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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블랙카지노 가입 쿠폰

16코스(고내포구←광령1리사무소) 1

그디글라게스트하우스는 16코스에 있었다. 광령1리사무소에서 종점과 시작 스탬프를 찍고 의도하지 않게 16코스를 걷게 되었다. 사위는 어두워 카카오맵에 의지하며 걸었다. 다행히 멀지는 않았다. 게스하우스 여주인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큰 하얀 개 한 마리가 반겨주었다. 여기서도 어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했던 말을 또 들었다. 많이 늦으셨네요, 오늘은 혼자뿐입니다. 거의 7시에 도착했다. 서울이었다떠들썩한저녁의초입이었겠지만, 이곳은 한밤의 짙은 어둠을 조용히 통과중인 것 같았다.


저녁을 해결하려고 나왔다. 이곳은 애월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애월은 아니었다. 그곳은 바닷가에 닿은 예쁘게 그려진 애월이고, 이곳은 땅에서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내는 이들이 숨 쉬는 애월이다. 꾸미지 않고 투박했다. 어둠에 잠겨있어도 가로등 불빛에서,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에서 사람이 느껴졌다. 골목 끝자리에서 도로 건너에 식당의 불빛이 유리창에 은은히 빛났다. 거의 유일하게 문을 닫지 않은 식당이었다. 된장찌개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먹는 동안 손님들은 점점 늘어나며 북적였다. 대부분은 마을 사람인 듯 서로서로 아는 체를 했다. 마치 마을 사랑방 같았다. 가게명인 ‘즐거운 밥상’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식당을 나와 스탬프를 찍은 광령1리사무소에서 봐둔 편의점으로 갔다. 도중에 맞은편, 16코스로 대로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모퉁이에 수줍은 듯 엷게 발하는 빛이 눈을 잡았다. 옛날 슬래브 지붕에 돌들로 벽을 두른 하루의 영업을 끝낸 아담한 카페였다. 가게의 크기에 비해 다소 큰 하얀 고딕체 COFFEE, BOOK이 창의 위와 아래를 틀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북카페인가? 나중에 보니 북카페는 아니고 마을 사람들이 소소하게 커피를 마시는 윈드스톤이라는 카페였다. 윈드스톤. 바람과 돌, 제주와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라떼가 그렇게 예술이라고 하는데 언제 이곳에 와서 마실 수 있을지.

카지노 가입 쿠폰<카페 윈드스톤

사실 나는 라떼보다 뜨거운 블랙커피를 좋아한다. 폭염이 작렬하는 한여름에도 뜨거운 블랙을 마신다. 커피의 시작은 믹스커피였다. 커피전문점에 가서도 다방커피처럼 커피, 설탕, 프림의 비율을 2:2:3으로 해서 마셨다. 내가 블랙커피에 빠진 건 군대에서였다. 휴전선 부근에 있는 고지에서 군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이곳에는 밤낮이 없다. 휴전선이기에 밤에도 근무해야 했다. 배고픔과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심야라도 항상 봉지라면과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믹스커피가 아니었다. 커피, 설탕, 프림이 각각의 통에 담겨있어 각자의 기호에 맞게 마실 수 있었다. 나는 당연히 다방커피처럼 마셨다. 그러다 어느 날,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거의 한 달간 고지가 고립된 적이 있었다. 부식은 예정대로 올라왔지만 다른 것은 구할 수 없었다. 고립된 지 일주일쯤 지나자 설탕과 프림이 다 떨어져 커피만 남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블랙커피를 마셔보았다. 그 쓴맛 때문에 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았다. 바로 버렸다. 며칠을 버텼다. 밤을 보내려면 커피가 필요했다. 용기를 내서 블랙커피를 타서 한 모금 마셨다. 강렬한 쓴맛이 입안에 강렬한 폭탄을 터트렸다. 그러나 입을 꽉 오므리고 그대로 삼켰다. 그 밤에 그러길 몇 모금, 며칠 밤을 그러면서 마셨다. 폭탄의 위력은 점점 줄었다. 그냥 쓰다였다. 고지의 고립이 풀리자 물품들이 다시 들어왔다. 설탕과 프림을 넣어 예전처럼 마셨다. 그러나 내 혀는 예전의 혀가 아니었다. 다방커피는 설탕 때문에 너무 달았고 프림 때문에 너무 텁텁했다. 혀는 쓴맛에 강하게 중독되어 있었다. 커피에서 쓴맛 외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에스프레소를 마신 3년을 빼면, 지금까지 블랙만 마셔왔다.


편의점에서 내일 아침 간단히 먹을 것들을 사고 나올 때 후드득 비가 내렸다. 오늘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하더니 정말 오는구나.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재킷의 모자를 쓰고 비를 맞고 걸었다. 후드득후드득하다 쏴~아하고 빈틈없이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다행히 숙소까지 후드득후드득하며 내렸다. 샤워하고 김녕의 그녀들에 관한 기사가 있는지 검색한 후 하루를 간단히 글로 정리하고 바로 잤다. 나무토막 같은 몸이 융처럼 부드러워지길 바라며.


비는 밤새 내렸다. 빗방울이 플라스틱으로 된 어떤 물건에 떨어지는지 톡톡톡 하며 나의 잠을 흔들곤 했다. 계속 비가 내린다면 우산을 써야 할지 우비를 입고 걸어야 할지 이런 고민이 잠이 흔들릴 때마다 흐릿한 의식에서 달그락거렸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씬지로이드 한 알을 먹고 침대에 걸터앉아 빗소리를 들었다. 비가 정말 많고 강하게 내리지 않는 이상 우산을 쓰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비는 땀복처럼 땀을 너무 배출시키기 때문이었다. 저녁 비행기에서 다른 이들에게 내 땀 냄새를 맡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은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관절들이 뻣뻣했다. 조심스럽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약간 말랑말랑하게 했다. 샤워하고 나서 오늘 걸을 길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시간과의 싸움일 터였다. 저녁 7시 비행기였다. 적어도 공항엔 6시에 도착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림항에는 적어도 4시 30분 전후에 도착해야 한다. 한림항에서 공항까지 가는 버스 시간을 생각하면. 16, 15 두 코스를 그 시간에 끝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틀간의 무리한 행군에 몸이 더디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회복되어도 걷다 보면 금세 방전될 것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비까지 오니. 다행히 16, 15코스는 짧고 오름도 한 곳뿐이고 대부분이 해안 길이었다. 여기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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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창을 여니 비는 그치고 파란 하늘이 얼굴을 드러냈다 / 우: 게스트하우스는 넓었다. 넓은 마당에 감귤나무도 심어져 있고 정자도 있다
<그디글라 게스트하우스 입구

7시에 공용다용도실로 나가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챙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밖이 조용했다.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창문을 여니 어느새 비는 물러가고 파란 하늘이 얼굴을 드러냈다. 엷은 회색의 구름이 얼룩처럼 하늘에 묻어있었다. 햇볕이 풍경에 명암을 뚜렷이 드리웠다. 너무 반가웠다. 이번 올레길에서 처음으로 본 파란 하늘이었다. 조금 힘이 나고 맘도 밝아졌다.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섰다. 그디글라, 한림항!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인 ‘그디글라’는 제주방언으로 ‘거기 가자’였다. 7시 25분이었다.

(2024. 10. 21~22)

진정한 여행(A True Travel)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 1902~1963)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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