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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항아리 May 01. 2025

헤어질 결심

결심했어.

너와 헤어지기로.

힘들겠지만 해보기로.

나 혼자 설 수 있기를 바라.



중증카지노 쿠폰중독자. 나를 말한다. 평균 8시간을 사용한다. 11시간 이상 사용한 날도 있다. 앉으나 서나 카지노 쿠폰과 함께하는 사람, 카지노 쿠폰 일체형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무분별하게 카지노 쿠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부한다. 자부했다. 자부할 수 있을까?


나는 동영상을 볼 때도 건전한 것 교육적인 것만 본다 생각했다. 필요한 것만 챙겨본다. 공부를 위해 본다. 모두 카지노 쿠폰 사용을 위해 만들어낸 핑계에 불과하다.


글쓰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메모장을 열어 메모하고 사진을 찍는다. 다 글쓰기를 위한 일이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글쓰기 앱 사용은 그래서 시간이 늘어나는 거다. 글쓰기 수단으로는 괜찮지 않을까? 나는 당당하게 창조적인 활동, 건전한 활동을 하는 것인데... 그건 착각이었다. 공감과 조회수의 중독에 빠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는 엄청난 작가도 아니고 엄청 잘 나가는 블로거도 아니다. 하루 조회수 십의 자릿수를 밑돌더라도 조회수 중독은 마찬가지다. 바라고 바라고 바라는 사람의 심리는 숫자가 작든 크든 다르지 않다. 그건 돈이 있건 없건 돈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일면 비슷한 것 같다. 글쓰기로 조회수 중독에 빠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관심받기를 바라는 누구나 나와 같은 증상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나도 내가 이런 ‘관심 종자’인 줄 생각도 못했다.


생각 하나가 번뜩 떠오른다. 여름 티셔츠를 살까? 모든 것을 제쳐두고 카지노 쿠폰 속 쇼핑 몰로 들어간다. 티셔츠 하나만 살까, 계절이 바뀌니 운동화도 사고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남편 것, 내 것을 수두룩하게 고르고 원스톱으로 결제까지 하고 나면 두고두고 후회한다. 좀 생각해 보고 살 걸. 하지만 이미 쇼핑은 걸어 나가서 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너무 무겁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따지게 된다. 그런데 과연 생각 하나가 내 머리에서 번뜩 떠오른 것일까? 카지노 쿠폰이 나에게 말한 것은 아닐까? ‘보시오 사시오 고르시오~’계속 나에게 광고를 해대는 카지노 쿠폰의 의지가 은연중에 내 머리에 들어와 박힌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보내오는 그것에 나는 휘둘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쇼핑 중 AI가 권해주고 골라주는 종류의 카테고리를 타고 나는 이미 물건을 고른다. 쇼핑몰에서 추천해 주는 순서로 물건을 보게 된다. 나는 이미 내 의지를 반 이상 내놨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카지노 쿠폰을 내 통제하에 두고 나의 생각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원한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독립된 삶을 원하면서 한낱 기계에게 통제되는 삶이라니.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편하게 살지 뭐? 생각하지 않는 것 바보가 되는 지름길이다.자주 아이들의 밝은 웃음을 볼 수 있다. 얼굴에 전체에 퍼지는 멋진 미소. 왜 아이들은 나에게 저런 미소를 지어주지 않고 카지노 쿠폰 유튜브 영상에 저런 미소를 지어주는 것일까. 영혼 없는 밝은 미소. 바보의 미소다. 나를 바보로 만들고 아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사람. 그게 나였다. 나부터 절제된 습관을 가져야 한다.



나는 게임을 안 한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게임이나 다른 앱이나 똑같이 중독성이 있다.우리 아이들도 카지노 쿠폰 게임을 못 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대신 주말에 게임기를 이용한다. 그렇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카지노 쿠폰 게임을 안 하는 시간에 대신 유튜브에서 게임 방송을 본다. “우리 아이는 유튜브는 잘 안 봐요.” 아이의 카지노 쿠폰에 유튜브 앱이 없어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얼마나 기특한가. 검색 기능을 무한 사용한다. 우리 셋째 달복이가 그렇다. 게임 공략법을 정독한다. 나무위키에 얼마나 자세하게 잘 나와 있는지 모른다. 아이는 열심히 공부한다. 손바닥만 한 카지노 쿠폰 속 깨알 같은 글씨를 읽으면서 말이다. 괜찮은 일인가? 그리고 인터넷 검색이라고?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서 동영상을 본다. 유튜브를 안 본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다른 동영상들도 엄청 많다. 짧고 길고 다양한 중독성 있는 영상들이 있다. 그리고 다른 앱을 터치하는 건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다. 어제 아이의 사용 시간은 5시간 정도나 된다. 하교 후 엄마의 눈을 피해 계속 본다는 말이 된다. 때로는 내가 부르는데 귀를 닫고 있는 경우도 있다. 충전을 해 놓고 계속 손에 들고 구부린 자세로 심취해 있기도 한다. 대부분 책상 아래 두고 몰래 보는 모양새를 취한다. 왜 이렇게 비굴한 아이를 만드는 것인가. 나를 보는 듯해서 좀 찔리기도 한다.


심심하면 뭘 할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바로 카지노 쿠폰을 연다. 카지노 쿠폰을 여는 순간 생각은 정지되고 카지노 쿠폰이 안내하는 대로 사고가 흐르게 된다.


카지노 쿠폰은 인터넷이 된다. 바로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으니 편리하다. 카지노 쿠폰이 답을 바로 주니 좋다. 그러나 그런 답을 알아서 뭐 하지?꽃 이름을 알아서 좋다. 굳이 알면 좋겠지만 왜 알아야 하지? 그냥 아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지적 호기심 좋다. 그러나 지적 호기심이 단순히 대상의 이름을 일기 위한 것인가? 이름을 알아서 어디에 쓸 것인가. 아이에게 꽃 이름을 알려주려고? 아는 채 하려고? 호기심을 계속 부풀리고 키워서 여러 정보를 통합하고 생각과 생각 끝에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어떤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내가 듣고 이것을 통합해 의견을 도출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그런가? 얼마 전 꽃 이름을 검색했다. 꽃봉오리가 벌어지지 않은 노란 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수선화라고 쓰인 화분을 심었던 것 같은데, 검색창에 문의하니 노랑꽃창포라고 했다. 찰떡같이 믿었다. 그리고 글을 작성했다. 글을 완성하지 않고 미루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며칠 따뜻한 날씨 덕에 꽃이 피었다. 꽃을 찍어 검색하니 수선화라고 했다. 도대체 뭐가 맞는 것이지? 검색 기능은 여러 가지 테이터를 통합해 결론은 도출한다. 테이터가 올바르지 않다면 거짓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검색 결과를 맹신하고, 결과를 여기저기 다른 곳으로 퍼 나른다. 내가 찾은 결론, 데이터가 나와 같은 비전문가가 만들어 퍼 나른 결과물이라고 왜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전화나 자주 해. “ 어머니의 말씀이 전화만 하고 집에 오지 말라는 게 아닌 걸 안다. 자주 오지 못하면 목소리라도 들려달라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 전화만 하고 만다. 카지노 쿠폰 속에 전화, 문자, SNS, 카톡, 페이스타임, 줌 등 인간관계를 연결해 주는 많은 앱들이 있다. 카지노 쿠폰을 통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 물론 아주 유용하다. 그런데 왜 우리가 기계라는 가림막을 두고 연결되어야 하지? 집에서 나는 전화를 한다. 벽 두 개가 가로막고 있는 공간에서 문 두, 세 개를 열기 귀찮고 걸어가기 귀찮아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한다. 편리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하고 왜 마주하지 않는가. 왜 우리 사이에 누가 끼게 만드는 건지?




편리를 좇아 인간이기를 양보하지 말자. 재미를 좇아 바보가 되지 말자. 호기심을 좇아 화면 속으로 들어가는 우를 범하지 말자. 호기심은 내 머리의 상상 속에서 충분히 굴려야 한다. 뇌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을 왜 버리려고 하는가. 생각 없이 웃는 바보가 되기를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오늘도 카지노 쿠폰 중독자다.


퇴근길 나는 묻지. 오늘 뭘 했는지.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묻는 게 아니다. 카지노 쿠폰 속에서 오늘 하루 뭘 했는지 묻는다. 그게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나로 거듭나기 위해 카지노 쿠폰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내가 내 삶을 통제하기 위해.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내가 내 삶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그 아이와 헤어질 결심은 그 아이를 마음속에 가득 품고 사는 것과 같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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