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인연이라는 것
그들이 카지노 게임로 맺어지게 된 계기는 실로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남자는 우울증이 있는 전 여친과 헤어진 뒤 슬프고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여자는 나쁜 남자 스타일의 전 남친과 헤어지고 나서 상처받은 감정을 추스르던 상태였다. 그리고,
A라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있었다.
그 카지노 게임은 남자의 전 여친이 남자에게, 여자의 전 남친이 여자에게 재미있다며 해보라고 적극 추천하던 것이었는데, 당시 남자와 여자는 각각 귓등으로 흘려듣기만 할 뿐 헤어지기 전까지 한 번도 하지 않던 카지노 게임이었다.
A카지노 게임을 하기 전까지 한국인 남자와 미국인 여자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으며,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인식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이를테면, 서울에 살고 있는 한 여자가 인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를 어느 남자를 일부러 생각해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각기 전 여/남친과 헤어진 후 비슷한 시기에 A카지노 게임을 시작했었나 보다. 엑스가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애인과의 이별은 일상에 스크래치를 남기기 마련, 아마도 그들은 이별 후 남아있는 미련 혹은, 그리움, 원망 등을 A카지노 게임을 하면서 혹시나 그 안에서 마주칠지도 모를 Ex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카지노 게임에 접속하면서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고, 상대에게 끌리는 자신들의 감정을 재빠르게 클릭했다. 플레잉 카지노 게임보다 더 맹렬하게 텍스팅 메시지를 하고 영상을 주고받으며 간혹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를 흘려냈다. 통화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웃음소리가 잦아짐에 따라 그들의 일상에 드리워졌던 이별의 자국도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난 어느 날 갑자기(부모의 입장에서 보자면 청천벽력과도 같이 느닷없이) 각자 부모에게 그간의 온라인 채팅행각을 털어놓으며 다가올 두 번째 오프라인 만남 예정일을 알렸다. 두 사람은 이미 둘만의 첫 번째 오프라인 만남을 3개월 전 비밀리에 가졌던 것이고, 이때 둘은 같은 마음으로 남친과 여친이 되기를 선언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남자가 우선적으로 여자의 부모에게 인사하는 공식적 만남이라고 하니, 바야흐로 국경을 사이에 둔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이 탄생하는 기가 막힌 순간인 것이다.
남자는 나의 아들이고, 여자는 나의 며느리다.
그러므로 나의 친애하는 며느리는 등장부터가 비현실적인 만화였다.
나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즐기는 편이지만, A카지노 게임이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 않다. 관심도 없거니와 아들이 다만 실연의 아픔을 털어내고 어두운 동굴에서 나와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랬는데 인터넷 카지노 게임에서 사귄 여자를 만나러 급기야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미국에 가겠다고 하니,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얌전한 소개팅도 아니고, 공식 채널의 데이팅 앱도 아닌, 모든 불량 잡것 취급을 받는 인터넷 온라인 카지노 게임으로 상대를 만난다는 자체가 내게는 블라인드 데이트보다 더 허구스러웠다.
TV에서 방영하는 짝짓기 프로를 가슴 콩닥이며 즐겨 볼 수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남의 연애이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는 자체가 객관적이므로 나로부터 거리를 두기 쉽다. 1980년대 후반에 대학을 졸업한 나는 물론이거니와 나의 딸을 포함해서 내 주변의 어느 누구도 이런 식으로 남자나 여자를 만난 사람은 없었다.
그래, 인터넷 만능의 첨단 글로벌 시대이니 이런 연애도 가능하겠지, 하며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 치자!
그러나 보수적 성향의 친지와 지인들에게 별 볼일 없는 이런 인연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것도 번거롭거니와, 그들이 아들을 얼마나 가볍고 우습게 여길지를 생각하는 것은 부모로서 괴로운 일이다. 반듯하게 잘 키웠다고 자부했건만 인터넷으로 연애질이나 하다니.
1997년 영화 '접속'의 21세기 버전이라며 아름답고 순수하게 우선 포장하지만, 카지노 게임으로 만난 인연이 가벼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고, 그러한 이유로 사랑의 진실성마저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다. 나부터가 그랬다. 오락실에서 놀다가 만난 사이라거나, 나이트에서 춤추다가 만난 상대를 어느 누가 바람직한 결혼 상대자로 열 손가락 안에 끼워줄 것인가! 하물며 직접 대면도 안 하는 인터넷 스크린 만남이라니... 나이 서른이 다 돼 가는 아들이 새삼 남처럼 낯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딱 반만.
나머지 반은, 만나다가 헤어질 수도 있지 하는 내 속마음을 존중하기로 했다.
며칠 후, 아들은 여자와 그녀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쿵쾅거리는 가슴을 온 힘으로 누르고 흔들리는 눈동자를 꿈뻑이며 미국으로 출발했다.
대문사진 : Pixabay로부터 입수된 inno kurnia님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