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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세 Feb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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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정말 공정한가


현재 우리 사회가 완벽히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최근 들어 더 강력하게 공정사회의 필요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공정을 부르짖고 있는 작금의 모습은 추구하는 바인 공정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의 반증이다. 그렇다면 공정함의 기준은 무엇일까?



최근에는 입시나 취업과 같은 삶의 큼직한 문턱들에 있어 기회의 평등이 기준으로 세워진다. 현재 우리 사회는 기회의 평등이 갖춰지면 그것을 공정하다고 한다.


한편 기회의 평등은 결과의 평등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의 평등은 도외시된다. 사실 기회의 평등은 우리가 바라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에게 기회가 허용된다고 해서 누구나 그 기회에 접근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은 능력주의로 이어진다.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지만, 최종적으로는 그 중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성공의 결과가 돌아간다.


공정함을 신봉하는 우리에게 자연스레 능력주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마법의 이념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정말 공정한가?



능력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다른 조건들은 모두 차치하고, “능력” 하나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겠다는 이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능력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그 측정 기준은 완벽할 수가 없다. 우리가 현재 채택하고 있는 방법은 시험이다. 각종 지필 시험, 자격증 시험은 곧 우리의 능력을 검증해주는 도구가 된다.



능력주의를 채택함에 따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진다. 인간이 평가받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 것은 생각해보면 슬픈 일이지만, 사회를 구성하고 굴리는 데에 있어 당연히 어떠한 평가의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평가의 방법이다.


우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내 인정받아야 하고, 그 증명의 방법은 오로지 시험이다. 이에 더해 그 능력을 인정해주는 주체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통제 가능한 객체로 격하시킨다. 사람들을 시험 점수에 따라 차등적으로 줄 세워 통제하는 것은 무엇보다 지배 세력에게 쉽고 간편하다.


시험 점수와 스펙의 나열로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분명 간단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험은 공평할지언정 공정하지는 않다. 시험은 모든 수험자에게 똑같은 시간, 문제, 채점 방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공평하다. 그러나 시험은 내가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따라주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그 노력을 들일 수 없는 환경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의식주와 같은 생존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시험에만 올인할 수 있는 그 환경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특권일 수 있다.



능력주의를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로 받아들인 사회에서 “능력이 없는” 사람은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부족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여겨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능력한 사람은 경제적 안위를 보장받지 못한다.



능력은 상속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개인의 능력은 오롯이 개인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모든 환경적 요인들과 결합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능력이 부족한 청년은 자녀를 낳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무능력이 지탄받는 사회에서 무능력을 상속시킬 용기를 가지기는 어렵다. 이에 더해 “가난하면 애 낳지 마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또 어떤가. 능력주의는 저출생 문제와도 긴밀히 연관되어있는 것이다.



능력은 타고나는 것(재능, 부모, 환경)과 노력의 종합이다. 따라서 순수 '능력'만을 보겠다는 능력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능력주의를 채택한다는 것은 곧 인간이 불평등하게 태어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것과 같다.


개인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다 무효 처리하고 모두를 똑같은 출발선상에 세워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 개인의 상황과 환경을 꼼꼼히 고려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능력이라는 정의의 재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능력주의의 대안이 무엇일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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