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욕실 인테리어엔 역시
올인원 아이템 하면 역시 이것을 빼먹을 수 없다.
바로 욕실에서 쓰는 비누 말이다.
내가 비누를 쓰기 시작한 것은 딱 2018년 7월부터였다. 머리숱도 많고 길이도 긴 내가 샴푸를 버리고 비누로 갈아탄 계기는 아주 간단했다. 욕실을 깔끔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취업을 준비하던 2010년도 무렵, 집 앞에 새로운 미용실이 하나 생겼다. 화려한 장비도 없는 그 작은 1인 미용실은 생긴 순간부터 그 자리에서 30년은 영업한 곳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일단 커트비가 굉장히 저렴했다. 보통 다른 곳에서 머리를 자르면 이만 원은 넘게 주어야 했지만 그곳은 만 원 한 장이면 가능했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다녀온 엄마가 평하길, 이 원장님의 커트솜씨가 보통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펌이나 염색도 보나 마나 잘할 것 같다며 굉장히 만족해했다.
당시 나는 머리를 아침에 감아도 저녁이 되면 곧잘 하얀 조각들이 두피에서 보이는 것 때문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머리를 자르러 그 미용실에 갔는데, 원장님이 딱 보더니 이건 비듬이 아니고 각질이라고 했다. 그래서 비듬용 샴푸를 쓰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니 두피는 수분을 보충할 수 있는 제품을 사용하라는 진단을 내렸다. 당장 올리브영으로 달려가 수분 어쩌고 하는 제품을 사 와서 머리를 감았더니 문제의 현상이 싹 사라졌다. 명의가 따로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두피관리용, 머리카락관리용 샴푸 두세 가지를 욕실에 두고 사용했다. 머리숱이 많고 긴 편이라 헤어팩이나 트리트먼트도 두어야 했다.
힐링이란 명분 하에 향이 좋고 비싼 바디워시는 필수였고, 가성비를 위해 평상시에 쓸 바디워시도 따로 구비했다. 비비크림을 닦아내야 하니 폼클렌징과 오일클렌저도 있어야 했다. 손세정제는 물론 따로 두었다. 욕실 선반이 알록달록 물드는 것은, 당연했다.
공병을 사다가 정리할까 생각해 봤는데 내가 그만큼 부지런한 것 같지 않아 금세 그만두었다. 핑크색, 연두색, 흰색의 길이도 부피도 제각각인 통이 정신없어 보여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일본 저자가 쓴 미니멀라이프 책에서 욕실 인테리어에 대한 대단한 힌트를 얻게 된다. <욕실에는 알레포비누 하나만 두고 다용도로 쓴다는 문구를 읽자마자 세면대와 샤워기 사이에 하얀 욕실 타일을 배경으로 비누 하나만 외로이 놓여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카지노 게임 하나! 이거였다!
그전까지 비누로 머리 감고 샤워하는 것은 아저씨나 할 법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전혀 찾아볼 생각도 없던 방법이었다.
일단 그 일본인 저자가 썼다는 알레포 카지노 게임를 구입해 볼까 했다. 알레포비누는 시리아 지역에서 올리브유와 월계수입을 재료로 하여 오랜 기간 숙성시켜 만든 비누라고 하는데, 아뿔싸.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비누 수급이 어렵다는 문구만 계속 검색되었다. 일각에서는 너무 저렴한 것은 진짜 알레포 비누가 아니니 써 봤자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어렵게 하나 구입해서 택배로 받았는데 오잉. 웬 두부 같은 게 왔다. 생소한 그립감의 비누에 다시 홈페이지 상세설명을 읽어보니 잘라서 쓰라고 했다. 렌지에 비누를 살짝 돌려서 칼로 자르면 잘린단다. 커터칼을 써야 하나, 식도를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식도로 잘라보기로 했다.
그리고 대망의 첫 비누 샤워! 과연 느낌은...?
...인류가 왜 오랜 기간 동안 액체 세정제를 발명하려고 노력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유쾌했을지언정 상쾌하진 않았단 소리다.
손 닦기, 샤워, 세안은 전부 괜찮았다. 머리 감는 게 문제였다. 샴푸를 쓰고 났을 때처럼 찰랑거리며 두피가 개운한 느낌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샴푸와 바디워시의 세계로 돌아가기엔 욕실에 카지노 게임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그 광경이 도저히 잊히질 않았다. 인터넷에 여러 정보를 검색해 보니, 두피도 비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간이 필요한 것은 숙성비누뿐만이 아니라 두피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식초나 구연산수로 헹구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어떤 이는 약산성카지노 게임*를 쓰면 괜찮다고 했다.
* 엄밀히 말하면 카지노 게임는 염기성이므로 약산성이나 중성인 것에는 '카지노 게임'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고 하는 말도 있는데, 이 글에서는 편의상 '카지노 게임'로 통칭하도록 하겠다
어찌저찌 알레포 비누를 전부 다 소진하고, 다음으로 약산성 비누를 구입했다. 비누로 머리를 감은 뒤 세면대에 물을 받고 구연산 가루를 뿌려 녹여준 다음, 그 물로 헹굼을 했는데.
세상에! 유레카! 신세계!
샴푸와 린스를 사용했던 시절보다 두피는 더 뽀득뽀득, 머리카락은 더 찰랑찰랑했다. 게다가 저렴한 샴푸를 쓰면 비듬처럼 두피 각질이 일어나는 일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이후로 반년 정도 구연산 헹굼을 했고, 내 머리카락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비누에 완벽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행을 가면 내 개인 비누를 가져가지 않고 그냥 숙소에 비치된 샴푸를 사용하는데, 이제는 샴푸를 쓰면 머리카락이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누와 내가 서로에게 잘 길들여지고 나니, 이제는 <가성비라는 녀석을 챙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 카지노 게임, 저 카지노 게임 써 봤는데 결론.
저렴하게 막 쓰기에는 도브가 좋다.
센서티브는 아토피 있는 아기들도 쓰는 비누로 유명하다. 그 외의 가향이 된 도브는 솔직히 다 비슷비슷하다. 향이 고급스럽다기 보단 그냥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정도가 될 것 같다.
괌에 놀러 갔을 때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망고버터 카지노 게임가 있어서 구입해 보았는데 욕실에서 달콤한 버터냄새가계속 풍겨와서 좀 재미있었던 기억도 있다. 어쨌든 도브는 가격도 저렴하여 올인원 비누 입문으로도 괜찮고, 다이소에서 천 원이면 작은 사이즈의 도브뷰티바 하나만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라인을 쓰고 싶다면, '설거지바'로도 유명한 동구밭의 제품도 괜찮다.
동구밭에는 보통 샴푸바 린스바 따로 구분해서 팔지만 내가 추천하는 것은 <동구밭 알로에 아기카지노 게임로 아기나 성인도 쓸 수 있는 올인원 제품이다. 뽀득뽀득 잘 씻긴 기분과 촉촉한 마무리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우리 집엔 아기가 있다 보니 이 비누 하나 사서 아이도 닦여주고, 나도 사용한다. 어른샴푸, 어른린스, 바디워시, 아기샴푸, 아기바디워시, 폼클렌징을 이 비누 하나로 퉁칠 수 있다.
그래서 깔끔한 욕실 만들기에 성공했냐고?
이것에 대한 대답은 아직 세모다. 남편은 아직도 바디워시와 샴푸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비누 사용을 권해보았는데, 내가 처음 비누를 썼을 때 적응기간이 좀 필요했던 것처럼 남편도 적응기간이 필요한지 사용감이 좋지 않다며 번번이 거절했다.
그렇다고 샴푸 다 쓰고 나서 똑 떨어질 때 '이제 어쩔 수 없으니 이제 비누를 한 번 써봐'라고 한다면, 남편은 당장 써야 할 물건의 재고가 떨어지는 것을 못 참겠다며 샴푸나 워시를 대여섯 통씩 사서 쟁여놓을 것이 분명하니 샴푸 소진을 기다리는 것도 할 수 없다.
뭐, 각자에겐 각자의 방법이 있는 것이니까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