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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낙타 Jan 31. 2025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슬픈 카지노 게임

뿌리깊은 카지노 게임 한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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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욕심'도 따지고 보면 병이다. 나에게 언제부터 그런 병이 생겼는지는 알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병을 지금껏 고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심각한 병은 아닌데 가끔 괴로운 적이 있다. 이사를 할 때다.


그동안 네 번 이사를 했다. 그때마다 늘 책이 문제였다. 도서관 여기저기 전화해 기증의사를 밝혀도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외국이라면 서로 가져가려고 할 초판본들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그만큼 종이 책이 넘쳐 난다는 의미다. 대학교 도서관도 매년 수만 권의 책들을 처분하고 있다고 한다. 그냥 버려지는 것이다.


책에는 분명 주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주인을 찾아 주는 것. 현암사에서 출간한 열다섯 권짜리 '육당최남선 전집'은 평소이 책에 눈독을 들이던 교수하는 친구에게 선심 쓰듯 넘겼고, 스무 권짜리 삼중당 '이광수전집'은 소설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시골 농부 친구에게, 시집들은 평소 신세를 진 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거기엔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초판본도 있다. 만감이 교차했지만, "너무나도 귀한 책이야.잘 보관해!"나는 그렇게 말했다.시집을 받은 후배의 놀라는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창간호 잡지들은 '창간호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러고도 한 트럭이 남았다. 모두 수거해갈 수 없다고 버티는, 평소 알고 지낸 중고서점상에게는 귀한 책 몇 권 얹어주고 억지로 넘겼다. 그중엔 대학 졸업 때 교수님이 졸업 선물로 준 책 네 권 중 한 권도 포함돼 있다. 천구백사십칠 년 초판 김동석 평론집 '예술과 생활'이다.


그럼에도, 이런 어수선한 난리통 속에서도 지금까지 굳건히 살아남아 내 책꽂이 한 곳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책이 있다. 월간지 '뿌리 깊은 카지노 게임'다.


아주 아주 오래전, 헌 책 방에서 '뿌리깊은 카지노 게임'를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겐 '운명적 만남'이었다. 뭔가 달랐다. 보통 월간지들이 오백 페이지가 넘는데 이 책은 고작 백팔십 페이지 전후 였다.'베고 자기에는 불편한 잡지'라는 카피도 그래서 나왔다. 가로쓰기도 한글전용도 모든 게 새로웠다. 그때 권당 이백원주고 산 두 권의 '뿌리깊은 카지노 게임'를 나는 밤새 읽었다. 한 글자도 놓칠 수가 없었다. 전율 같은 것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쳐 지나갔다. 사진 한 장을 크게 쓴, 고상한 표지도 나를 설레게 했다.


다음날 헌 책방에 달려가 몇 권을 더 샀다. 나를 알아본 주인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백 원!"을 불렀다. 하루사이에 배가 더 오른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뿌리 깊은 나무를 찾아다녔다. 책 찾아 다니는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창간호인 일천구백칠십륙 년 삼 월호부터 폐간호인 일천구백팔십 년 팔 월호까지 모두 쉰세 권, 한 질이 완성됐다. 일 년이 넘게 걸렸을 것이다. 훗날 덤으로 스무 권짜리 '뿌리깊은 나무 민중 자서전'도 구했다. 나는 큰 산을 정복한 알피니스트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내, 이 책을 '창조'해 낸 한창기를 온전히 내 가슴에 품게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한창기는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었다.


한 창 기. 젊은이들에겐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겠다. 그는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불세출의 출판인이었다. 오십 년이 됐는데도 '뿌리깊은 카지노 게임'를 뛰어넘는 교양지가 여태껏 출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엄혹한 시기에 어떻게 그런 책을 낼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함께 출간된 '한국의 발견' '뿌리깊은 나무 판소리 전집' '뿌리깊은 나무 민중 자서전'등도 경이롭다. 다시 읽어봐도 한 문장 한 문장 한창기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베고 자기에는 불편한 잡지' 카피도 한창기의 아이디어였다. 언젠가 '뿌리깊은 카지노 게임''한국의 발견'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월 삼일, 오늘은 별난 잡지사의 별난 발행인이었던 한창기가 세상을 떠난 지 이십팔 주기가 되는 날이다. 세상을 등졌던 일천구백구십칠 년, 그의 나이는 고작 예순하나였다. 너무나도 아까운 나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쉽고 원통하다. 한창기 만큼 우리 문화를 아꼈던 간송 전형필은 쉰다섯, 후소 오주석은 마흔아홉에 세상을 떠났다. 가정법을 쓰기 정말 싫은데, 만일 이들이 오 년이건 십 년이건 좀 더 수를 누렸다면 한국문화의 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넓이가 확장됐을 것이다.


한창기는 그 시절 보기 드물게 '생각이 열린 사람'이었다. 그와 같이 생활했던 '뿌리깊은 카지노 게임' 기자였던 강창민의 글을 인용해 본다. '그 자유분방함, 오만한 자신감, 파격적인 발상, 터무니없이 핏대를 올리며 펴는 자기주장. 좀처럼 굽히지 않는 고집, 궤변에 달변, 다방면에 걸친 집요한 관심, 인정머리 없는 태도, 영악한 이기심... 어떤 문제를 제기해도 늘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은 막힘없음... 별난 세계의 별난 사람'이었던 그였기에 '한국의 문화발전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바치는 월간잡지'이자 '알 권리와 생각하는 자유가 소중한 사람의 잡지'인 뿌리깊은 나무의 탄생이 가능했을 것이다.


'뿌리 깊은 카지노 게임'창간되기 이전부터 한창기는 일주일에 한 번 명창 조상현, 정권진, 성우향, 오정숙과 김명환, 김득수, 김동준 같은 고수를 불러 '판소리 감상회'를 가졌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 최고의 소리꾼, 최고의 고수였다. 이 감상회가 일천구백칠십사 년부터 일천구백칠십팔 년까지 꼭 백 회 이어졌다. '심청가''흥부가''적벽가' 등 한 작품을 서너 번씩 나눠 완창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나는 이걸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판소리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한창기 때문이다. 덕분에 '뿌리깊은 나무 판소리' '뿌리깊은 나무 산조 전집''뿌리깊은 나무 한반도 카지노 게임 소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우리에겐 정말 크나큰 축복이 아닐수 없다. 생각할수록 한창기는 하늘이 내려준 큰 선물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부고를 읽는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일천구백구십칠 년 '샘이 깊은 물' 삼 월호 '독자들께'란에 설호정 편집주간이 쓴 한창기의 부고가 올라왔다. 한창기는 생전 한국의 언론들이 사주를 빛내는 기사를 쓰는 것을 몹시 탐탁지 않게 여겼었다. 만일 언론사 사주의 부고였다면 자신의 신문에 온전히 한 판을 할애해 미담 기사로 넘쳐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창기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 부고를 본 적이 없다. 부고의 전문은 이렇다.


'서울 성북동의 저의 사무실에는 뜰이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푸나무가 심겼고, 마당에는 잔디가 깔렸습니다. 잔디에 새싹이 삐죽삐죽하게 돋기 시작하는 봄부터 낙엽이 완료되는 늦가을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뜰에 맥고모자를 쓰고 나와 이런저런 손질을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새로 돋은 작약 싹 주위에 나뭇가지를 휘어서 꽂거나, 잔디 속의 잡초를 가려 뽑거나, 박 덩굴에 지주를 세워주거나, 온 뜰에 물을 주거나 했습니다. 그리고 뜰 한 구석에 손바닥만큼 일궈놓은 남새밭에서 토마토나 풋고추를 따서 물에 대강 씻어 먹고는 그 손을 와이셔츠 뒷자락에 슬쩍 문질러 닦았습니다. 올봄부터 그분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 발행-편집인 한창기 씨 말입니다.'


늦은 밤이다. 한창기를 생각하며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 꺼내 읽는다. 창간사이랬다.

'뿌리 깊은 나무는 우리 문화의 바탕이 토박이 문화라고 믿습니다. 또 이 토박이 문화가 역사에서 얕잡힌 숨은 가치를 펼치어, 우리의 살갗에 맞닿지 않은 고급문화의 그늘에서 시들지 않고 이 시대를 휩쓰는 대중문화에 치이지도 않으면서, 변화가 주는 진보와 조화롭게 만나야만 우리 문화가 더 싱싱하게 뻗는다고 생각합니다.'


한창기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한국문화의 뜰이 풍요로워야 세계문화의 뜰이 풍요로워진다."

지금 전 세계는한국-문화의 열풍이다. 이런 날이 올 줄. 다른 사람은 몰라도한창기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우리 문화의 세계화는 이런 선각자가 있어 가능했다. 한 창 기. 우린 그 이름 석자를 오래 오래 아주 아주 오랬동안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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