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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론 Dec 31. 2024

그 놈의 돈이 뭔지

실제 사연을 모티브로 한 픽션#1

"여기는 죄다 감독질만 할라하고, 정작 일하는 사람이 없다니께"


해순 언니는 오늘도 뾰족하게 날이 섰다. 입사 후 언니의 웃는 얼굴을 본 것은 손에 꼽는다. 매달 월급날 아침이면 '어휴. 쥐꼬리만한 거라도 이게 어디냐'라며 자조 섞인 웃음을 내비치는 게 전부다. 그러고는 다시 김주임 험담을 이어간다.


"그 여편네 봐봐. 마포걸레 한 번 안 잡잖아. 요리조리 숨어 댕기기만 하고. 지가 무슨 관리자인 줄 아나 봐. (노조) 위원장 옆에 착 달라붙어서는 아주 얄미워 죽겠다니까. 어휴. 내 팔자야"


남의 험담하느라 자기 행복을 놓치고 사는 것 같아서. 언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항상 편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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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하철 청소 노동자다. 파출부와 아파트 청소를 오래 하다가 처우가 조금 더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쪽으로 왔다. 7년째 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딱히 불만은 없다.


남편은 아이가 초등학교 때 췌장암으로 먼저 하늘로 떠났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 손을 꼭 잡고 고생했다고 말 해주던 자상한 남편이었다. 동네에서도 금슬 좋은 부부로 유명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 부부에게 그 정도면 충분히 행복한 삶이었다.


같이 살던 외동딸은 재작년에 시집보내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자기 할 일을 척척해내며 이렇다 할 사춘기도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예쁜 딸이다.


일흔을 넘기고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 어디서든 주어진 일보다 더 해냈다. 내 집이다 생각하면서 청소했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족이 타고 다니는 지하철이라 생각하고 일했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든 관리자들에게 일 잘한다는 인정을 받고 다녔다.


아파트 주민들과 마주치면 언제나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지하철 역사 안에서 돗자리를 펼쳐놓고 물건을 판매하는 할머니를 보면. 그저 말없이 내 몫의 박카스 한 병을 건네주었다.나의 일터를 제일 행복한 공간으로 만든것은 언제나 내 스스로였다.


일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풍족하게 가져야 하는 것이. 진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임을 깨닫고는 줄곧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한다. 이제는 내 집 마련도 했고. 더 이상 돈 때문에 일하지 않아도 될 형편까지 되었지만. 일이라는 것은 돈만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갈 곳이 있다는 사실. 그곳에 가면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작은 것이라도 내가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어쩌면 일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 나를 더 아끼는 데 쓰는 도구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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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지하철 청소 노동자의 딸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빠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항상 나를 마중 나오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빠. 무서운 꿈을 꾸고 새벽에 일어났을 때. 안방으로 달려가 아빠 품에 쏙 안기면. 말없이 꼭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빠.


그런 아빠를 꼭 닮은 남자를 만났고, 나는 두 해 전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식 때 아빠 대신 혼주 석에 앉은 삼촌을 보며 하염없이 흐르던 나의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남편. 당신을 꼭 닮은 사람을 내 남편으로 보내준 것 같아서. 하늘에 있는 아빠에게 너무 고마웠다.


'아빠, 아빠가 보내준 이 사람하고 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정말 고마워 아빠. 그리고 보고 싶어."


엄마는 아빠 몫까지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아빠를 끔찍이도 사랑하던 우리 엄마.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할 만큼 했으면서. 충분히 간병했으면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더 잘해주지 못한 것만 계속 생각하며 눈물짓는 우리 엄마.


엄마는 사망 보험금으로 받은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엄마는 당신 끼니는 거르면서도. 나에게는 늘 고기반찬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부족함 없이 나를 키우셨다.


엄마는 그 힘든 청소 일을 하면서도 주어진 것에 늘 감사했다. 엄마랑 손잡고 시장에 갈 때면. '아니 얼굴이 왜 이렇게 고우셔요. 딸이 아니라 막냇동생 같네. 남편이 잘해주시나 보다'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우리 엄마는 곱다.


화장품이라고는 내가 사다 준 로션 하나만 몇 년째 쓰고 있는 우리 엄마. 그것도 비싸다며. 조금씩 찍어 바르는 우리 엄마의 피부 비결은 바로. 매사에 감사하고 주어진 삶을 긍정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이다.눈꼬리는 언제나 인자하며, 입꼬리는 항시 평온하다.


엄마는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집도 장만했다. 국립묘지 옆 달동네에 조그만 집이었지만 우리 집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우리 이름으로 된 집으로 처음 이사하던 날. 엄마가 말했다.'나영아. 오늘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 모녀 생일처럼 영원히 기억하자'라며 쇠고기를 잔뜩 넣은 미역국을 끓여서 나눠먹던. 그날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살던 달동네는 15년이 지나 재개발 소식이 들려왔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도 아파트 입주권을 준다고 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모녀 둘이 살기에는 제일 작은 24평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아니 카지노 게임 사이트 엄마는.'아크로리버하임'의 진짜 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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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아빠를 놓아줌과 동시에 엄마 또한 삶의 의지를 놓아버렸더라면. 그래서 여전히 우리가 영구 임대에 사는 것에 만족했더라면. 그래도 지금처럼 엄마가 저렇게 평온할 수 있었을까.엄마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도 투자라는걸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빠를 닮은 남편은 자상하고 누구보다 성실했다. 그러나 남편과 내가 버는 맞벌이 소득을 합쳐 봐야. 고작 중견기업에 다니는 외벌이 과장 수준이었다.


엄마가 부동산으로 자산을 일군 것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나도 엄마처럼 부동산으로 돈을 불리고 싶었다.종잣돈이 많지 않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그렇게 찾은 것이 생숙이라고 불리는 생활형 숙박시설이었다.


그 해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제주 한 달 살이는 이제 유행이 끝났다며. 모두가 속초와 강릉으로 몰려가던 그 해. 인구 100만이 넘는 지방 도시는 창원이 유일하다며 성산구 목 좋은 곳에서. 전국 곳곳에서 생숙 분양이 한창이던 그 해.


생숙은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을 적용받으면서도. 주택처럼 쓸 수 있다는 그 말에. 현행법상 숙박업인 줄 알면서도 시세 차익에 눈이 멀어. 용도 변경을 하면 상관없다는 허언을 철석같이 믿고 말았다.


건축법을 적용받기에 주차 공간 확보도 의무가 아닌. 무늬만 호텔급이지. 모텔보다 못한 생숙.그당시 내 눈에는 그게 왜 그렇게 좋아 보였을까.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깊게 잠에 든 날이 언제인지도 모른다.


술도 잘 못 마시는 나인데. 자기 전 맥주 한 캔은 어느새 수면제가 된 지 오래다.


오늘따라 엄마가 보고 싶어 동작역으로 향한다.


멀찍이 기둥 뒤에서 숨죽여 엄마를 바라본다.


파란 물걸레를 들고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닦고 있는 우리 엄마.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엄마.


차마 그런 엄마에게 어떻게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 미안해. 나 사고 쳤어"


그치만, 엄마가 나라면 어떻게 할까?


용기 내어 카지노 게임 사이트 엄마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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