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 Apr 15. 2025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카지노 게임 된다

<추락의 해부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판결은 내려지지만,

추락은 해부되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을 항해 다가가지만,

해체되는 건 한 가정일 뿐이다.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은 무엇인가

사뮈엘은 추락했고, 우리는 카지노 게임을 찾아 나선다. 자살인가, 아니면 타살인가. 여러 증언과 반론, 산드라와 사뮈엘의 과거 등이 파헤쳐지지만, 판결에 인용될 수 있는 깔끔하고 명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은 오직 산드라만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명확한 답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기다렸다. "내가 죽였어요." "자살이에요. 내가 죽인 게 아니에요."라는 그녀의 발언을. 물론 그녀는 사뮈엘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몰고 간다. 하지만 분명하게 부인하지도, 시인하지도 않는다. 답답하다. 영화는 카지노 게임에 관심이 없다. 결국 해부되는 것은 한 남자의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을 둘러싼 믿음의 구조다. 사실을 밝히기보다, 해석의 여지를 준다. 자살인가, 아니면 타살인가.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어딘가 허전하다.

카지노 게임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방법

아들 다니엘은 어릴 적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그로 인해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지 못했지만, 그날의 소리는 기억한다. 개 스눕의 짖음, 음악의 크기, 부모님의 음성. 그는 소리의 조각을 근간으로 상황을 재구성한다. 영화는 시각보다 청각을 위주로 감정과 사건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히는지 보여준다. 볼 수 없다는 것은 무능한 것이 아니다. 청각을 통해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사유할 수 있다. 다만, 카지노 게임을 명확히 바라볼 수는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그 점에서 다니엘은 관객과 공통점을 가진다. 우리는 카지노 게임이 알고 싶다. 하지만 결국 소리를 듣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카지노 게임

관계의 해부

사뮈엘의 추락은 한 가정의 추락과 연결된다. 그의 추락이 해부됨과 동시에 가정이 해체된다. 사랑하던 두 사람이 서로를 말과 글로 해부한다. 부부 사이의 대화, 오해, 상처.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낳은 한 번의 추락.

카지노 게임은 선택하는 것이다

이옥섭 감독의 <메기가 떠올랐다.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색감과 결을 지닌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 <메기는 병원에서 퍼진 엑스레이 사진에 대한 의심의 연쇄 반응을 다룬다. 카지노 게임은 끝내 밝혀지지 않고, 과정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추락의 해부도 마찬가지다. 사뮈엘은 추락했고, 산드라는 어딘가 수상하다. 관객은 끝없이 의심한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추락의 해부를 관람하는 관객은 <메기의 등장인물이 되는 셈이다. 카지노 게임을 향해 의심을 던지며 다가가지만,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해할 수 없으면 '어떻게'가 아닌 '왜'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결국 카지노 게임은 선택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감정적으로 납득되는 쪽을 카지노 게임이라고 '선택'한다.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카지노 게임 된다.

아무리 찾아봐도

어떻게 된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

'어떻게'가 아닌 '왜'에 의문을 품어야죠.

<추락의 해부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