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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꿈샘 Mar 21. 2025

06 희랍어시간-카지노 게임/문학동네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고 침묵 속에서도 말할 수 있다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한 남자와 말()을 잃어버린 한 여자가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유전적인 질환으로 마흔 살이 되면 실명이 될 거라는 의사의 통보를 받은 남자는 어릴 때 온 가족이 독일로 이주했다가 홀로 한국으로 돌아와 아카데미에서 희랍어와 플라톤 원전 강독 수업을 하고 있다.



열일곱 살 되던 해 말을 잃은 여자는 두 해를 지난 어느 겨울, 불어 시간에 배운 '비블리오떼끄'라는 단어를 알게 되면서 입술을 달싹거리게 되었다.



* 비블리오떼끄(bibliothèque): '도서관, 편집숍'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다시 말을 하게 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와 편집대행사에서 일하고 대학과 예술고등학교에서도 카지노 게임을 강의해왔다.

결혼도 카지노 게임 아이도 낳았으나, 어떤 원인도 전조도 없이 또다시 말을 잃어버렸다.



반년 전에 어머니를 여의고, 수년 전에 이혼카지노 게임, 세 차례 소송에도 결국 아홉 살 난 아들의 양육권을 잃은 게 심리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엄마가 그녀를 임신했을 때 장티푸스에 걸려 알약을 한 달 남짓 복용했는데 그게 이유였을까...)



미쳤군.

막 의식을 차린 그녀에게

어둠 속의 사람이 내뱉었다.

미친 여자한테 그동안

아이를 맡기고 있었어.


세 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막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

- 카지노 게임, 164~165p -



어쩌면 그녀가 입을 닫은 것은 조각난 면도날처럼 긋고 찌르는 말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 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로 인해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나도 때로는 침묵카지노 게임 싶을 때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그녀를 이해하게 되는 대목이다.



자신을 사람이기보다는 어떤 물질이라고, 움직이는 고체이거나 액체라고 느끼는 그녀가 침묵의 얼음 속에서 온 힘을 다해 건져내 들여다보는 것은 이주에 하룻밤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아이의 얼굴과,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쓰는 죽은 희랍 단어들뿐이다.


카지노 게임세 번역이 모두 옳다. 왜냐하면 고대 카지노 게임인들에게 아름다움과 어려움과 고결함은 분절되지 않은 관념이었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카지노 게임 소설을 읽다보면 이렇게 반대되는 문장을 연달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살아갈 희망이었던 아이가 외국으로 이민 간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망연자실했을 그녀. 이제 그녀를 구제해 줄 수 있는 건 뭘까.



어떤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그 사람은 물끄러미

나를 건너다보았어.

그때 내가 느낀 이상한 절망을

너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여자의 침묵은 두려운 데가,

어딘가 지독한 데가 있었어.

- <희랍어 시간, 남자가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카지노 게임



그런 그녀의 존재를 차츰 의식하고 소통하려는 남자는 바로 희랍어를 가르치는 강사다.



그들은 어느 날 한 사건을 통해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아카데미로 날아든 작은 새를 밖으로 내보내려던 남자는 계단으로 굴러떨어지게 되고 눈이나 다름없는 안경도 깨뜨린다.

이를 목격한 여자가 남자를 부축해 그의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둘의 관계는 급진전하게된다.



남자와 여자는 아무도 없는 남자의 집에서 온전히 마주하게 된다.

볼 순 없지만 말할 수 있는 남자는 여자에게 궁금한 것을 하나하나 묻는다.

말할 순 없지만 볼 수 있는 여자는 그를 면밀히 관찰하며 마음속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고 침묵 속에서도 말할 수 있다.



마침내 그 남자는 견딜 수 없이 떨리는 왼팔을 들어, 처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안는다.

그리고 눈을 뜨지 않은 채 그는 그녀에게 입을 맞춘다.

기댈 곳이 없었던 남자와 여자는 이제 서로의 연약한 부분을 어루만지며 살아갈 것이리라.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사랑은 상대방의 가장 약카지노 게임 연한 부분을 아는 것이다.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 단 한 번이라도 으스러지게 마주 껴안아주는 것이다.

그런 대상이 존재한다면 어떤 상황이 와도 끝내 무너지진 않을 것이리라.



이제 여자의 진가를 알아주는 남자를 만났으니 그녀에게 심리치료사가 해줬던 말을 다시 해주고 싶다.



"이제 당신은 훌륭히 자랐으며 힘을 가지게 되었어요.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위축되지 않아도 돼요.

목소리를 크게 해도 괜찮아요.

충분히 공간을 점유카지노 게임 어깨를 곧게 펴세요."



<여수의 사랑 <바람이 분다, 가라 <소년이 온다에 이어 <카지노 게임 시간은 카지노 게임소설로는 네 번째 읽은 책이다.

앞서 읽은 책들의 무게감에 짓눌려 한동안 헤어 나올 수 없었는데 이 책은 나를 잠시 동안 환기시켜주었던 '쉼표' 같은 책이었다.



함께 이 책을 읽었던 글벗들은 <카지노 게임 시간을 아름다움, 희망, 어려움, 사랑, 받아들임, 질문하고 싶은 시간 등 다양한 단어들로 표현해 주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카지노 게임 작가의 책에서 흔히 등장하는 검은색, 고통, 침묵, 밤, 어스름, 어둠, 죽음, 고요함, 눈, 정적 같은 단어가 많이 등장하지만 그 단어들이 결코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다웠다.




책을 읽는 내내 고요하고 낭랑한 카지노 게임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마치 꿈속을 거니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시어에 이끌려 소설 속 여자처럼 소리 나지 않게 입술을 열어 발음해 보기도 했다.




읽다가 가장 밑줄 긋고 싶었던 문장은 아래와 같다. 시 같은 문장에 이끌려 여러 번 낭독해 본 부분이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 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눈'을 보면 '침묵'이라는 단어가, '비'를 보면 '문장'이라는 단어가 생각날 것 같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 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튀어오른다.

검은 빗방울에 싸인

모국어 문자들.


둥글거나 반듯한 획들,

짧게 머무른 점들.

몸을 구부린 쉼표와 물음표.


-카지노 게임 시간, 174~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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