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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복 Ap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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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그렇게 인터뷰 회기가 한 번씩 끝날 때마다 혜주는 보드카를그의 옷장 안에서 꺼내 온 작은잔에 따라 주었다. 그 한잔에 석주는 죽음의 문턱을 후회 없이더 행복하게 넘을 수 있겠다며 너털웃음을 짓곤 했다.


"미국에선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재즈바를 정리하고 바로요. 뭔가 제 몸에 중요한 일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을 때 마음이 편해졌어요.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요. 너무 열심히 살아서 어떻게 더 멋지게 사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을 딱 그런 때 시한부라는 타이틀을 받는 게 축복처럼 느껴졌어요."

"마흔도 안되셨는데 어떻게 그런..."

"흘러가는 시간만큼 저절로 먹는 나이가 제대로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저는 제가 살 수 있는 만큼 힘껏 잘 살았어요. 후회는 없어요."


혜주는 말없이 석주에게 보드카를 따라 주었다. 그의 텅 비어 가는 눈을 바라보며 이래도 되는 걸까 항상 조바심과 죄책감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석주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드카에 담아 그를 천천히 소멸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원한다고 해서 그냥 다 해주는 것이 혜주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에 대해 항상 딜레마였다.


"사람이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지나게 되는 심리적 공황 단계가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건 여전히 남은 애착으로 괴로운 사람들이나 하는 거죠. 전, 와 드디어 곧 편해질 날이 오는구나. 나를 닫을 날을 내가 천천히 느낄 수 있겠구나 하면서 남은 날들을 예민하게 즐기며 산다는 것에 큰 희열을 느낍니다. 이렇게 제가 허공에 말하지 않고 카지노 게임 씨에게 말할 수 있으니 더 바라는 것도 없어요.... 저... 키스해도 될까요?"


카지노 게임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냥 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먼지 같은 거추장스러움을 초월한 그에게 다 맡기고 싶었다. 사는 길이 거기에 있을 것만 같았다. 키스로만 끝나지 않았던 그 밤이 혜주가 석주를 느낀 마지막 밤이 되었다는 걸 다음 회기인 일주일 후에 알게 되었지만 텅 빈 석주의 침대 앞에서 그녀는 울지 않았다. 어떻게 우는지 모두 꽁꽁 얼어버려 움직일 수 없는 그런 막막하고 처절한 참회의 고통을 느꼈다. 미안해요.


문은완성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받은 지원금을 돌려줘야 했지만 혜주 또한 후회는 하지 않았다. 다만 석주에 대한 묵직한 죄책감에 눌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순간들이 잦아졌다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거의 매일 와인에 영혼을 구겨 넣으며 지내고 있던 혜주가 생각해 낸 것이 커다란 와인셀러가 있으면 세상으로 나가지 않아도 꽤 괜찮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유치한 잔머리였다.


그렇게 꼬이다 보니 만나게 된 사람이 이도준이었다. 그는 왜 요양원에 있는 걸까.왜 굳이 거기에...요양원의 한숨이 또한 이해되지 카지노 게임.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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