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 중독, 불안
1.
"사람의 내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넌 무조건 (내면을) 숨겨야겠네"
"앗..."
2.
야. 나는 카지노 게임이 엄청 오래간다.
고등학생때는 짝카지노 게임을 3년동안 했어.
대학생때는 2년넘게 연애 했고, 이정도면 순애지?
그런데 이상해진게, 헤어지고 나서 6개월 동안 두 번의 짝카지노 게임을 하고 있어.
첫 번째 짝카지노 게임은 실패로 끝났지만. 최근들어 누군갈 좋아하네.
생각해보면 요즘은 그냥 '카지노 게임이라는 감정'에 빠지길 좋아하는 것 같아. 그 상대가 누구든.
실존에 대한 구원으로서 사랑을 바라보아서 그런걸까? 내 실존에 대한 물음이 사랑으로 귀결되길 바라는 마음이, 이런 가벼운 짝카지노 게임을 하는 사람으로 만든 거 아닐까. 구원으로서의 사랑.
내 딴에서는 운명적인 상대인 것 같아 좋아하는 건데, 지금의 내 연약한 모습이 짝카지노 게임하는 상태를 만든 것 같아. 그리고 그런 내가 싫네.
3.
(아는 후배 블로그에서 주고받은 댓글)
카지노 게임이 구원이라니, 팩트인 것 같으면서도 살짝 무섭다.
- 타인을 카지노 게임하는 일은 불행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서 역시 자기를 카지노 게임하는 셀프 구원이 좋은 것 같아요. 간혹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카지노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기를 카지노 게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
- 재밌는 것 같아서 계속 생각해보니, 타인의 카지노 게임은 구원의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것 같아요.
누군가 옆에서 '당신은 가치있는 존재', '당신은 왜 이렇게 멋져?' 해주니까 신나서 더 열심히 살고...
분명 혼자였어도 언젠가 해결될 문제들인데, 곁에 카지노 게임하는 누군가가 있으니 빨리 해결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4.
브런치에 올린 '짝카지노 게임'은 '안온한 자아를 갖고싶다 라는 소망'이다.
5.
사실 '안아주면 좋겠다느니',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한다느니'. 짝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를 빌린거지, 자기연민에 가까워. 그러니까 내게 짝카지노 게임은 연약한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인거지.
참고로, 글로 표현되는 나는 굉장히 연약한 사람같지만 나는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는거.
내 가치관, 지식, 재능.
모두 남들이 보기엔 동경의 대상이 될 때가 많아.
내가 내게 설정한 허들이 너무 높아서, 어떤 칭찬도 내 마음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나는 굉장히 강인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거
6.
짝카지노 게임의 감정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사랑이라는 구조에 소속되고 싶었던 내 실존의 욕망이라면?
카지노 게임을 의심하고, 감정을 의심하고,
어쩌면 내가 자주하는 버릇임에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주문을 외우고 나면
좋아하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어안도하고
이 감정이 그 자체로 가치있다는 것에 환희를,
이 감정에 당당해질 수 있었다.
7.
감정의 구조를 해체하고, 의미를 의심하고, 카지노 게임을 서사로 환원지어도
결국 지금 내 카지노 게임은 변치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PSN0l8wu1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