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태어나기 전날
아이는 백지라고 생각했다. 깨끗한 그곳에 일기를 쓰면 그건 일기장이 되고 하루 사용한 돈을 기록하면 가계부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내가 무언가를 적으면 아이는 나름 대로의 쓰임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39주 꽉 들어찬 카지노 쿠폰가 된 나는 그날도 백지인 첫째에게 무얼 써넣을까 고민하다가 동물원에라도 데려가보기로 했다. 가서 코끼리도 보고, 사자도 보며 무언가를 상상하고 창작할 수 있길 바랐다. 첫째의 나이는 3살이었다.
동네 뒷산처럼 부른 배를 움켜쥐고 카지노 쿠폰의 간식거리를 뒤적거리며 챙긴다. 첫째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특히 유제품을 좋아해서 보냉 가방에 아기 치즈와 요거트를 두둑이 담았다. 창의성을 앞질러 자라는 식탐 덕분에 간식은 꼭 양껏 챙긴다. 배부른 엄마와 집 앞의 공원만 산책하다가 부릉이를 타고 어딘가를 갈 생각을 하니 첫째도 신이 나는 모양이다. 이 기세를 빌어 아침밥으로 평소 잘 먹지 않는 시금치 무침을 몰래 내어본다. 어깨를 들썩이며 옳지, 옳지! 추임새를 넣는다. 거실을 꽉 채우도록 틀어놓은 동요에 맞추어 숟가락이 춤을 춘다. 밥 위에 고기 한 조각이 올려져 있지만 그 아래에 시금치를 넣는 꼼수를 내세웠다. 엄마는 때론 비겁해야 한다. 이 시금치 한 조각이 대체 신체의 어디에 도움이 된다고 정성을 다하냐마는... 그럼에도 ‘골고루 먹이는 엄마’ 역할에 충실하게 임하려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한 술 떠 먹인다. 분명 젊은 시절 이효리의 노래에 춤을 추던 몸이다. 지금은 주스가 되고 케첩이 되고 춤을 춘다는 멋쟁이 토마토와 함께 박자를 맞추어 몸을 흔든다. 상관없다. 눈앞의 밥공기를 카지노 쿠폰가 잘 비워내면 나는 오늘치 좋은 엄마가 된다.
눈곱만 한 시금치 접시를 비워내고 모든 짐을 챙긴 후, 아빠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탄다. 이 과정은 바깥 생활을 즐기던 나를 집안에 파묻히게 만들어버린다. 내 채비는 하나도 못한 채 카지노 쿠폰를 씻기고 입힌다. 남편도 그 사이에 옷을 갈아입고 차 키를 들었다. 거울을 보니 아, 집에서 입는 임부복 앞섶에 밥풀이 잔뜩 묻어있다. 외출할 때마다 발생하는 빈번한 상황이지만, 짜증이 임부복을 뚫고 철제 현관문까지 나가버릴 것 같지만 조금 참아보기로 한다. 아직 현관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으니. 오늘 부릴 짜증은 어깨 뒤에 한가득 매달려 있으니.
동물원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놀이공원과 함께 운영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빤히 상상이 되는 우리로선 카지노 쿠폰의 시선을 미친 듯이 돌리며 동물원 쪽으로만 이끌어 갔다. 오빠, 저쪽으로 더 끌고 가. 얘가 놀이공원을 보게 된다면 우리 오늘 집에 못 들어갈 수도 있겠어.
동물원은 지나치게 넓었다. 의사 선생님은 뱃속 카지노 쿠폰가 빨리 내려와야 진통이 오니 분만일도 조금 당기려면 많이 걸으라 하셨다. 각오하고 임부복 원피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를 신었다. 이 정도 쿠션이면 반나절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괜찮은 게 발바닥인지 배인지는 모르겠다.
첫째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동물원의 상징적인 동물들은 입구에서 한참은 걸어야 볼 수 있었다. 근처엔 조류관과 파충류관이 있었다. 아, 이건 좀 별론데. 카지노 쿠폰에게 읽어주었던 그림책에 나오는 거대한 코끼리와 기린을 빨리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 배와 발바닥이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걸어 올라가면서 엄청나게 다양한 수의 새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왕관앵무, 홍부리황새, 흑고니... 첫째는 이 많은 새들의 생김새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저 “우와! 새다! 새야!” 만 연발할 뿐이다. 옆에 찰싹 붙어서 응 이 새의 이름이 뭘까? 왕관앵무라는 이름인데 왕관 알지, 왕관? 하며 즉석에서 교육 방송으로 돌변한다. 한국의 엄마는 이게 문제다. 보육의 역할만 한다면 엄마도 카지노 쿠폰도 모두 행복할 텐데 자꾸 교육의 역할까지 도맡아 하려 든다. 뭐라도 배웠으면,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부른 배를 짊어지고 동물원 해설사 역할을 자처한다. 돌아보니 내 뒤를 따라 다른 집 카지노 쿠폰 서너 명도 붙어 있었다. 이참에 진로를 변경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동물원의 특징은 은근한 오르막길이라 걸을수록 조금씩 힘들어진다. 하필 코끼리와 기린은 꼭대기에 있었다. 기다란 목과 펄럭거리는 귀를 보기 위해선 아직 보이지도 않는 점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중간에 설치된 안내도를 보며 남편과 함께 한숨을 쉬는 찰나, 첫째는 어딘가로 향했다. 놓치지 않도록 빠르게 아이를 뒤쫓아갔다. 뛴다고 뛰었는데 뒤에서 보면 어기적거리는 오리 같았을 것이다. 카지노 쿠폰가 뛰다니!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엔 혹여라도 문제가 생길까 까치발로 조심조심 걸었다. 둘째는 얘기가 다르다. 설명하기 모호하지만 어쨌든 다르다.
첫째가 눈을 빛내며 도착한 곳은 화장실 앞의 계단이었다. 넓은 동물원 중간쯤에 사용할 수 있도록 벤치 몇 개와 화장실이 있었다. 그 옆의 철제로 만들어진 장 안에는 진돗개 두 마리와 수탉 세 마리가 카지노 쿠폰가 뛰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화장실이 급한 건가, 싶어 물어보니 아니라는 고갯짓이 돌아왔다. 그렇다. 계단에 꽂힌 것이다. 2~3세 카지노 쿠폰들은 저마다 꽂히는 것들이 있다. 어떤 카지노 쿠폰는 자동차 바퀴에 꽂히기도 하고 또 다른 카지노 쿠폰는 미끄럼틀에 꽂히기도 한다. 첫째는 그것이 계단이다. 본인이 오를 수 있겠다, 싶은 야트막한 계단이면 무조건 직진이다. 지금부터 약 한 시간은 하염없이 계단을 뛰노는 카지노 쿠폰의 손을 잡아주고 같이 걸어야 한다. 숨이 막힌다. 이건 아닌 것 같아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이 첫째의 손을 잡으니 카지노 쿠폰는 악을 쓰며 엄마를 데려오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얘가 이렇게 목청이 컸구나, 남다른 발성에 놀라워하며 벤치에 앉아 있다 어쩔 수 없이 첫째의 손을 잡는다. 계단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지쳐간다. 코끼리와 기린은 포기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에서 어떻게 저 녀석을 떼어낼지 고민하며 벤치에 놓인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어차피 울어 재낄 텐데 각오는 단단히 하자, 남편과 마주 보며 끄덕했다. 마지막 남은 치즈로 유인하며 간신히 눈길을 끌었으나 업어주지 않으면 안 가겠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남편은 첫째에게 얼른 업히라고 재촉했지만 카지노 쿠폰는 악을 쓰며 굳이 엄마에게 업히겠단다. 배가 산더미같이 불룩 나온 엄마에게.
이제 앞뒤로 불룩 나오게 생겼군. 업어야 집에 갈 수 있다면 흔쾌히 응하도록 하지. 쭈그려 앉을 수는 없는 탓에 남편이 아이를 들어 올려주었다. 등 뒤에 첫째를 업고, 앞에는 뱃속에 둘째를 담고 아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카지노 쿠폰에게 애를 맡기다니, 남편은 뭐 하고 저렇게 멀뚱히 서 있나, 어머, 너무한다... 본의 아니게 남편을 나쁜 놈으로 만든 것 같아 찝찝하다. 내 몸이 조금 힘들어도 첫째의 울음도 그치고 일정도 마칠 수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그러나 자칫하면 떼구루루 구를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며 걸었다. 얼른 집에 가서 소파에 기대고 싶다. 만삭이라 눕지도 못하니까.
불행한 피크닉 소식을 전해 들으신 친정 부모님은 딸을 가엾게 여겨 그날 저녁밥을 사주셨다. 부모님이 첫째를 돌봐주시는 동안 남편과 나는 한을 풀 듯 고기를 씹고 뜯었다. 뱃속에서 한참 발을 구르던 둘째가 조용하다. 너도 피곤해서 잠들었구나. 원래도 부른 배에 과식까지 더해져 쌍둥이 아닐까 의심되는 형상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첫째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까무룩 고개가 떨어졌다. 다시 깨워도 일어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아니, 일단 우리가 깨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발과 손을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대충 자라. 죽기야 하겠니. 남편도 양치를 하고 돌아오자마자 눕더니 코를 골며 잠들었다. 남은 짐들을 정리하려 안방을 나왔다. 주방 싱크대에 에그 샌드위치가 놓여있었다. 아침에 먹으려다 바빠 그대로 두었던 거다. 저걸 먹어야겠다. 저거라도 먹어서 오늘 나의 울분을 좀 달래주어야지. 오늘치의 짜증을 둘러매고 집을 나섰지만 어디에도 풀지 못했다. 광기 어린 손짓으로 비닐을 벗겨내어 허겁지겁 베어 물었다. 방금 갈비 3인분을 뜯고 왔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