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레터 05
달리기와 인생의 공통점을 논하다, 그와 함께
나는 달려 들어가서 이렇게 외치고 싶다. 이게 다가 아니야! 이게 다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아! 네 삶은 온갖 수만 가지 즐거움과 슬픔과 함께 눈앞에서 펼쳐질 거야!
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내 삶이 지지부진하고 엉터리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도처에 남의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의 삶이 반짝하고 빛난다. 내 삶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참이다. 남의 삶을 향해 온 빛을 몰아내고, 어두운 구석에 웅크리고는 망연히 그 빛을 바라본다. 지금 내게도 누군가 뛰어들어와 소리쳐주면 좋겠다. 이게 다가 아니야! 이게 다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아! 나보다 기다란 시선을 가진 이가 다가와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들이 무궁무진하다고, 네가 보지 못할 뿐이라고 속삭여주길 조용히 바란다.
늘 그 자리에 꽂혀 있고, 시시때때로 펼쳐보게 되는, 인생의 지침서 같은 책이 있나요? 어딘가 낯선 곳을 불안하게 거닐고 있는 기분으로 일상이 흐려졌을 때 서가로 걸어가 마음을 추스르려면 역시 이 책을 뽑아 들게 된다. 삶과 인생을 바라보는 다양한 질문들에 관하여 쓰인 철학·인문 도서를 제치고, 달리기에 대한 하루키의 글을 읽는다. 나는 러너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을 쓰는 작가도 아니지만, 모든 질문에 답을 듣는 기분이 되고 만다. 고개를 끄덕끄덕, 그렇지 그렇지, 그러니 괜찮아, 거 참 인생이란 이런 거 아니겠어, 하는 심정으로.
얼마 동안 마음이 힘들었다. 주어진 모든 장면에서 벗어나 다시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나만의 본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찾아내고……, 이런 애매하고 복잡한 심경은 에둘러 늘어놓을수록 답이 없다. 실은 무기력, 공허함, 좌절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실패에 대한 부정적 감각―나는 결국 실패할 카지노 가입 쿠폰라는―, 권태감이 있을 뿐이다. '잘 살고 있다'는 확신에 찬 생의 감각을 되찾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이게 전부야?.
나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더 더 진정한 모습말이야.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자리를 찾고 싶어, 인정이 필요해.
마흔이 다되도록 어려운 숙제를 풀듯이 지나왔는데도 세상에 나의 존재를 굳건히 세우는 일은 이리 어렵다. 보통은 꼬박 내 앞에 놓이는 일상에서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내자고, 그게 사는 일이라고 다독이면서 지나가지만 깊은 회의감에 빠지면 처방이 필요해진다. 이럴 때면, 모든 상황과 나 자신을 부정하고만 싶은 욕망이 거대해지기 때문이다. 우울하게 자책하며 내면을 긁는 것이다. 거의 울듯이 마주한 서가 앞에서 하루키의 책을 꺼내 다시 읽어나간다. 달리기와 글쓰기에 관한 그의 얘기를. 바로 진정 효과가 온다.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향해 질문하고 답을 구하면서,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신을 받아들이며,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닐까. 이토록 단순한 진리이지만 그 무게감은 상당하다. 이런 게 인생이라는 것을 곁에 두고 가까이 가보려 흘깃거리면서 가는 수밖에.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평생의 숙원사업에 가깝고, 어렵사리 찾은 좋아하는 일이 잘할 수 있는 일과 같지 않으며, 외부를 향해 질문하기보다 자신에게 집중해 조언을 구하는 일은 불안을 극대화할 뿐이고,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신은 자세히 마주 보기도 힘들 정도이다. 이런 게 인생이라니. 그렇지만 모든 것이 결국 '내 안'에서 발생한다는 커다란 위안이 있다. 우리는 다른 누구에게 의지할 필요 없이 나에게서 진리를 구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될 때까지 나는 내 목소리를 들어줄 것이다. 다른 곳에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위해 기웃거리지 않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집중할 것이다, 그 무언가가 구해질 때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온갖 생채기를 내며 치열하게 받아들인 나를 짊어지고 뚜벅뚜벅 계속해 나아갈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왜냐하면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에는 친절한 마음의 편린 같은 카지노 가입 쿠폰 보일까?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 태평양 상공에 덩그러니 떠 있는 무심한 여름 구름이 보일 뿐이다.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구름은 언제나 말이 없다. 시선을 향해야만 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안쪽인 카지노 가입 쿠폰다. 나는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다. 깊은 우물의 바닥을 보는 것처럼. 거기에는 친절한 마음이 보일까? 아니,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같은 나의 성격일 뿐이다. 개인적이고, 완고하고, 협조성이 결여된, 때로 자기 멋대로인, 그래도 자신을 항상 의심하며,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거기에 우스꽝스러운―또는 우스꽝스러움과 비슷한―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나의 본성이다. 낡은 보스턴백처럼 그것을 둘러메고, 나는 긴 여정을 걸어온 카지노 가입 쿠폰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인생이 고유한 자신 만의 길을 내며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외부의 시선과 타인의 기준에서 가져와야 하는가. 달리기는 완전한 자신의 페이스이다. 내 인생도 나의 페이스여야 한다.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 가는 것', 이렇게 명확한 인생의 정의를 본 적이 없다. 옆에서 달리는 다른 이의 속도가 어떻든 그의 기록이 어떻든 그는 어떤 의지와 마음으로 달리고 있든, 내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거리를 내가 정한 방식대로 어쨌든 계속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도, 내 하루하루도, 내가 도달할 것이라 정한 지점까지 내 힘으로 성실히 수행하면, 그렇게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리기는 무조건 결승점이 있기 마련이다. 인생 또한 그렇다. 무결하게 훌륭해야 하는 것이 완성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것, 마지막 지점에 다다르는 것 자체가 완성이다. 인생의 완성은 아마도……제각각 다른 모습이겠지. 나는 나만의 레이스를 하는 중이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 가는 카지노 가입 쿠폰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카지노 가입 쿠폰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카지노 가입 쿠폰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