가끔 블로그의 토분사진에 위와 같은 같은 댓글이 달리곤 한다. 참 재미있는 것은 블로그에 업로드한 사진의 토분에는 대부분 식물이 심겨 있다. 토분만 산다는데, 그럼 식물은 비워야 하나? 현재는 이사와 환경의 변화로 많이 비워져 있지만 더 이상 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이미 10년도 더 된 중고토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검색으로 이곳에 와서 댓글로 토분교환을 요청할지 몰라 미리 밝혀둔다. "전 안 팔 겁니다. 교환, 판매 모두 안 해요."
간간히 화분 몇 개만 두고 키우던 가드닝 라이프는 신혼시절 꽃을 피웠다. 본격적인 보금자리에 원하는 데로 식물을 조금씩 사서 늘려나갔다. 키우다 보니 하얀 도자기 화분은 쉽게 식물이 과습으로 죽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물마름과 물빠짐에는 토분이 좋단다. 그 당시 잘 구할 수 있던 토분은 일명 독일토분. 하지만 뭔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또 계속 찾아보고 알아보다, 첫눈에 반한게 "두갸르송 토분". 당시엔 홈페이지 개설 전이라 카페에서 선착순 댓글로 구매가능했다. 한번 살 때 10만 원 안쪽으로 여러 개를 구매할 수 있었고 2-3년 사이에 베란다정원이 커지는 만큼 토분의 갯수도 늘어났다. 제법 많이 모인 토분에는 특별히 애정이 가는 토분도 있었고, 종종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다. 그땐 그게 나눔의 정이었고 이렇게 상업적으로 귀해지지 않았던 시절이니까. 사실 이렇게 귀한 몸이 될 줄은 몰랐다. 카페에서는 종종 이벤트를 하기도 했었는데, 아이의 이름과 생일이 새겨진 토분을 받기도 했고, 노랫말 한곡 세트 토분 중 한 구절을 이벤트로 받기도 했다. 나의 토분들은 여지껏 소중히 갖고 있는 특별한 추억이다. 가격으로 따질 수 없다. 그 중 기억에 남는 토분이 하나 있는데, 5,000원짜리 꼭지 윤노리를 심었는데 꽃도 피고 열매도 맺고 해서 참 고왔던 기억이 있다. 그냥 화분이었음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 텐데 유달리 더 이뻐보였다. 본인 옷은 안 사면서 토분은 명품으로 챙겨주고 싶었던 게 정원사의 마음인가 보다.
두갸르송 토분이 워낙 귀한 몸이 된 이후로는 그릇장에 명품 그릇 전시하듯 토분도 전시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조금 자랑스럽기도 하고 일종의 컬렉션이니까. 하지만 정원사 입장에선 토분은 식물이 심겨져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작은 새싹도, 새순도 좋은 옷(=토분)을 입으면 더 근사하다. 그냥 이끼가 끼어도 멋스럽고, 하얀 백화가 올라오면 세월의 맛이 느껴진다. 굳이 모시고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정원이가 몇 개 깨먹기도 하고 그걸 요리조리 본드로 붙여서 쓰기도 했다. 토분으로 태어나 식물을 담지 못하면 생에 무슨 의미 일까? 그래서 필요한 만큼의 토분만 사고 욕심내서 사진 않았다. 찰떡궁합처럼 느껴지는 토분과 식물의 매칭을 발견하면 혼자 뿌듯해하곤 했다. 작은 기쁨이었다. 아래의 사진은 향소국은 지금 땅에 심겨져 아주 커졌지만 저때만 해도 아주 작은 모종에서 출발했다. 10년간 분갈이를 자주 안 해주었음에도 잘 컸던 이유 중의 하나는 두갸르송 토분이 좋은 흙으로 통기성과 내구성, 물마름이 다 적절했기 때문이리라. 토분도 식물이 심겨 있어야 멋스럽다. 아무래 명품옷이라도 옷장에만 있으면 무슨 소용일까. 토분도 식물과 함께 흙을 머금고 물마름과 배수를 반복하면서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 자만 가진 나이테처럼, 키운 흔적으로 고유한 <나만의 반려토분이 되는 것이다. (아, 쓰다 보니 참 토분도 덕질이 가능하단 걸 깨달았다).
정원이 낳고는 식물만 조용히 키우면서 보내다가 조금 여유가 생겼던 3년 전쯤, 이전에 활동하던 두갸르송 카페에 컴백했다. 오랜만에 복귀한 탓인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1세대 수제토분, 국산명품의 반열에 오른 두갸르송 토분이 되어 구매가 너무 힘들어진 것이다. 홈페이지에 판매 업로드되면, 3초 컷에 솔드아웃. 중고나라에 올라오면 번개처럼 댓글이 달린다. 판매가 끝난 다음 날에는 심지어 리셀러까지 등장한다. "신상토분"은 구매하기엔 손가락의 클릭속도는 너무나도 느렸는데, 새로 나온 토분이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신규 가입자들도 2014년 산 빈티지(?) 토분과의 교환을 원하기도 했다. 그래서 카페에서 교환 몇 번 했다. 내게는 대부분 새 토분은 없었다. 가장 아꼈던 초록 토분을 교환했던 상대가 받으니 실금 갔다고 하는게 마음이 불편해져서 바로 다른 토분을 보내버렸다. 그 이후로는 다시 교환은 하지 않는다. 씁쓸했다. 교환한 유약바른 새 토분은 정말 멋졌지만, 생각보다 정이 들지 않았다. 몇 개는 선물로 보냈다. 그리고 나서야 그간 보낸 토분이 조금 그리워졌다. 아, 그 토분에 심겨 있던 식물의 추억도 같이 포기한 거란 깨달음을 얻었다. 물건이란 기억과 역사를 담는데, 하물며 반려식물의 좋은 동반자였던 토분을 입양 보낸 기분이다. 이제는 3년 전을 끝으로 더 이상 토분카페에 가지 않는다. 지금은 온리원 시리즈의 유약토분이 많이 올라오고 가격도 몇 배나 올랐다. 고급스러운 명품 느낌이 물씬 난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에게는 새 토분은 필요하지 않다. 그 시절보다 너무 비싸졌기도 하고 유약보단 통기성이 좋은 오리지널 토분을 가장 좋아하기에. 지금 있는 것으로도 가드닝 라이프를 유지하기엔 정말 충분하다.
작년 고마운 분께 유약토분에 좋아하는 휴게라를 심어 선물했다. 이분은 두갸르송은 잘 모르지만, 아름다움의 가치는 아는 분이다. 우리 집을 너무 예쁘게 고쳐주었기에. 그분이 가장 좋아할 연노랑의 옷을 입은 토분을 드렸다. 보내면서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니 그것으로 됐다 싶다. 때로는 모르는 게 온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새 토분에 대한 욕심 때문에 교환했던 토분은 보낸 토분이 아쉽기만 하고 뒷맛이 쓴 거래였다. 이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만 노력하자. 소유는 나쁘지 않지만 과욕은 부작용을 낳는다. 지금은 내년 봄에 무엇을 심을지 빈 토분들을 보고 고민한다. 일년초들을 때때로 심으면 예쁘겠지.
패션은 지나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코코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