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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면 여름 방학이었다. 날씨는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지만, 뭔지 모를 설렘에 다들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익숙해진 그 공간에서 느끼는 여유는 그곳의 모두를 하나로 만들고 있었다.
다음 수업을 위해 봄과 수경, 은영이는 서둘러 강의실 앞으로 왔다.
아직 앞 수업이 끝나지 않아서 다른 동기들도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무언가에 관심을 뺏긴 듯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긴 했지만, 봄과 수경, 은영이는 한쪽에 서서 그냥 점심에 뭐 먹을지 말하고 있었다.
태양이가 봄의 옆으로 왔고, 수경이와 은영이에게 인사를 했다.
“태양아, 무슨 일 있어?”
웅성거림이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여서 봄은 태양이에게 물었다.
“어..”
살짝 웃던 태양이는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수경이를 보았고, 그래서 조금 머뭇거렸다. 봄과 수경, 은영이는 궁금해서 계속 태양이를 쳐다보았다.
“아, 아니, 좀 전에 카지노 게임가 학교에 왔거든. 스포츠카에서 내렸는데, 여자친구 차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봄은 표시 안 나게 수경이를 바라봤고, 수경이의 얼굴이 살짝 어색해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은영이는 카지노 게임 여자친구가 궁금하다고 웃었다.
꿈 많은 스무 살, 여학생들의 꿈의 모습으로 나타난 카지노 게임의 여자친구로 여겨진 사람은, 여학생들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카지노 게임의 여자친구로 여겨진 사람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부러움을 넘어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카지노 게임에게 인사하기 위해 잠시 차창에 보였던 그녀였지만, 보였던 것보다 더 많은 말이 덧붙여져 카지노 게임조차도 처음 본모습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멋있다는 말을 넘어 여신급으로.. 카지노 게임였기에 더욱 그랬을 거였다.
카지노 게임가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강의실 앞으로 왔다.
다른 애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의 크기는 줄었지만, 끊기진 않았다. 카지노 게임는 자신에 관한 말이 복도를 메우고 있다는 걸 짐작도 못했다.
태양이가 양해를 구하고 카지노 게임 쪽으로 갔다. 카지노 게임는 태양이를 보고 살짝 웃었다. 그러나 태양이의 몇 걸음 전에 있던 봄과 수경, 은영이 쪽으로는 바라보지 않았다.
“쟤들은 왜 저렇게 환할까?”
은영이는 태양이와 카지노 게임를 보며 말했다. 봄은 웃었다. 수경이는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태양이와 봄은 버스 정류소로 걸었다.
“카지노 게임 여자친구 맞는 거야?”
봄은 태양이가 가지고 온 소식이 궁금했다.
“뭐, 별말 안 해, 내가 지금 애들 다 난리라고 하니까 웃고 말던데.”
“그렇구나, 다행이네. 수경이 언니 때문에 많이 힘들어할 줄 알았는데..”
“아닌 척해도 아직 힘들 수 있어. 꽤 심각했거든. 내가 수경이 누나한테 편하게 말하니까, 나도 수경이 누나 좋아하냐고 물었거든.”
태양이는 그때 윤재의 고백이 떠올랐고, 윤재 덕분에 자신이 지금 봄이랑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아직 고마움을 제대로 전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괜찮아지겠지?”
“뭐가?”
“수경이 언니랑 카지노 게임. 예전처럼은 이제 안 될까?”
“글쎄. 마음이라는 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태양이는 다시 한번 마음이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과 봄의 어긋나지 않고 서로가 간절했던, 그 순간이었던.. 봄날의 그때를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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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무조건 지금 와야 해.’
도서관에서 태양이를 기다리며 방학 때 읽을 책을 고르고 있던 봄은, 은영이의 문자에 태양이에게 친구 연락이 와서 먼저 간다는 문자를 남기고 은영이가 말한 장소로 갔다.
은영이라고 말해도 되었지만, 은영이의 다급해 보이는 문자 내용에 우선은 밝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지 모르지만 그 느낌은 맞는 거 같았다.
처음 와보는 학교 앞 주점이었다. 그곳은 칸막이로 나누어져 있었고, 공간 사이가 넓어 사적인 공간으로서 괜찮은 곳이었다. 비록 일행이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해 일행이 먼저 드러내기 전까지 입구에서 머물러 있던가 아님 따로 연락을 해야 했지만.
‘언니, 나 도착. 어디예요?’
은영이의 머리가 불쑥 위로 올라왔다. 봄은 제일 안쪽 자리로 갔다. 그리고 울고 있는 수경이와 수경이 쪽으로 티슈를 건네는 은영이를 보고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서 있었다.
“봄, 얼른 앉아.”
“수경이 언니 왜 울어요?”
처음 봤다. 소문으로만 들어봤다. 늘 당당하고 밝은 수경이가 세상 서럽게 울고 있었다. 봄의 물음에 울다가 웃다가. 수경이가 말했다.
“봄, 미안. 내가 좀 주책이지?”
“봄, 우리 수경이 완전 바보다.”
은영이는 우는 수경이를 놀리고 있었다. 좀처럼 짐작하지 못하는 봄에게 은영이는 수경이 대신 말했다.
“카지노 게임가 수경이에게 고백했었다네.”
봄은 모른 척 듣고 있었다. 봄도 알았다. 고백하고 거절당했다는 걸. 수경이가 불편해할까 봐 아는 척하지 않았었다.
“그 이후로 카지노 게임가 수경이를 모른 척하고 지낸다네. 진짜 어색하게. 걔도 웃기지 않냐?”
“내가 그런 거야.”
울면서도 수경이는 카지노 게임 편을 들었다. 아님 진짜 자신을 탓한 건지도.
“며칠 전 카지노 게임 여자친구 소문 듣고, 마음이 안 좋았단다, 우리 수경이가.”
은영이의 말에 수경이는 또 울다가 웃었고, 봄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수경이만 바라봤다.
한참을 울던 수경이는 좀 진정이 되었는지 봄에게 말했다.
“봄, 미안해.”
“뭐가요?”
“사실은 태양이와 너 사이에 내가 끼어있다는 소문 알고 있었는데, 다른 애들이 너를 탓했잖아. 그럼, 카지노 게임부터 말해야 해서 내가 아무 말 못 했어. 미안해.”
“그건 괜찮아요. 사실이 아니잖아요.”
봄은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그때, 자신에게 다가온 공격을 떠올렸다. 이제 별것 아니었다.
“있잖아. 어쩌면 윤재가 고백했을 때 나도 많이 좋아했었던 것 같아. 그런데 곧바로 떠오른 현실적인 깨달음이라고 해야 될까.. 다시 든 생각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 나는 힘들게 온 대학인데, 남자친구를 사귀는 게 맞는지. 그냥 두려웠어. 바보같이 곧 후회했지만.”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그렇게 모른 척했었다. 수경이는 아무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열등감이 열등감이 아닌 척, 세상 쿨한 척 씩씩하게 지내오고 있었다.
윤재의 고백으로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자신에게 가했던 냉정한 룰을 벗어날까 봐, 결국 자신의 진심을 숨겨버렸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카지노 게임가 싸늘하게 수경이를 대했다. 그리고 여자친구도 있다는 말에 뒤늦게 수경이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이제 안 되겠지? 카지노 게임가 지나가고 나니까, 쳐다도 안 보니까 미치겠더라고.”
이젠 카지노 게임에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사실에 수경이는 절망했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가 드러날까 카지노 게임의 감정을 무시했다는 생각에, 그래서 오히려 자신이 카지노 게임에게 상처를 줬다는 생각에 수경이는 울었다.
은영이와 봄은 수경이를 달래 줄 수밖에 없었다. 가끔 깨달음은 늦게 오니까.
“수경아, 네가 그냥 카지노 게임한테 말해 볼래?..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안 되려나?”
“그냥, 오늘 언니랑 봄한테 말하고 잊어야지. 그냥 어딘가에 말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둘 다 오늘 나의 대나무숲이 되었다고 생각해 주라.”
수경이는 잊어야 했다. 다시 되돌리기에는 멀리 왔음을 인정해야 했다.
***
태양이는 봄이 혹시나 연락을 줄까 봐 도서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늦더라도 얼굴 보고, 버스라도 같이 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러나 봄은 ‘오늘은 먼저 가’라는 문자를 보냈기에, 더 이상 도서관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서 도서관을 나섰다.
“태양아.”
카지노 게임였다. 카지노 게임의 수업이 늦게 마쳤는지, 아님 자신이 봄이랑 자주 있어서였는지, 아님 다른 이유였는지 이 시간에 보는 카지노 게임는 오랜만이었다.
“지금 가?”
“어”
늘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카지노 게임였다. 그럼에도 어렵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가 가진 마음은 세상 누구보다 솔직하고 진실하다는 걸 봤기에.
“이봄 누나는 어디 가고 혼자야?”
먼 곳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말로 카지노 게임가 물었다.
“어, 약속 있다고 갔지.”
대화가 멈췄다. 더운 공기가 서 있기만 해도 지치게 했기에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걸었다.
“태양아...”
카지노 게임는 태양이의 이름을 부르고는 꽤 오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술 한잔 할래?”
카지노 게임의 심각한 표정에 태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몇 잔 마신 카지노 게임는 표정이 편안해졌다. 태양이는 카지노 게임가 말할 때까지 술을 따라주고 아무 말없이 같이 마시고 있었다.
“사촌누나야.”
태양이는 카지노 게임의 갑작스러운 말에 무슨 말인지 몰라 쳐다만 봤다.
“며칠 전 학교에 태워준 사람. 그런데, 그냥 애들이 그런 걸로 말하는 것도 싫고, 그리고..”
카지노 게임는 다시 술 한잔을 비웠다.
“태양아, 내가 수경이 누나한테 고백하고.. 네가 연락했는데, 내가 안 받았잖아.”
카지노 게임는 이제야 그때의 일을 말했다. 태양이는 무슨 일이냐, 왜 전화를 안 받냐, 요즘 왜 그러냐 묻고 싶었지만 굳이 먼저 묻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의 성격을 짐작하자면, 스스로만의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는 것 같았다.
*
“누나, 저 누나 좋아해요.”
자신의 말에 당황해하며 웃고만 있는 수경이의 모습에 카지노 게임는 민망했지만, 수경이가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생각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다시 이때를 생각하면 그 순간은 무모했던 것 같았다.
그래도 한참을 뜸을 들이는 수경이 앞에서 카지노 게임는 자신의 용기의 힘을 믿고 기다렸다.
카지노 게임의 고백이 재미난 장난인 것처럼, “넌 동생이야, 좋은 동생”이라는 말을 수경이가 내뱉자, 카지노 게임는 굳은 표정으로 더 고백해보지도 못하고는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너무 당황해서-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말로, 그 순간 마음이 너무 상해-난 동생은 안 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수경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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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심이었어. 너에게 말했듯이. 자신 있었는데.. 노골적으로 싫다고 하면 어쩌지 그런 고민 안 해본 건 아니야. 그런데 좋은 ‘동생’이라잖아.”
그때의 상처가 떠오르는지, 술이 올랐는지 카지노 게임는 울고 싶어졌다.
“너는 처음부터 봄이 누나를 그냥 봄이라고 부른 거지? 나도 그랬어야 했나..”
카지노 게임는 호칭이 문제였지 않았을까라는 의심이 순간 들었는지 태양이에게 물었다. 태양이도 무슨 마음에 그렇게 봄과 시작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그게 문제가 아님을 알기에 카지노 게임는 굳이 태양이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진 않았다. 태양이도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될지 몰라, 자신의 술잔만 비웠다.
윤재는 자신의 진심을 몰라준 수경이가 원망스러웠기에, 괜찮은 척하며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보고 지낼 수가 없었다. 윤재의 행동은 더 이상 수경이를 향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마음은 아직 그대로였기에, 어떠한 표정도 짓지 못하고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지내 왔었다.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다고 장담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후회했었다. 하지 말걸 그랬나.. 아님 그래도 괜찮다고 수경이 옆에 계속 있었어야 했나.. 어떤 것도 스스로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윤재는 더 말을 줄이고 지내오고 있었다.
“우는 거야? 울어?”
태양이는 카지노 게임의 눈에 맺힌 눈물에 당황했다. 자신도 그런 간절한 바람을 바랐던 순간을 겪었지만, 카지노 게임의 눈물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태양아, 너도 이랬냐?”
“난 이 정도는 안 했거든.”
태양이는 카지노 게임의 진심에 감동했지만, 웃음도 났다.
저렇게 덩치도 크고, 표정조차 차가운 녀석이 사랑에 울 줄은 몰랐다. 아닌 척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지만, 그래서 혼자서 끙끙거리며 버텼을 카지노 게임의 모습을 상상하자, 카지노 게임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태양이는 카지노 게임의 술잔만 채워주었다.
“너는 좋겠다.”
‘너 덕분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의 용기 아니었음 나도 시도조차 못했을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더 울릴 것 같아 태양이는 그냥 카지노 게임의 어깨만 두드려 줄 수밖에 없었다.
“수경이 누나가 지금은 이렇게 했지만, 너의 마음을 언젠간 알아줄 거야.”
카지노 게임는 자신 없다는 듯 고개만 가로저었다.
“네 마음은 그대로야?”
“그만둬야 되는데, 마음대로 안 된다.”
카지노 게임는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수경이에 대한 마음을, 아님 그때 실패했던 고백의 기억을 지우던지 덮어버릴 수만 있다면..
카지노 게임는 슬픔이 계속 넘쳐, 삼켜지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