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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의 생각 Oct 01. 2024

2 - 소희

동면이인을 찾아서



“이렇게 보면, 사르트르의 주인공 로캉탱이 느낀 ‘구토’와 카뮈의 주인공 뫼르소가 외쳤던 반항 어린 절규에는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로캉탱은 자신이 그 무엇과도 같지 않음을 느낄 때마다… 아무런 목적도 명분도 없이, 그저 덩그러니…


해설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라며,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대학 도서관 진기성이었습니다.”


미술관 기획전에서나 들어볼 법한 장광설이다. 조금 전까지 내가 늘어놓았던 번지르르한 말들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내가 도서관에 돌아온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으로 있기 위함이었다. 나는 내 둥지를 찾아 돌아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둥지는 자신을 탈피하기 시작했다.


출판사들은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의 비가역적인 편중화 현상 속에서 종이책을 ‘고급화’하기로 결정했다. 코덱스codex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도서관 역시 이 흐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서 직원의 수가 큰 폭으로 줄었고, 전산 행정과 서가 운영은 거의 완벽히 자동화되었다.


변한 것은 도서관뿐이 아니다. 진보된 AI와 양산형 휴머노이드의 노동 시장 진출은 말 그대로 세상을 뒤엎고 말았다. 원래라면, ‘노동’은 개인에게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러나 절약된 생산비용만큼 과감한 ‘소득 정책’이 단행되면서 ‘연명을 위한 노동’은 옛말이 되었다. 이제 무언가를 해야 한다 또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우리는 명백히 세기말을 지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사서로서 계속 근무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냥’ 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세상이 되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이곳을 떠날 이유도 딱히 없었다. 어차피 내가 도서관을 떠나 어디에 있든지, 크게 변하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전부터 도서관은 나에게 ‘답 없는 곳’이었고, 지금은 세상조차 그런 곳이 되었을 뿐이니까. 어떻게 보면 이 세상 자체가 도서관이 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히려 이런 세상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제 답 없는 질문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다만 불편한 점이 하나 있다면, 사서에게 주로 요구되는 직능과 업무가 변했다는 것이다. 이제 ‘책’ 자체가 공예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에-덕분에 요즘 손에 잡히는 물성을 획득하는 책들은 대체로 모든 측면에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사서들은 이 공예품들을 위한 ‘전시회’를 기획해야 했다.


사서가 이미 잘 엮인 책들을 모아 하나의 꾸러미로 다시 엮어내면, 도서관에서는 이 꾸러미를 플롯으로 하는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저자가 살아있다면 저자와의 대담을 진행해야 하고, 오늘처럼 이미 세상을 떠난 저자들의 책을 주제로 하는 경우, 사서는 큐레이터이자 호스트로서 저자를 대신할 권위자를 초빙하거나 종종 스스로 그 저자를 위한 메아리가 되어주어야 했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업무는 내 성향과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물론 전혀 못 할 일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내 성격이 전형적인 우울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외향적인 연기를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내가 밝고 외향적인 사람인 줄로 착각하기도 했다. 내가 소요학파 놀이를 위해 사서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3년간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무리 없이 이어가고 있는 것도, 내가 남들이 보기에 충분히 사회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심지어 나는 연애도 하고 있었다-.


비록 내 내면이 다른 이들처럼 끊임없이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질주하지는 못하더라도, 육신만큼은 애써 그들의 천진한 세계로 내려와, 기꺼이 떡과 포도주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내가 아닌 무언가 되어주기를 바라지만 않는다면, 나는 누구와도 기꺼이 형제의 의리를 맺을 수 있었다. 나도 딱히 타인에게 나만의 세계를 강요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렇게 했다면, 그만큼 모순적인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타인에게 나와 어울리기 위해-혹은 어울리지 않기 위해-스스로가 아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세계는 나의 세계일 뿐이며, 타인의 세계는 타인의 세계일 뿐이었다. 내 안에서나는 언제나 나 자신일 뿐,타인의 세계 안에 를 위한 장소는 없었다.만일 내 육신이 그들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면, 그들이 빼앗을 수 있는 건 단지 내 표정과 몸짓일 뿐, 그 안에 있는 것까지는 결코 수정하지 못했다.나만의 세계와 타인만의 세계로 된 ‘심신 이원의 중첩 상태’. 영원히 그 누구도 관측할 수 없는 심연 안에 ‘은닉’된 존재. 이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였다. 이런 내 존재 방식은 상대가 누구이든 변함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세간에서 ‘사랑’이라는 말로 엮여 생각되는 관계-연인-였을지라도 말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사진: Unsplash의 Justyn Warner



초점 없는 시선을 바닥에 던지며 도서 박람회 해설만큼이나 장황한 상념에 빠져있던 그때, 웬 여인의 몸뚱이가 내 시야를 침범했다.


“역시 말솜씨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네. 인상 깊은 해설이었어. 철학과라서 그런가?”


느닷없는 상찬으로 대화를 시도해 온 상대는 다름 아닌 나의 연인, 소희였다.


“철학과 학생들이 다 나처럼 말도 잘하고 똑똑하고 잘생긴 건 아니란다.”


“혹시 지금 철학적인 철학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건가요?”


“하하하, 오늘 처음으로 웃은 것 같아.”


정말이었다. 분명 객들과 소통하는 중에도 몇 번인가 웃는 척을 했다지만, 우러나온 웃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은 달랐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는 종종 이렇게 사람의 허를 찌르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이런 의외성 있는 농담에 다소 취약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잘만 웃던데.”


“내가 그랬던가? 뭐, 내가 웃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지금이 처음이니까, 처음 웃은 거나 마찬가지지.”


지겹지도 않냐는 듯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일도 거의 끝난 것 같은데, 얼른 마무리하고 식사나 하러 갑시다.”


소희는 내가 방문객들의 퇴장을 돕는 동안, 전시실 맞은편에 있는 서가를 구경하며 기다렸다.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뒤, 퇴근하는 동료 직원들에게 몇 마디 인사를 던지고 서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책장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기다랗게 늘어진 텅 빈 거리가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다 돌아갈 때쯤, 나는 문득 이 반복되는 책과 여백의 윤회가 영원할 것만 같다는 인상에 사로잡혔다. 나는 가장자리를 따라 회전하는 것을 그만두고, 바로 앞에 있는 통로 내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로봇이 정리한 책들의 상태는 기이하리만치 반듯했다. 기계적인 풍경에 내심 경탄하던 도중, 왼쪽 책장에 불룩 튀어나와 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으나, 특이한 점은 없었다. 나는 심혈을 기울여 책장을 평탄화하며 로봇들의 기교를 흉내 내 보았다.


툭.


눈앞에 있는 책장을 이제 막 원상태로 돌려놓았는데, 바로 옆 칸에서 책 한 권이 다시 튀어나왔다. 나는 그제야 이 이상 현상의 배후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 기척을 숨기며 내 동선을 뒤따라왔을 것이다. 나는 슬며시 힘을 주고서, 반대편 책까지 내 힘이 닿도록 과도하게 밀어 넣었다. 그러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내 쪽에 있는 책이 책장 밖으로 튕겨 나올 정도로 더욱 힘차게 응수해 왔다. 그렇게 서너 번 주거니 받거니 하기를 반복하다, 내 쪽으로 밀려 나온 한 책의 제목을 보고 동작을 멈추었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싱클레어라는 주인공이끊임없이 진정한 자아상에 접근하기 위해 쇄신을 반복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나는 떨어진 책을 주워 들고 잠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래?”


갑작스러운 정지에 걱정되었는지, 책들과 상단부 칸막이 사이 빈틈으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나를 살피며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야.”


좁아터진 빈틈으로 내 손에 들린 책을 탐색하려 애쓰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모습에 다시 한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 책 주인공이 너를 닮은 것 같아. 그래서 네가 더 흥미로운 걸까?”


“흥미라….”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조금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망시키려고 한 얘기는 아니었다. 연인-애정의 대상-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그리 애틋한 인상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족한 표현조차도, 나처럼 표리부동하고 아성 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표현 중에는 나름 최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소희는 정말 내가 요즘 유일하게 흥미를 느끼는 대상이었다. 그녀와 내가 처음 연을 맺게 된 계기는 A.X.A의 매칭 기능을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이미 이 학교의 교직원이었다. 한편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이곳에서 4학년 학생으로 ‘미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전공 이외에도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이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좀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이제 노동조차 필수사항이 아니고, 대학교도 이미 아카데미의 기능으로 원상복구 된 세상이다. 내가 만난 사람 중–‘인플루언서’들을 제외한다면-뭔가를 할 때, 취미생활 이상의 열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이런 드문 부류에 속했다.


그녀의 열정은 취미생활이라기에는 지나쳤고, 그렇다고 ‘성공’이나 ‘인기’ 또는 ‘영향력’을 바라는 사람이라기에는 과도하게 클래식했다. 대화형 생성 AI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적당히 양질의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교에 입학해 미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림 그리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성 AI에게 지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양하고 뛰어난 화풍을 내 의도에 맞게 구현해 내는 세상이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개의치 않고 캔버스 위에 붓질하는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간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로 미루어 보건대, 그녀도 이런 접근법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닌 듯했다. 오히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이런 현실을 너무도 잘 인식하고 그 속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물론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이토록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측면에서, 헤세의 주인공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전진하는 플롯에 관해서만큼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충분히 한 명의 싱클레어인 것이다.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졸업한 후에도-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데미안》을 다시 제자리에 끼워 넣고, 반대편에 있는 책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향해 밀려나도록 힘을 주며 말했다.


“흥미도 엄연히 사랑의 구성요소인걸.”


“어머, 사랑에 관해 조예가 좀 있으신가 봐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말에는 은근한 조소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 조소는 그다지 내 감정을 할퀴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사랑’이라는 관계, 아니, 정서적인 교류가 전제된 사람 간의 모든 관계에 밝지 못한 사람이다.


“그렇게 내 감정이 미덥지 못하다면, 나 같은 사람과 계속 어울리는 다른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보군요?”


비겁하지만, 진심으로 궁금하기도 하기에 나 역시 응수에 나섰다.


“A.X.A가 만나보라길래….”


…….


그녀가 자신을 향해 밀려난 쿤데라의 책을 꺼내 들며 말했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뒤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가벼운 사람은 싫었을 뿐이야. 네가 겉으로 보기에는 한 무게 하잖아.”


그리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이렇게 덧붙였다.


“너는 주관이 뚜렷하고 변하는 걸 무서워할 뿐이야. 정작 스스로 뚜렷한 자아가 있는 건 아니잖아.”


정곡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에 대해 생각보다 깊은 통찰을 지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늘 그렇듯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예상을 비껴가는 의외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미스터리야말로 내가 느끼는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마치 한 발 접근하면 그만큼 다시 멀어져 있는 지평선, 해석되지 않은 난제와도 같았다.


“그렇다면 더욱 네가 내 곁에 계속 있는 이유가 궁금해질 뿐인걸.”


“그게 정말 중요하긴 한 거야?”


“….”


나는 즉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재차 고개를 가로젓더니, 순서를 가로채며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뱃가죽이랑 등딱지랑 상견례를 시작했네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사진: Unsplash의 Mink Mingle



어지럽힌 도서들의 정리는 유능한 ‘사서-봇’들에게 부탁하고, 우리는 함께 지내는 방으로 돌아왔다. 간단한 식사 후,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합의했다. 낮에 말을 너무 많이 했던 탓인지, 나는 방에 도착한 순간부터 쏟아지는 졸음을 애써 참고 있었다. 내가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먼저 “오늘은 일찍 자”라며, 배려해 준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서가에서 중단했던 토론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이렇게 둔해진 정신으로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나의 관계에 관한 지난한 문제를 첨예하게 전개할 수 없을 터였다.


“아직 안 자네?”


나는 천장을 향해 있던 시선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옮겼다. 그녀도 이제 잠을 청할 준비를 마친 듯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같이 쓰는 침대 하단부에서부터, ‘낮은 포복 자세’로 누울 자리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으레 그렇듯 나는 그녀가 벨 수 있도록 한쪽 팔을 내주고 웃으며 말했다.


“점점 능숙해지네.”


“내가 못 하는 게 별로 없어서 말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내 팔을 베개 밑, 침대와 목덜미 사이 공간에 위치하도록 조정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근데 요즘은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그 짓거리잘 안 하나 보네.”


그 짓거리란, 소요학파 놀이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알게 된 이후에도 가끔 소요학파 놀이를 즐기느라, 도서관에서 새벽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연애 초반에 그녀가 내가 정말 ‘그 짓거리’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서관에 온 적도 있었는데, 아마 내가 의심스러워서라기보다는, ‘그 짓거리’-‘소요학파 놀이’-가 대체 어떤 ‘짓거리’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데스크에 앉아 『포스트-휴머니즘에 관한 현상학적 비평』이라는 철학 논문을 펼쳐 두고 도서관에 고용된 ‘사서-봇’ 세 대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두 대는 서로 마주 보게 하고, 나머지 한 대는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영상을 보며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도록 지시해 둔 것이다. 당시 소희의 반응은 나와 내 부당한 지시로 인해 고통받고 있던 세 로봇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게 그 소요학파 놀이야?”


그 뒤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내 고상한 취미를 ‘그 짓거리’라며 평가절하하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상당히 진지한 태도로 실험에 임했던 것인데 말이다. 당시는 대학 도서관에 ‘사서-봇’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흥미도 흥미였지만 경계 태세를 취하고 그 기계들을 탐색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녀 말대로 나는 요즘 들어 전혀 이 ‘소요학파 놀이’를 못하고 있었다. 아니면 안 하고 있던 것인가? 그 기점이 어디인지, 변인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지는 못했지만, 최근에 나는 그 짓거리를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지적-그 짓거리를 요즘 안 한다는 지적-에 동조하며 어느샌가 다시 천장을 향해 있는 시선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로 옮겼다.


“그런데, 아까 도서관에서 했던 이야기 말인데….”


날카로운 지적 때문에 졸음이 달아난 탓인지, 내 의식은 다시금 풀지 못한 난제를 향해 흘렀다. 내가 말꼬리를 흐리며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눈치를 살피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곧장 내 눈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말해봐.”


나는 이어서 말했다.


“A.X.A는 대체 어떤 기준으로 우리를 연결해 준 걸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잠시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내 쪽을 보며 대답했다.


“아마 서로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을 매칭시켜 준 것 아닐까?”


“확실히 우리가 서로 많이 다르긴 하지.”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의견에 동조하며, 논의를 확장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끌린다는 견해도 흔한 법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만약 네 말이 맞다면, A.X.A의 전략은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이 질문은 도서관에서의 대화와 핵심적인 측면에서 맥이 통하는 문제의식이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이를 눈치챈 것인지,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똑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나는 그게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네 생각은 좀 다른가 봐?”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덤덤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화면에 대고 말했다.


“A.X.A야, 너는 왜 나랑 이 오빠를 매칭시켜 준 거야? 이 오빠가 궁금해 죽을 것 같은가 봐.”


“안녕하세요, 진기명기 님, 저는 진기명기 님과 소히공듀 님 같은 사용자들의 ‘자기표현’과 ‘사회적 관계’의 최적화를 보조하기 위해 개발된 ARTIFICIAL X ATTACHMENT 사의 인공지능 코파일럿입니다. 저는 진기명기 님과 소히공듀 님의 소중한 인연을 돕게 된 일에 매우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데이터 기반의 학습으로 태어난 인공지능으로서, 제가 소히공듀 님과 진기명기 님의 관계를 지속하는 일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되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두 분의 돈독하고 애정 깊은 관계에 도움이 될 몇 가지 조언을 제공해 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진기명기 님과 소히공듀 님의 애정 관계는 전적으로 두 분의 의지와 이해, 그리고 양보와 배려에 달린 것으로서….”


“혹시 더 들을 거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AI가 떠벌이는 훈계가 지루했는지, 실컷 떠드는 ‘그것’을 이불 안에 덮어버렸다.


“그래, 그만 듣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조작했다. 나 역시 A.X.A의 따발총 같은 연설로 인해 혼미해지려던 참이었다. 정신이 몽롱해진 탓인지, 그녀가 톡톡 거리며 휴대폰을 건드릴 때마다 그녀의 머릿결과 살결이 풍겨 내는 냄새가 점점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여전히 휴대폰 화면을 쓸어내리고 있었고, 나도 베개로 내어준 팔을 접어 그녀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렇게 몇 분인가 흘렀는데, 돌연 그녀가 휴대폰 화면을 내 얼굴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이거 혹시 너야?”


산통을 깨는 듯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돌발적인 행동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속에 있는 사람은 명백한 나 자신이었다. 다만, 화면 속에 있는 내 모습은 어딘가 묘한 위화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거, 오빠/나 아닌 것 같은데….”


소희와 나는 동시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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