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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작가 Apr 19. 2025

터지는 폭탄

카지노 쿠폰은 명자를 보자마자 미치겠다는 듯 한숨을 쉬며 대한을 쳐다봤다


”쟤네들 다 같이 들어가네. 저것들 막내도 불렀겠지?“


명자는 베란다 난간에 붙어 서서 아래를 쳐다보고 있다가 기분 좋게 웃으며 거실로 들어왔다. 거실에 서서 그런 명자의 뒤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대한은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얘네들이 어쩌려고 이런 거짓말을...’


대한은 눈치껏 장단 맞추어준 게 은근 찝찝하고 걱정이 됐다. 설거지하고 있는 화령의 등을 쳐다봤다.

화령은 자매 중에 제일 예상 밖의 일을 한 적이 없는 진주가 태오와 이런 연기를 할 줄 몰랐다. 진주가 태오를 데리고 오겠다는 말조차 미리 해 주지 않았다. 진주가 정말로 태오랑 다시 시작해볼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명자는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드는가 싶더니 내려놨다. 대한이 명자의 옆에 앉으려는데 명자가 엉덩이를 들썩들썩 했다.


”내가 끼면 애들이 싫어할라나?“


대한은 애써 웃었다.


”저랑 한 잔 하실래요? 젊은 애들은 젊은 애들끼리 놓게 놔두고.“


”됐다. 너나 나나 이제 머리 다 희끗한데 무슨 재미로. 젊은 애들이랑 노는게 더 재밌긴 한데, 싫어하겠지?“

명자는 아쉬운 듯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거 같았다. 대한은 일부러 설거지를 천천히 하고 있는 듯한 화령의 등을 슬며시 쳐다 봤다. 명자는 리모컨을 누르며 여기저기 채널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미 마음은 옆 동에 모여 있는 애들한테 가 있는지 핸 채널에 리모컨을 고정 시키지 못했다.

대한은 왠지 느낌이 좋지는 않았다.

명자가 재미가 없다는 표정으로 TV 전원을 끄고 리모컨을 내려놓더니 벌떡 일어났다.


”산책이나 해야겠다.“


대한은 명자의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설거지하고 있던 화령도 두 손에 고무장갑을 낀 채 명자와 대한을 돌아봤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시간이 늦었어요.“


화령은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재빨리 벗더니 명자랑 대한 앞으로 다가왔다. 명자는 이미 현관으로 가 신발을 챙겨 신고 있었다. 대한은 어쩔 수 없이 방 안에 빠르게 들어가 명자의 가디건을 챙겨 나왔다. 막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 명자를 따라 신발을 챙겨 신었다.

대한은 왠지 불안한 눈빛으로 화령을 쳐다봤다. 화령은 갖은 한숨을 내쉬며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한은 명자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카지노 쿠폰은 유리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며 앉아 있었다. 잠들어 있는 유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그래도 진상에게 조금은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이야. 유리가 자꾸 울어. 내가 시간제 베이비시터 구했다고 했어. 시간 되면 내가 유리 데리고 올게. 그러니까 하루에 몇 시간만 씩 봐줘.“


카지노 쿠폰의 옆에는 진상이 챙겨다 준 유리의 물품 가방이 놓여 있었다. 안 그래도 고모를 피해 어디가 있어야 할지 멍했던 참이다. 왜 그리 갈 곳이 없는지, 희자와 진상 때문에 친구들과 연락을 안 한 지도 꽤 된 거 같았다. 아무 때나 편하게 연락할 친구 한 명이 없었다.

사랑해서 한 결혼도 아니고, 유난한 희자 때문에 진실이 어디 가는지 말을 안 하고 나가면 도망갔을까 봐 불안해하던 진상이었다. 진실은 유난한 희자와 희자를 이기지도 못하면서 진실이라면 벌벌 떠는 진상에게서 숨 막힘을 느꼈다. 그래서 식당 캐셔함에서 나름 티 안 나게 현금을 조금씩 빼돌려 비밀리에 취미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 비밀 취미 생활은 1년을 못 넘겼다. 희자에게 횡령죄 죄목으로 이혼 소송을 당했다.

진주는 진상을 의부증 증상으로 몰아 희자와 그나마 조정 합의를 이끌어 줬다. 하지만 갈 곳이 없고, 결혼한 지 10년이 안 넘은 카지노 쿠폰은 재산 분할조차 당당하게 받아내지 못했다. 생활비를 희자에게 감시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따로 모아 놓은 돈도 없었다.

그런 카지노 쿠폰 때문에 진주는 기존의 베이비시터를 내보냈다. 남한테 월급 주는 거 보다 가족한테 월급 주는 게 낫겠다는 진주의 결론이었다.


”미안, 더 빨리 오려고 했는데, 엄마가, 엄마가.“


헐레벌떡 뛰어온 진상의 얼굴에 진땀들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분명 희자의 감시를 피해 나오느라 애를 썼을 것이다. 어쩌다가 카지노 쿠폰에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목을 맨 건지 딱하기만 한 남자였다.

진상은 아무 말 없이 유리만 물끄러미 쳐다보는 카지노 쿠폰을 쳐다봤다. 유리를 쳐다보는 카지노 쿠폰의 그 눈빛과 시선을 소원하는 게 진상의 마음이었다. 유리를 쳐다봐 주는 그 눈빛의 시선의 반만이라도 진상에게 마음을 내주길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상이었다.

카지노 쿠폰은 좀 더 유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옆에 놔둔 유리의 물품 가방을 들어 진상에게 내밀었다.


”이렇게라도 유리 볼 수 있어서 괜찮아. 유모차 저 앞 사거리까지만 내가 끌어도 될까?“


진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지노 쿠폰은 유모차를 끌고 먼저 천천히 걸었다. 진상은 유리가 불편해할까 어쩔까 싶어 카지노 쿠폰 옆에 바짝 다가가지도 못하고 뒤를 따라 걸었다.





명자는 진주의 집이 있는 쪽을 힐끔힐끔 올려다보며 아파트 옆 공원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대한은 명자의 어깨에 가디건을 슬쩍 걸쳐 드리며 함께 걸었다.

명자는 공원 입구에 걸어 들어가면서도 진주의 집이 있는 쪽을 살짝 뒤를 돌아 힐끔 돌아보며 걸었다.


”이젠 노인네 됐다고 부르지도 않네.“


명자는 입을 삐죽거렸다. 대한은 그런 명자를 아무 말 없이 따라 걸었다. 그러다 명자가 뭔가를 발견한 듯 대한에게 손짓을 했다.


”내 안경 챙겨 왔던가?“


”안경은 왜요?“


명자는 대한이 걸쳐 준 가디건에 두 팔을 껴입더니 가디건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구, 여기있네.“


명자는 안경을 쓰고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하더니 어딘가를 고개를 내밀며 쳐다봤다.


”맞지? 막내 맞지?“


대한은 막내라는 소리에 명자가 쳐다보는 쪽을 쳐다봤다. 카지노 쿠폰의 옆모습이 보였다. 카지노 쿠폰이 유모차를 끌고 있고, 그 뒤에서 진상이 뒤따라 걷고 있었다. 대한은 ‘쟤네들이 왜 같이 있지?’ 싶으면서도 명자가 카지노 쿠폰을 부를까 봐 명자의 팔을 살짝 잡았다.


”지들끼리 산책하고 싶어 자매들 술자리에서 빠져나왔나 본데 방해 말고 그만 들어가시죠.“


”방해는 무슨.“


명자는 대한의 손을 뿌리치듯 휙 쳐 내더니 더 빠른 걸음으로 카지노 쿠폰과 진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진상은 뒤에서 따라 걷다가 카지노 쿠폰의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카지노 쿠폰의 옆으로 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뭔가 말을 꺼내려고 입술을 달싹이며 카지노 쿠폰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주머니에 넣고 있는 손도 뭔가를 꺼낼 듯 말 듯 꼼지락대고 있었다.


”저, 저기...“


카지노 쿠폰은 유모차를 끌며 진상 쪽은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할말 있으면 해.“


진상은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더니 카지노 쿠폰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카지노 쿠폰은 걸음을 멈추어서 진상을 쳐다봤다.

”뭐야?“


”어쨌든 유리 베이비시터잖아. 엄마 눈앞에서 정당하게 꺼내 온 돈이야. 1시간 단위로 정확하게 계산해서 꺼

내 왔어.“


카지노 쿠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유모차 손잡이를 쥐고 있는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냥 네가 써, 그 돈. 유리 내 딸이야. 나는 그냥 유리 면접 교섭권 받았다고 생각하고 봐주는 거야.“


”아니, 나는 그래도 우리 엄마 때문에 네가 한 푼도 못 챙기고 이혼했으니까 한 푼이라도 챙겨 주고 싶어서.“

”누가 너 보고 나 돈 챙겨 달래? 내가 유리 엄마이긴 해도 너랑은 이혼한 남인데 네가 왜 내 걱정해? 내가 거지로 보여? 어차피 나는 너 사랑해서 한 결혼 아니라고 말했잖아.“


”이게 다 무슨 소리냐?“


진실의 말이 끝나자마자 명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진실과 진상은 동시에 명자와 대한 쪽을 쳐다봤다. 카지노 쿠폰은 명자를 보자마자 미치겠다는 듯 한숨을 쉬며 대한을 쳐다봤다. 대한은 명자 옆에서 표정이 굳은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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