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도준이라는 이름을 알려주자마자 갑자기 큰 한숨이 전해왔다. 술을 마셨는지 확인하고는 119를 불러 도준을 태워 보내달라는 냉정한 목소리에 요양원 주소를 휴지 위에 대충 급히 적었다.
"심장이 뛰는지 봐주시겠어요?"
카지노 게임는 갑자기 다급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술을 마시다가 심장이 멎기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도준의 가슴에 대었다. 따뜻한 온기 속에 잔잔한 툭탁거림이 심장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119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빠르게 도준을 싣고는 주소가 적힌 휴지를 낚아채어 확인하더니 그대로 들고 가버렸다. 남은 건 마시던 소주병 몇 개와 누군가와 같이 있었던 테이블 위의 흔적이었다.
다시 혼자가 된 급박한 썰렁함에 오한이 왔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사람 앞에서 생애 첫 소주를 마신 혜주는 와인을 처음 시작했던 석주의 재즈바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상담 심리 이론과 관련 심리 검사에 대한 공부를 하러 미국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뇌를 연구하고 다른 기능에 따라 대인 관계에 대한 태도를 연구하고 세부 항목을 개발하여 심리 검사 도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프로포절을 만들어 지도교수에게 갈 때마다 번번이 퇴짜를 맞고 좌절하던 몇 개월이었다.
눈물 가득한 눈에 보이는 파스텔로 울렁이는 불빛의 출구로 무작정 들어갔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수없는 거절의 순간을 견디기 힘들어 뭐라도 카지노 게임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곳에서 위로를 받고 싶었다.
질질 늘어지며 흐르는 애타는 재즈에 저절로 눈물이 솟는 눈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손으로 관자놀이를 힘껏 눌렀지만 소용없었다. 눈에 보이는 와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하고는 일단 마시고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와인 한 잔은 알코올 도수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보다 끈적인다는 것, 누군가 앞에 서 있다는 것, 혜주가 무거워진 턱을 고이고 올려다보자 그가 앞에 앉았다.
"와인도 취합니다."
"그건 뭐죠? 투명한 술..."
"보드카요. 뜨거운 술이죠."
석주는 들고 있던 보드카 병과 잔을 테이블에 놓았다. 작은 재즈바에 둘 만 남아 있었다.
"정리하는 중이에요."
"네? 뭐를요?"
"여기요. 이 재즈바..."
"아, 그렇군요."
카지노 게임는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이것저것 쏟아내는 석주가 외롭다고 느꼈다. 당신도 외롭구나. 관심을 가져달라는 건지 단지 한번 대화 상대가 되어 달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카지노 게임도 너덜거리는 마음에 그저 소파에 푹 꺼져 앉아 그를 듣곤 했다.
꽤 오래 정리되지 않는 재즈바에 혜주 혼자만 단골인 것 같았다. 세워 둔 술의 가짓수가 줄어도 보드카만은 몇 병씩 여유 있게 가지런히 서 있었다. 혜주의 와인과 석주의 보드카는 각각 서로에게 큰 위안이었다. 둘 다 이름에 '주'자가 들어가니술이 삶에 필연이라며 낄낄거리곤 했다.
카지노 게임의 얼굴색이 어두워지는 건 재즈바의 흐릿한 조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너무 야위었다고 느꼈을 때 그의재즈바는 굳게 닫혀 있었다. 그렇게 한 때 위안의 흔적으로 재즈바는 희미하게 흐려져갔다. 카지노 게임의 보드카만 투명하게 머릿속에 출렁거렸다.
독한 지도교수 아래서 학위를 받은 덕에 박사 논문이 우수 논문으로 채택되어 미국의 상담 학회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말기 시한부 환자들의 삶의 태도 변화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카지노 게임는 그때 석주를 다시 만났다.
한 호스피스 병동 창가에 서 있던 그를 마주했을 때 일종의 죄책감이 깊이 몰려왔다. 간암 말기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카지노 게임를 만나는 일은 인터뷰라기보다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한 어느 철학자의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보드카를 딱 한잔만 마시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