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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옥 Apr 27. 2025

부도맞고 목표가 생겼다 8편


하늘은 녹祿 없는 사람은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은 기르지 않는다.

<명심보감



"녹 없는 사람은 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기 복을 갖고 태어나므로 노력하면 모두가 결실을 맺을 수 있고, 잘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하늘의 복을 키우는 것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그 힘이 되는 것은 용기와 도전의 정신이다

<하루 한 장 고전 수업, P26, 조윤제, 비즈니스북스 참조.


세상을 살다 보면 모래알보다 작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말처럼.


하지만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이름을 가진다. 모든 삶에는 우리가 모르는 고유한의미가 주어져 있다. 이 세상에 발을 디디게 된 '그 이유'를 지니고있다. 그 뜻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만의 복을 타고난다.그 복은 처음에는 씨앗에 불과하다. 때문에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와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도 있고, 그냥 땅속에서 썩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그 씨앗을 틔워내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인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 가는 결국 스스로에 대한 노력과 지금은 부족하다고 생각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며 앞으로 나아가는'용기'라는 그 듬직한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학 4년이라는 시간이 바람처럼 흘러갔다.


졸업을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던 논문까지 마무리 지으며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마흔 중반을 바라보는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손으로 돌려 가듯, 거북이처럼 어떤 것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기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안될 것 같던 일들도 포기하지 않자, 조금 느렸지만 언젠가는 그곳에 도착한다는 사실.


논문 쓰기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에 파묻혀 쓰고 교수님께 독한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정말 이렇게 해서 논문이라는 것이 완성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나는 앉아서 책을 읽고 또 글을 써내려 갔다. 내가 사는 시간 안에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논문을 쓰게 된다면 꼭 쓰고 싶은 주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노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십 년 넘게 양가 부모님을 한 집에 모시며 쌓였던 생각들을 토대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논문 제목은 <노인의 경제능력에 따른 노인, (가설) 노인의 경제능력이 높을수록 학대받는 정도가 낮다.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고군분투 했고, 결국 논문이 완성되었다. 몇 번의 고배를 마신 후 졸업이라는 문턱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냉혹한 취업 시장으로 뛰어갔지만 나를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K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장을 손에 쥐고 이제 돈을 벌어야 했다. 취업을 위해 100군데가 넘는 곳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모두 불합격. 이유는 마흔 중반인 내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밤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자리를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눈을 씻고 보아도 마흔이 훌쩍 넘는 직원을 찾는 곳은 없었다. 사회복지 기관 채용 공고문 대부분에는"35세 미만인 사람만 채용한다"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주홍글씨 같이.


그러던 내게 신림동 Y성폭력 상담소에서 사회복지사 및 청소년 카지노 게임사를 채용하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지레 겁을 먹고 본능적으로 35세 나이 제한 문구를 찾았다. 이상스럽게도 이 공고문에는 35세 미만 나이제한이 없었다. 담당자가 실수를 했는지. 그래도 행운을 거머쥔 것 같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안 되는 게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이력서를 쓰며 반복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마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이력서 통과, 면접 통과로 신림동에 있는 Y성폭력 카지노 게임소 인턴으로 한 달간 예비채용 될 수 있었다. 카지노 게임소 소장님은 한 달 동안 업무 능력을 지켜보고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말했다. 반대편에 서 있는 나와 달리 카지노 게임소에게는 아주 유리한 채용 조건이었다. 그래도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Y 성폭력 상담소에서 일한 지 10일 정도 되었을 때였다. 신림동 한 중학교에 파견되어 업무를 수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Y성폭력 상담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카지노 게임사 선생님과 함께 담배나 마약으로 문제가 된 청소년들 상담 업무였다.


약물 상담을 수행하면서 가장 어려운 장벽은 학생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상담실로 오는 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가방 속에서 담배가 발견되어 관리 대상이 되어 오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약물중독에 대한 상담은 상담을 받는 자가 자신이 약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시작된다. 때문에 스스로 담배를 피우고 있고,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상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번에 담당하게 된 아홉 명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상담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신들은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했다.아이들끼리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사전협의가 이루어진 듯. 세 번의 상담이 이루어졌지만, 완벽하게 실패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10회 상담 기간 동안서로에게 어떠한소득도 없이 끝날 것만 같았다.


4회 차 상담일이 다가왔다. 나와 함께 상담을 담당했던 선배님이 다른 학교로 상담을 가게 되면서, 나 혼자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Y성폭력 상담소 소장님도 금옥 사회복지사님이 이번에 잘하는지 보겠다고 말하며 압박을 주었다. 아마도 이번 업무 수행을 보고 다음 달에 채용 여부를 결정하려는 듯싶었다. 예비채용 상태였지만 어떻게든 잘 해내 정식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9명의 아이들이 담배를 끊고 건강한 학교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점점 커져갔다.


그런 나는 엉뚱한 작전 하나를 짰다. 상담이 시작되고 교실에는 나와 9명의 학생들이 둘러앉았다. 어떻게 담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들은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저는 담배 안 펴요."


그때였다. 나는 가방 안에서 준비해 두었던 담배 한 보루를 꺼냈다. 청소년들에게 인기는 많지만 값이 비싸서 아이들 주머니 사정으로는 마음껏 살 수 없는 브랜드 담배였다. 교실에 갑자기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담배 한 보루를 본 학생들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학생들이 서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야~ 너 잘 피우잖아."


옆에 있는 친구들을 툭툭 치면서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서로 웃겼는지 아니라고 킥킥 거리며 손사래를 쳤다. 사춘기 소년들이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여기서 이 담배로 연기 도넛을 많이 만드는 학생에서 담배 한 보루를 선물로 주겠다고 말했다.


서로 눈치만 보던 학생들이 값비싼 담배 한 보루에 사전모의한 약속은 이미 잊은 듯, 너나 할 것 없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금옥 선생님!! 뭐 하시는 겁니까!!"


지나가다 창가에서 바라보던 교장 선생님이 내 손에 들린 담배 한 보루를 보고 깜짝 놀라 교실로 급히 뛰어들어오셨다. 그리고는 나를 교무실로 끌고 가듯 데려가셨다. 교실에서 도대체 뭐 하는 것이냐, 내가 가지고 있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박탈시킬 것이라고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닌데. 그리고 어떻게 딴 자격증인데.....'


나는 사회복지사 자격증만은 취소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 선생님, 제가 9명 학생들이 모두 담배를 끊게 하기 위한 방법이 있어요. 조금만 더 지켜봐 주세요. 아이들이 담배를 끊을 수 있을 거예요. 지켜보시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때는 교장 선생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울듯이 말하는 내게 교장선생님과 교무실에 계시던 다른 선생님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썽쟁이 9명 학생들을 무슨 수로 담배를 끊게 하겠다는 것인지 황당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아이들이 있는 상담실로 돌아갔다. 교장 선생님께 끌려간 내가 안타까웠는지 아이들이 나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아이들은 답배 한 보루에 자신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한 상태였다.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담배를 시작했어요."

"저는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담배를 시작했어요."

"저는 공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담배를 시작했어요."

"저는 낙오자 같아서 담배를 시작했어요."


모두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이유를 서서히 털어놓았다. 그렇게 하루에 얼마나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담배를 피우고 난 후 느낌은 어떠한에 대해 밀도 있는 상담이 진행되었다. 남은 6번의 상담 기간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가진 상처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등에 대해. 우리는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 조금씩 치유되어 가고 있었다.


마지막 10회 차 상담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담배를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형편으로 공부를 놓았던 한 친구는 이제 조금씩 조금씩 공부를 시작해 보려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할머니 같은 아줌마도 대학교에 갔다면서요. 그에 비하면 저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게 제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예요. 전에는 이제 망했다. 내 인생은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할머니 아줌마를 보니까 그게 아니네요."


그 학생은 상담 내내 계속 나를 할머니 아줌마 선생님이라 불렀다. 아직 할머니는 아니라 말하고 싶었지만 꾹참았다. 그렇게 불러서 그 학생 마음이 치유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괜찮았다.


내가 본 아이들은 이제 막 새싹을 틔우려 준비 중인 아름다운 씨앗이었다.


그들에게 늦음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시작인 시간을 지나고 있기 때문에.




취업을 위해 거짓말을 하다


다행이었을까.


Y성폭력 카지노 게임실에서 약 1년간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약 기간 1년이 끝나고 다시 카지노 게임실을 나서야 했다. 또다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났지만 취업을 한다는 것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처럼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다.


두 번째 문을 두드린 곳은 성남에 있는 K사회복지회였다. 그곳에서는 가족폭력 집단 카지노 게임사를 채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고문에는 35세 미만이라는 채용 연령제한 문구가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제출했다. 나이는 많지만 일 하나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얼마 후 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가능한 젊어 보이게 차려입고 면접장으로 갔다. K사회복지회 소장님께서 면접자들을 안내하고 계셨다. 문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렇게 조그만 기관에 면접을 보러 오는데, 학부모님까지 안 오셔 되는데 이렇게 오셨습니까. 어머님, 자리가 비좁으니까 나가시고 자제분 들여보내 주세요."


소장님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 설 수 없었다.


"우리 애들이 면접 온 것이 아니라 제가 면접 보러 왔습니다."


내 말을 들을 소장님은 연령제한이 있어 35세 미만 직원만 채용하고 있는데, 그 문구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으셨다.


서러움에 눈물이 나왔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도전하고 싶었습니다.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면접까지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을 나서려 했다. 그때 소장님이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력서에 보니 컴퓨터를 잘한다고 쓰여 있던데요. 엑셀이란 피피티요."


순간 이력서 특기란에 써 놓은 것들이 생각났다. 피피티는 대학교 때 어느 정도 익혀 두었지만 엑셀은 전혀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배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아주 능숙하게 다룬다고 적어 두었다.


소장님이 눈을 반짝이며 물으셨다.


"혹시... 그럼 코딩도?"


“네, 다 잘합니다.”


‘금옥!... 지금 뭐 하는 거야, 컴퓨터 잘 못하잖아, 액셀도, PPT도....... 코딩까지 미쳤어!...‘

나는 잘하지도 못하면서 능숙하게 잘한다고 술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럼 월요일부터 출근 가능하세요? “


“네 지금 놀고 있으니 출근 가능합니다.


“그럼 월요일부터 출근하세요”


‘오 마이갓!!! 일 저질렀네.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지. 이미합격했는데…….’


면접을 마치자마자 일신여상 쪽에 모여 있는 컴퓨터 학원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저녁 학원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말했다.


"헉... 헉...

선생님! 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 24시간 개인지도 가능할까요?

코딩이랑 엑셀 기본기만이라도요."



*메인화면 : pinte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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