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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선 Apr 17. 2025

"미선 씨는 어느 카지노 게임 나왔어?"

부끄러웠던 나의 학벌

저는 경기카지노 게임교 국어국문학과 91학번입니다.

한때는 이 학력 딱지가 부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1990년 겨울, 고3이던 저는 대입을 위해S여대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력고사 세대라서 대입 시험을 지원한 카지노 게임에 직접 가서 치러야 했습니다.

안성 시골 구석에 살다가 서울에 있는 카지노 게임에서 시험을 치러야 한다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시험 전날 어디 몸 누일 데도 마땅찮았지요.

궁여지책으로 저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 보는 친척 언니의자취방을 찾아갔습니다.

하룻밤만 신세를 진 것입니다.

언니는 먼 친척뻘인 제가 온 게 많이 못마땅한 눈치였습니다.

저를 싫어하던 티를 팍팍 내던 언니를 못 본 척하고 하루를 거기서 묵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시험 당일 점심값도 주지 않으신 채 달랑 지하철 차비와 시외버스비만 주고는 가버리셨지요.

구파발이라는 낯선 곳에서 보낸 하루는 더없이 추웠습니다.

그리고더 낯선 카지노 게임 강의실을 찾아 꾸역꾸역 가서점심도 먹지 못하고 시험을 치른 저는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기대와 후기대로 나뉘어 각 전형에 한 번씩만 지원을 할 수가 있었지요.

가난을 온통 뒤집어쓰고 자란 저에게 재수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

저는 후기대 가운데서 비교적 안정권이었던 학교 중 하나로 경기카지노 게임교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카지노 게임 생활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카지노 게임교 진학을 포기하라는 엄마의 종용에 공부는 제쳐두었으면서도

막상 첫 번째 대입에 실패했다는 패배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MT를 가도 재미있지가 않았고, 그 흔한 '과잠'도 입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학과 공부는 흥미로웠지만, 학교 레벨(?)이 마음에 들지 못했던 것이지요.

저는 아래로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요, 저희 남매는 셋 다 모두 K대 출신입니다.

경기카지노 게임교-건국카지노 게임교-고려카지노 게임교.

K의 레벨이 다른 것뿐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저도 모르게 학벌주의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저의 패배감은 그렇게 약간 비뚤어진 마음을 품게 만들었지요.

참 어리석고 미욱한 마음이었지만, 그때는 아무튼 그랬습니다.


카지노 게임



이른바 학벌 가르기는 제가 대기업 생활을 하면서 많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학벌은 참 볼품없게 느껴졌을 정도로 다들 쟁쟁한 졸업장을 자랑했지요.

저는 잘 나가는 대기업의 홍보실에서 사보를 담당하는 일과 홍보 업무를 맡아 약 8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학벌 차별을 참 많이 당했습니다.

특히 기자들을 상대하는 홍보 업무를 맡았을 때엔 제 학벌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처음 상대하는 기자들을 만나면 제게 반드시 묻는 질문이 있었지요.

"미선 씨는 어느 카지노 게임 나왔어?"

"네, 경기카지노 게임교요."

"엉? 경희카지노 게임교?"

"아뇨, 경기카지노 게임교요."

"어? 어... 그래?... 음..."

출신 카지노 게임교를 꼭 따져 묻고, 학연 지연 다 따져 가며 연줄을 이어가려 하는데,

저와 같은 카지노 게임교를 나온 기자는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사 기자를 하려면 이른바 언론고시라고 불릴 만큼 어려운 시험에 통과해야 했고,

그래서 주요 언론사 출신 기자들은 SKY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지요.

대기업에 취업한 종사자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서 SKY를 비롯해 이른바 내로라하는 명문대 출신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버틴 저의 날들은 참 고단했습니다.

대놓고 무시를 한 건 아니었지만, 출신 학교를 따져 묻는 버릇은 참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어서

저를 초라하게 많이 만들었지요.


카지노 게임



저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고,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갈 무렵부터 영어 회화 학원을 다녔습니다.

다시 취업을 할 상태는 아니었지만, 뭐라도 해야 우울증을 더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란 의사의 권유 때문이기도 했지요.

학원에서 사람들과 친분도 쌓으며 회화를 배워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카지노 게임 생활과 관련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요,

한 젊은 수강생이 자신의 카지노 게임과 전공을 소개하더군요.

저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습니다.

"네? OO카지노 게임교라구요?"

"OO카지노 게임교를 졸업한 게 혹시 부끄럽거나 하진 않으신가요?"

정말 속물 같은 질문이었지요.

그녀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저는 제 전공인 피아노를 배우는 데 OO카지노 게임교 출신이라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오히려 자랑스러운 걸요!"

무언가에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좀 부족하다 싶었는데, 그녀의 당당함에 저는 갑자기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말문도 막히고 얼굴도 붉어진 채 그녀와 헤어져서는, 참 많이도 스스로를 창피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맞다며 핏대를 세웁니다.

여태껏 살아보고 나니, 제 나름대로 그 논쟁에 대한 답이 나오더군요.

바로 '정답은 없다'입니다.

누구나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만큼 학벌에 대한 생각들도 다 다르겠지요.

다만 제가 부끄러운 것은, 지난날 제 학벌을 부끄러워했던 제 모습입니다.

바꿀 수 없는 거라면, 저의 또 다른 재능을 키워나갈 생각을 했어야 했습니다.

저만의 장점을 더 살리고, 저만이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더 집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참 많이 아쉬운 날들을 허비했구나 싶기도 합니다.

학벌을 따지고 서열을 매기던 그때로부터 자유로워진 지금이어서 그럴까요?

전 이제 조금도 부끄럽지가 않습니다.

당당하지요.

그리고 이런 제 마음이 마음에 듭니다.

그러면 된 거라고... 그거면 충분한 거라고 따듯하게 마음을 보듬어 보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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