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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Kang Mar 02. 2025

미안, 이모도 카지노 게임 편이야.

팔긴 팔아야 하는데, 난 원래 교육가라서...

우리 가게가 화장품 가게다 보니모녀가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자녀의 연령대에 따라 엄마들의 반응은 다르다. 엄마들이 다니는 학원이 있을까? 어쩜 다 다른 집들인데(심지어 인종도 다양한데) 엄마들의 말과 행동은 비슷할까?관찰하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곤 한다. 어디 엄마들만 비슷할까. 딸들도 연령대에 따라 상당히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모녀가 모두 성인인 경우는 제법 다정하다. 엄마가 딸 화장품을 골라주기도 하고, 딸이 엄마에게 적극 추천을 하며 서로 발라보고 대화를 많이 한다. 딸이 성인이어도 아직 학생인 경우는 엄마들이 계산한다. 얼굴이 어려 보여도 경제활동을 하는 딸들은 엄마 화장품까지 계산을 한다.딸이 카드를 내밀면 엄마는 웃으며 한마디 한다. "진작 말하지. 그럼, 더 골랐을 텐데." 어떤 딸은 "오늘은 이것까지만!"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어떤 딸은"더 사!"라고 쿨하게 말한다. 그랬다고 더 사는 엄마는 없다.이미 엄마는 기분이 좋다. 누가 계산했는지와 상관없이 성인 모녀는 아주 수월하게 쇼핑을 하고 아무런 걸림돌(?) 없이 결제까지 마무리한다.기분 좋게 쇼핑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모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평온함이 느껴진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딸과 온 엄마는 대부분 각자 구경을 하다가 계산도 각자 한다. 간혹 딸에게 조언을 받는 엄마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가끔 계산을 해주는 엄마도 있지만, 보통은 나중에 집에 가서갚으라는 식의 대화가 오고 간다. 때론 딸 심부름을 나온 엄마도 있다. 딸이 원하는 제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메신저 창의 띄워서 대체 가능한 제품 사진을 찍어서 주고받기를 여러 차례 한다. 한 번은 전화로 심부름 값을 요구하는 엄마도 있었다. 고등학생 딸이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엄마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우리 딸이 '밑 빠진 독'인 걸 안거다. 유행에 민감하고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고등학생들은 (엄마들의 제보에 따르면) 엄마들보다 더 많은 화장품을 가지고 있단다. 처음에는 엄마가 사줬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결국 용돈으로 충당하기로 합의를 본 거다.고등학생 딸과 엄마는 쇼핑도, 계산도 알아서 한다.


중학생이나 초등학교 고학년인 딸들과 함께 온 엄마들을 상대하는 게 제일 난감하고 힘들다.정확하게는 소득도 없으면서 감정소모만 너무 많이 하게 된다.아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눈 내리는 날 강아지처럼, 신이 나서 뛰어 들어온다. 엄마는 보통 문과 제일 가까운 곳에 서 계신다. 1분에 한 번씩 "다 봤어?"를 묻는 엄마의 목소리에 나까지 초조해진다. 아이도 엄마 눈치를 보며 후다닥 제품을 골라서 엄마에게 애교를 부른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너 이거 있잖아!"라고 쏘아붙인다. 오늘 엄마는 딸아이 화장품을 사줄 마음이 1도 없다. 아이가 몇 번 더 조르면엄마는 참았던 불만을 쏟아낸다. '어린데 왜 화장품에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 '집에 있는 화장품도 남았는데자꾸 사려고만 한다.', '비슷한 걸 자꾸 왜 사는지 답답하다.' 등 탐탁지 않은 아이의 행동에 대해 불평을 한다.그러면 아이는 쭈뼛거리며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나도 중간에 눈치가 보이긴 마찬가지다.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축 처진 아이와 툴툴거리는 엄마, 불안한 나 사이에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나는 작은 샘플을 하나 챙겨 아이 손에 쥐어 주며 말한다. "미안, 이모도 카지노 게임 편이야. 다음에 구경하고 싶으면 안 사도 되니까 엄마 허락받고 와서 놀다가." 위로의 말을 들은 아이는 샘플을 만지며 얼굴 표정이 풀린다.그리고 엄마를 보면서도 인사한다. "어머니, 오늘 예쁜 딸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 또 봬요." 엄마도 멋쩍게 웃으며 "네."하고 대답한다.




화장품을 팔아야 하는데, '교육가'의 정체성이 나를 뜯어말린다. 굳이 화장품 가게에서 왜 이리 '교육가'의 정체성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냥 눈 딱 감고 '화장품 사장' 정체성을 가지고 팔고 싶은데 말이다. 이제 사춘기가 시작되어 요구하는 것과 행동이 변하는 딸이 걱정도 되고 그 모습이 어색하다 보니 엄마는 딸의 의견을 잘 수용해주지 않는다. 지금은 어려서 그냥 넘어가지만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거다. 전쟁과 휴전을 거듭하며 서로 생존하는 방법을 찾을 거고, 모든 시간을 견디면 둘도 없이 든든한 관계로 성장해 갈 거다. 그러나 초보 사춘기 엄마들에게는 이 첫 관문이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아이에게 "미안, 이모도 카지노 게임 편이야."라고 말한 것은 사실 엄마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아이에게는 위로의 말이지만, 엄마의 권위도 세워주고 싶은 게 내 진심이다. 이번엔 불편한 만남이었지만, 만남을 거듭할수록 변하며 적응하고 성장하는 모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우리 가게 꼭 다시 오셔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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