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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이언트마마 Feb 12. 2025

EP.1 삼십대 카지노 게임과 초등학교 카지노 게임

사이사이 에피소드 1. 30대를 마감한 엄마와 초등학생을 마감한 딸

카지노 게임

국가에서 나이를 조정해 줘서 한 살을 좀 더 늦게 먹었다 쳐도, 이제는 정말 빼박인 40세가 되었다.드디어 마침내 30대를 카지노 게임한 것이다. 누구는 마흔 되어서 아쉽거나 서글프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또래에 비해 비교적 일찍 결혼한 나에게 30대는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보다는 서러웠고 힘들었고 고생했던 기억이 더 많아서 그런지 아쉬울 게 없다. 예전에는 서른이 어른으로 진입한 느낌이었다면 마흔이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느껴진달까?


27세에 결혼해 연년생 아이를 연달아 낳는 바람에 30세가 되기도 전, 나는연년생 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30세를 맞이한 해에는두 아이를 양가 모친들에게 맡기고 복직을 했다. 그렇게 야심 차게 출근한 첫날, 나는 새벽 12시에 귀가했고 아이가 잠든 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겹게 겨우겨우 몇 년을 버텼지만 퇴근이 없었던 직종 문제 때문에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서 퇴사를 하긴 했는데 일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도 컸다. 그래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긴 시간에 (9시부터 4시)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이 일, 저 일을 받아 재택근무를 강행했다. 퇴사한 회사의 선배들이 감사히도 불러줘서 다시 몇 년간 재택근무를 해나갔다. 그런데 퇴근 없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동시에어린이집에서 귀가한 영유아 둘을 케어한다는 것은 극한의 노동이었다. 갑질이 심한업종(광고대행사)이기에 저녁이고 밤이고 광고주나 고용인에게 연락이 왔고, 드러누워 울고 있는 아이들을 팽개치고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통화하다가 들어가면 아이들은 잠들 때까지 내 양팔에 매달려 있었다.


결국은 프리랜서 디자이너 일도 접기로 한다. 이왕 퇴사한 거 그냥 아이들을 온전히 돌보자! 그렇게 아이들만 케어하던 시기,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서 유치원에 갔고, 유치원에 간 9시에서 3시까지 약 6시간 동안 내가 해보고 싶었던 개인적인 영상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3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쏟았던 영상작업은 일정한 수입원이되어주지는 못했다. 이후 코로나 펜더믹을겪으면서 더 이상 새로운 사회활동은 어려워졌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점점 혼자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시간도 많아지고, 나에게 숨기는 것도 늘어나고, 키도 나를 능가하는 지경이 되었다. 2019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과 2020년 코로나로 5월 입학생이 된 아들은 벌써 중학교 입문을 눈앞에 두었다. 그리고 2025년 1월 마침내 딸아이는 초등학교를 카지노 게임했다.


초등학교 카지노 게임식, 아이의 유치원 카지노 게임식 이후에 6년 만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양가 어른들이 모두 큰 아이 학교로 총출동했다. 70대가 된조부모들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손주들 카지노 게임식에 빠짐없이 참석하기 위해 건강에 힘쓰고 있었다. (모두를 위해서 선순환되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꽃다발을 품에 들고 카지노 게임식을 진행하는 강당에 들어섰고, 카지노 게임식 의자에 앉은 아이 주변으로 다가와 핸드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앞뒤에 앉은 친구들의 가족들도 다들 비슷하게 핸드폰을 들이밀었건만유독 딸아이는 손사례를 치며 부끄러워했다. 적극적으로 사진을 들이대는 외조부(나의 아버지)에게 눈으로 화를 내며 '그만 찍으시라'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의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의 사진을 찍고서야 돌아섰다.)


무려 27년 전인 1998년에 카지노 게임한 나의 경우, 카지노 게임식에서 상장을 받는 것은 대게 전교회장이나 전교 1등을 하던 아이들이 대표로 받는 것으로 끝났었고, 대다수의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에게 카지노 게임증서를 받고는 교실에서 사진을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딸아이 학교의 카지노 게임생 수는 한 반에 20명씩 7반. 총 140명이다 보니 (우리는 50명씩 7반이었으니 3배도 넘는구나.) 카지노 게임생 전체에게 강당 카지노 게임식장에서 상장을 직접 수여했다.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수여하는카지노 게임상장을 받는 걸 보니 좋은 취지로 변모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출산율 감소로 아이들이 줄어들어서 카지노 게임식 풍토도 바뀐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카지노 게임식을 마치고, 딸은 친구들을 찾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초반에는 친구들이 모여서 찍는 분위기였으나 차츰각자 가족들에게 돌아가자 딸은 그것이 서운했나 보다. 저 홀로 친구들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너를 위해 모인 우리 가족도 그 모습을 보자니 참 서운했지만 내색하지 말아야지.) 좌우간 겨우겨우 억지로 웃는 딸을 가운데 두고 학교 교정에서 카지노 게임식 기념사진을 몇 장 찍었다. 왠지 감회가 새롭긴 했다. 내 딸이 이제는 아이가 아닌 청소년이 되는구나 싶어서..


딸은 초등학교를 카지노 게임했고, 나는 힘겨웠던 30대를 카지노 게임했다. 젊고 에너지가 넘쳤던 덕에 두 아이를 잘 길러(?) 냈겠지만 출산과 육아, 돌봄에 매여 늘 나를 놓치고 있다는 심정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현실적으로도 매번 육아를 우선시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둘 다 (딸과 내가) 조금은 어리고 서툴던 시절을 비로소 카지노 게임했다. 앞으로도 삐걱대고, 흔들리고, 실수하며 배우겠지만 조금은 더 능숙하게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우리 둘 다 어리숙했던 시절을 카지노 게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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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은 카지노 게임인데 축하받기보다는 이제는 축하할 이가 아무도 없는 편이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2년생 모두의 카지노 게임을 축하하며, 새로운 중학교 생활을 잘 이어 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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