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야,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얼른 일어나.”
“카지노 쿠폰, 나 못 일어나겠어요. 흠냐...”
“늦겠어, 얼른 일어나. 새 학기 첫날부터 늦으면 안 카지노 쿠폰!”
“5분만~~~ 아니, 나 학교 안 갈래”
“으이그! 그래도 학교 가야지! 네가 선생인데! 너희 반 애들은 어쩌고!”
맞다. 나는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최민지다. 오늘은 3월 2일. 어김없이 새 학기는 다가왔다. 새 학기 첫날은 늘 긴장과 설렘이 공존한다. 오늘 하루를 지내보면 답이 나올 거다. 올 한 해의 나의 삶이 그럭저럭 지낼만할 것인가, 아니면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야 할 것인가.
기지개를 크게 켜면서 스트레칭을 해본다.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새 학기 첫날인 오늘이 중요하다는 것은7년의 교사생활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민지야, 오늘따라 화장을 오래 하네? 대충 하고 밥 먹어.”
“엄마, 나 오늘은 아이라인 조금 두껍게 그리고 눈꼬리 좀 챡 올라가게 그렸는데, 어때요? 좀 무서운 선생님 같아 보여요?”
“아니, 하나도. 맨날 하던 사람이나 하지. 영 어색하고 안 어울린다. 아이라인 두껍게 했다고 애들이 무서워하면 너도나도 다 호랑이 선생님이지. 얘,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얼른 밥이나 먹어. 카리스마는 밥심에서 나오는 거야.”
“엄마는 몰라서 그래, 그래도 이렇게 화장 좀 두껍게 하고 검은색 옷 입고 가면 약간 카리스마 마녀선생님 느낌 나지 않을까?”
“마녀 아니고 미녀라고 하겠다. 미친 여자.”
“카지노 쿠폰!!! 딸보고! ”
“아 미안미안, 농담이야~ 얼른 밥 먹자, 내 새끼~”
평소엔 비비크림에 립스틱 바르는 게 다인데 오랜만에 눈화장을 하려니 아무래도 어색하다. 겨우 마무리하고 식탁에 앉아본다.
“엄마, 오늘 아침메뉴는 뭐야?”
“어제저녁에 갈비탕 끓여놨지~ 너 어제 친구 만난 다고 저녁 먹고 들어와서 몰랐지? 아직 날이 좀 쌀쌀하더라고. 먹고 든든하게 하루 보내라고!”
“카지노 쿠폰는 역시 센스쟁이. 국물 먹으니까 속이 뜨~끈하니 너무 좋다. 이래서 카지노 쿠폰랑 같이 살면 좋다니까.”
“야! 아침부터 잔소리 들어볼래? 올해 서른도 됐는데 슬슬 시집갈 생각은 없어? 언제까지 주머니 속 캥거루처럼 카지노 쿠폰랑 딱 붙어 지낼 거냐. 남자도 좀 사귀고~ 아니면 나가서 좀 살든가. 다 큰 딸내미 먹여주고, 입혀주고, 청소해 주고. 카지노 쿠폰도 이제 카지노 쿠폰 인생 좀 살자.”
“워워~ 카지노 쿠폰. 시집가고 싶은 사람을 만나야 시집을 가지. 한 손으로 박수를 어떻게 치겠어. 막말로 쥐꼬리만 한 내 월급에 월세까지 내고 나면 돈이 모아지겠어? 좀만 카지노 쿠폰한테 치대면서 지낼게~ 나중에 시집가고 나면 카지노 쿠폰도 나랑 같이 지낸 게 그리울걸?”
“하나도 안 아쉬울 거니까 얼른 좋은 사람 있는지 눈에 레이저를 켜고 보란 말이야. 결혼가 다 때가 있는 법이야. 적당한 혼기를 놓치면 좋은 짝을 찾기가 어려운 법이에요.”
“아! 카지노 쿠폰도 동네 다니면서 괜찮은 혼자 사는 아저씨 있는가 레이저를 켜고 잘 봐봐. 난 새아빠도 얼마든지 오케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얼른 먹고 학교가. 한마디도 안 지고 따닥따닥 말대꾸는 잘해요.”
"히히. 사랑해요. 김점순여사님~"
"됐거든~ 하나도 안 예쁘거든~"
밥을 서둘러 먹고, 미리 다려놓은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치마, 검은색 재킷을 입었다. 이런 정장 옷은 일 년에 몇 번 잘 입지는 않지만 오늘은 첫날이니까. 요새 살이 좀 붙었는지 운전하느라 페달을 밟는데 치마가 영 끼이고 불편하다. 봄방학 한 후에 스트레스 푼다고 친구들이랑 맛집투어를 좀 했더니 살이 쪘긴 쪘나 보다.
‘오늘따라 차가 왜 이렇게 막히는 거야. 아, 오늘은 일찍 가서 애들 들어오기 전에 미리 앉아서 분위기 좀 잡아야 되는데. 망했네. 엄마랑 괜히 투닥거린다고... 이거 카지노 쿠폰 안 되겠는데?’
8시 15분까지는 도착해서 교실정리도 좀 하고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30분이 넘어서야 학교에 도착해 버렸다.
‘40분까지 출근이니까 빠르게 주차하고 얼른 뛰어서 올라가면 세이프겠어.’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래, 안녕. ”
후다닥 올라가는데 아이들이 인사를 한다. 바쁠 때면 더 많은 아이들이 인사를 해오는 것 같다. 아무 일 없는 듯 태연하게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교실로 올라간다. 계단을 뛰어오르는데, 나처럼 뛰어올라오는 한 남자 선생님이 있다.
‘누구지? 못 보던 얼굴 같기도 하고, 낯이 익기도 하는데? 어머. 옆반 선생님이잖아. 2월까지는 꺼벙이 안경을 끼고 오더니 안경을 벗으니 다른 사람 같네. 뭐야, 완전잘생긴 얼굴이었잖아. 정장 입으니 사람 또 달라 보이네.’
“안녕하세요, 서현우 선생님! 안경 벗으니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 선생님. 봄방학기간 동안 라식수술을 했어요. 안경 벗으니 세상이 완전선명하게 보여요. 그런데 저 지금 좀 급해서. 죄송하지만... 먼저 올라가 볼게요.”
“네~ 나중에 뵐게요.”
긴 다리로 계단을 2~3칸씩 겅중겅중 뛰어올라가는 뒷모습을 순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벌써시간은 8시 37분이었다..
계단을 후다닥 올라 3학년2반 교실에도착하니 39분! 세이브. 교실 앞문을 열기 전 창문 틈으로 아이들이 얼마나 와있는지 보니 대부분 교실에 앉아있다. 칠판에 미리 붙여놓았던 좌석배치표를 보고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아있었나 보다.
‘좋았어. 들어가기 전, 외모체크. 근엄하고 단호한 선생님 컨셉 체크. 오케이 완료. 입장!’
교실문을 열고 “2반, 안녕!”하고 말하는 데 창문 빈틈으로 보이지 않았던 두 아이가 서있다.
한 명의 여자아이는 울고 있고 한 명의 남자아이는 씩씩거리고 있다.
“어머, 너희들은 왜 지금 서있니? 너는 왜 울고 있고, 너는 왜 씩씩거리고? 새 학기 첫날부터?”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