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원에 내려주고 집으로돌아가려니날씨가 너무 좋길래 근처 대형서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점에 앉아 읽던 책을 마무리하고, 읽고 싶어 찜해뒀던 신간들도 구경할 겸해서 말이다.
어,근데 속이 출출하네. 3-4일 전 먹고 남았던김치찌개와 밥솥에 남아있던, 한공기도채 안 되는 밥을오전9시경에 먹고 오후 4시가 넘도록쭈욱 굶었으니 배고플 만도 하네. 뭘 간단히 먹으면 좋을까 두리번거리는데 죽집이 눈에 띈다.오랜만에 좋아하는 죽이나 먹으러 가볼까.
죽집 안으로 들어가려니 왠지 좀 머쓱하다. 주방 아주머니가 두 다리를 다른 의자에 올리시고 등은 벽에 기댄 채 구석에서 단잠을 주무신다. 홀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고 카운터에 아주머니 한 분이 무료해 보이는 표정으로 멀뚱히 서 계신다. 장소가 널찍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썰렁한 분위기에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아 입구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색함보다도 죽을 먹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뭉개 뭉개 피어오르니 이를 어쩐다. 에라 모르겠다.그냥먹자, 먹어.
입구로 카지노 게임가 자리를 잡고앉아 메뉴를 고른다. 내가 좋아하는 카지노 게임이 눈에 카지노 게임온다.헉, 근데 카지노 게임이 28,500원이나 해? 아아, '진품'카지노 게임. 눈을 아래로 더 스크롤하니 완도카지노 게임 14,500원이 보인다. 그래, 저 정도는 먹자고. 비싼 메뉴를 보니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진다. 이게 이 집의 상술인가, 아니면 진품 전복죽을못 먹는 백수 주부의주머니사정이 구슬픈 것인가. 주문을 하고메뉴가 나오길기다리는데 아줌마가 이리 오라며손짓을 하신다.가보니 우리가게는 선불이란다. 후다닥 결제를 마치고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솥 안에자리한카지노 게임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구나. 꿀꺽. 침이 절로 입안 가득 고인다.
한 입 가득 죽을 넣으니 쫄깃한 전복과 고소한 참기름, 부드럽게 잘 풀어진 밥알이 한데 어우러져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쉴새 없이 죽을 퍼다가 입으로나른다. 더 빨리 옮기거라, 어서!어릴 때 친구들이 볼이 터지도록 한 입 가득 밥과 반찬을 넣고 오물거리며 한참을 씹는 나를 보고 다람쥐냐고 농담한 기억이 있다. 터질듯한 볼이오늘은 카지노 게임 다람쥐사이즈는 되는 듯싶다.오랜만에 죽을 먹어 그런 건지, 죽집이 더 맛있어진 건지, 전복이 가득 들어 신이 난 건지 여태껏 먹었던전복죽 중 가장 맛있다. 14,500원에이런 행복과 기쁨을 얻다니 꽤나 성공적인 아웃풋 아닐까 싶은데.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려 했지만 밥 먹고 신간과 베스트셀러 코너를 둘러보니 아이 하원할 시간이 1시간 정도 남는다. 감기에 걸린 아이 먹일 콩나물국끓이고 새 밥 짓고 다시 데리러 나가려면 이쯤엔 돌아가야지 싶다. 마트에서 딸기와 콩나물을 낚아채 계산을 마치고 부리나케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시 현생으로 돌아갈 시간.
나이가 든 건지 식욕이 줄은 건지 그래도 예전에는 세 끼는 꼬박 챙겨 먹었는데 이젠 그렇게 먹으면 속이 부대끼더라. 그래서 요즘은 두 끼는 메인이되, 한 끼는 간식을 먹거나 그냥 거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두 끼는 더욱 균형 있고 야무지게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그것도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남편과 아이가 없을 때의 식사는, 다시 말해 나 혼자 먹는 식사는 정말 대충 때우게 된다.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싶지 않고 누가 만들어 대접해 주는 것도 아니니 그냥 라면이나 물만두같은 간단한 음식으로 때우자 주의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저녁시간만 제대로 먹는달까. 뭐 대부분의 주부들이 나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음식솜씨가 좋으면 또 휘리릭 만들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넘치게 부럽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나를제일 먼저 아끼고 위해줘야지 누구에게 잘보살펴달라고 보챌 것인고. 만 원대 전복죽 하나 먹은 것 가지고 호텔 뷔페 먹은 것 마냥 호사스러워한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사의 가치는내가 가장잘 아는것이지 누가 대신기똥차게 알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4천 원짜리 김밥 한 줄을먹어도 행복에 겹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런 거다. 돈의 액수가무조건행복에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게우리네 인생사의꽤나 다행인 점아니겠는가. 카지노 게임가 배부르고 마음이 충만해졌으니 남편과 자식에게도 고운 말, 고운 행동이나갈 채비가 다 되었다. 카지노 게임가즐겁고행복해야 가정이 평화롭다는 말이있듯가화만사성은그리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