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구토, 한숨
첫째의 어린이집 등원은 오전 9시, 하원은 오후 4시였다. 둘째가 아직, 몹시, 매우 어려서 서늘하고 쌀쌀한 초겨울 바람을 뚫고 아기띠로 들쳐 매고 함께 가기는 힘들었다. 결국 한 달여의 기간 동안 등원과 하원은 친정엄마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사회생활의 쓴맛과 단맛을 보는 동안 나는 둘째와 오롯이 둘만 남겨져 먹이고 재우고 한숨을 쉬었다. 육아가 성향에 맞지 않는 내게 그 한 달은 수감생활과 비슷했다. 18평 좁은 집에 갇혀 우는 아이를 안고 발발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래봤자 집이 좁아 거기서 거기였지만 밖에 데리고 나갈 순 없으니 (이 날씨에 나가면 파국이다!) 안방부터 시작해 세탁실까지 고루고루 걸음을 떼었다. 신생아는 그나마 하루 두 번 규칙적으로 낮잠을 자기에 수감자 역시 하루 두 번 큰 호흡을 내쉴 수 있었다.
첫째를 키울 땐 ‘베이비 위스퍼’라는 책을 마치 경전처럼 삼아가며 읽었다. 물론 아이가 책처럼 규칙적으로 자라지는 않았다. 둘째는 책이 뭐야. 되는대로 키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먹고-자고-깨고-놀고-싸고 5단계는 신생아의 기본적인 루틴이라는데 내 아기는 로봇이 아니었다. 먹다가 자고, 자다가 쌌다. 싸더니 다시 잠들었다가 깨서는 먹지도 않고 울어 재꼈다. 그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첫째 때 이미 파악했으니 둘째 육아는 ‘살아만 있으면 된다’를 모토로 임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 마음이 편안해진다. 첫째 때 구입한 어마어마한 양의 임신 출산 관련 책들은 몽땅 팔았다.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처럼 ‘이게 말이 되냐!’며 집어던져 스트레스를 풀기에 딱 일 것이리라.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언저리다. 곧 첫째가 하원할 시간이군. 친정엄마의 손을 붙잡고 우리 집으로 오게 될 참이다. 갑자기 지구가 자전을 다섯 배의 속도로 하는 듯하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던가. 첫째의 울분을 풀어줄 간식과 장난감을 미리 준비해 주고 싶지만 둘째의 울음이 그것을 막는다. 4시 20분쯤 첫째가 귀가한다. 그리고 운다. 울고, 운다. 계속해서 운다. 달래도 울고 혼내도 울고 때려도 울고 내버려 둬도 울고 안아줘도 울고 과자를 줘도 운다. 그렇게 정확히 한 시간을 끝없이 울어댄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에 너무나 미안하다. 내 자식 울음소리에 내가 짜증이 난다. 그 소리는 기어이 낮잠에 빠져든 둘째를 깨운다. 둘째도 놀라 신생아 특유의 고음으로 울기 시작한다. 엄청난 화음이다. 여기에 내 울음소리까지 보태어 3도 화음을 쌓고 싶지만 나라도 정신 줄을 잘 잡아야 한다. 일단 첫째는 뭘 해도 한 시간을 내리 울 것이 뻔하기에 둘째부터 달래어 본다. 마침 수유 타임인 것 같아 젖을 물려보는데 둘째가 입을 오물거린 지 1분도 안되어 첫째가 내 등을 올라타기 시작한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울음부터 시작해 그 모든 행위들은 둘째를 질투하는 행동이었다. 늘 엄마는 자신만 바라보며 웃어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저 불어 터진 양현종 같은 외계인에게만 딱 붙어있는 모양새가 꼴사나워 보였겠지. 첫째는 울어대고 둘째는 젖만 물려하면 방해받아 결국 단유를 보름 만에 진행했다. 신기하게 젖병에 카지노 게임를 담아 먹일 때에는 내 등을 타고 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첫째에게 최선을 다했다. 몸이 부서질 듯 피곤해도 잠자리에선 반드시 책을 읽어주고 입덧을 하면서도 세 끼니를 꼬박꼬박 균형 잡힌 식단을 만들어 제공했다. 노래를 불러주고 장난감을 만들어 주었으며 같이 두부를 으깨고 미역을 만졌다. 그렇지만 카지노 게임가 태어나니 나의 노고는 참새 발톱의 때만큼도 못 되는 하찮은 것이 되었다. 카지노 게임와 함께 있는 엄마는 그냥 존재 자체가 싫은 것이다. 이렇게 심술이 많은 아이였나, 싶었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하는 생각이 단전에서부터 쭈욱 올라왔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애가 뭘 알겠어. 다시 단전 아래로 꾸욱 밀어 넣었다. 그저 이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바라야 했다. 네가 열 살, 스무 살까지 울기야 하겠니. 언젠간 울음도, 심술도 그칠 날이 오겠지.
첫째의 괜한 심술과 울음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웠던 시절,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둘째의 구토였다. 신생아들이 젖을 먹거나 카지노 게임를 먹고 나면 보호자는 등을 토닥거려 트림을 하게 만들어 준다. 국밥 먹고 내뱉는 그어어억 소리가 아니라 걱, 극, 컥, 긱 등의 소리라 굉장히 귀엽다. 그런데 둘째는 트림을 하려고 하면 먹은 걸 그대로 토해냈다. 트림 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아이의 트림 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위장기관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길래 트림하다가 매번 이렇게 토해버리나. 내 양쪽 어깻죽지는 늘 둘째의 토사물로 뒤덮여 있었다. 그때 우리 집에서는 이탈리아의 풍미 좋은 치즈 냄새가 풍겼다. 아이가 먹는 건 카지노 게임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냄새였다.
열심히 먹여놓으면 죄다 토했다. 그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안 먹는 걸 어떻게든 달래 놓아 먹인 건데 다 내버리다니, 얘는 뭘 먹고 자라는 걸까. 아니 설마, 자라지 않으려고 이러나? 더럭 겁을 먹고 육아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열심히 검색했다. 첫째는 구토 한 번 없이 잘 먹고 잘 쌌다. 오히려 우유를 더 달라고 울어서 곤란한 지경이었다. 첫째가 구토를 한다면 그건 필시 몸에 무슨 이상이 있다는 긴급 신호일 정도였다. 그러나 하루에도 대여섯 번 토하는 둘째는... 딱히 몸에 이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세상에는 ‘그냥 그런 애도 있었다’. 커뮤니티엔 ‘저희 애도 그래요’라는 글이 꽤 올라왔다. 다행이다. 그렇다면 이 구토는 언제 멈추는 걸까. 이것도 찾아보니 대략 생후 6개월쯤이 지나면 나아진다고 한다. 아, 이제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이대로 내 어깨는 5개월을 더 토사물과 친숙해져야 하다니. 지긋지긋한 이탈리아 치즈 냄새에 고개를 저었다.
혹시 카지노 게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이번엔 카지노 게임를 바꾸어 보기로 했다. 지금 먹이는 것은 조리원에서부터 쭉 먹여온 가성비 좋은 제품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그 당시 두 배는 더 비싼 산양 카지노 게임를 한 통 사보았다. 이 카지노 게임를 먹고 구토가 멈춘다면? 제대로 된 트림이 나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문제였다. 카지노 게임 값으로 한 달에 얼마가 깨질 것인가! 산양 카지노 게임가 몸에 맞기를, 아니야, 똑같이 토하기를, 아니야, 몸에 맞기를. 내 안에서 지킬과 하이드가 서로 달려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째는 산양 카지노 게임를 타 마시곤 거하게 토했다. 이제 방법이 없어 허망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가정 경제를 카지노 게임로 무너뜨릴 순 없었다.
평일 오후 4시 30분에는 늘 비슷한 모습이 연출된다. 첫째는 바닥 이쪽에서 저쪽까지 굴러다니며 울고 둘째는 카지노 게임를 다 먹은 뒤 신나게 토한다. 그리고 나는 18평 집이 고무처럼 늘어나도록 한숨을 쉬어댄다. 현관까지 굴러가 울고 있는 첫째의 등을 쓰다듬으며 간식을 먹자고 달래어 본다. 둘째는 이미 토해버렸으니 잠시 아기 침대에 내려놓고 내 어깨에 수건을 덮어 놓는다. 첫째의 간식을 준비하는 동안 싱크대 찬장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어깨가 우락부락한 럭비 선수 같았다. 유기농 과자와 귤 두 개를 접시에 담아 첫째에게 내어주며 고민을 한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나, 어차피 둘째는 이따가 다시 토할 텐데. 시큼한 냄새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자니 퇴근할 남편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옷장을 뒤진다. 이렇게 쬐그만 아이의 토사물에도 위액이 어찌나 낭낭하게 들어있는지 집에서 입는 모든 옷의 어깻죽지 부분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어서 과탄산 가루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