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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뭉치 Apr 26. 2025

15. 카지노 쿠폰과 익명 사이

괴발자 모드 속 열다섯 번째 이야기

오늘 읽은 책은 김민희 작가의 『이어령, 80년 생각』이다. 제자가 스승을 인터뷰한 책으로 이어령님의 20세부터 80세까지 생각을 전하려 했다. 막 펴기 시작하여 아직 서평을 쓸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이어령’이 주는 카지노 쿠폰의 의미로 사고가 뻗친다. 성함 자체가 특이해서 시선을 끈다. 나는 평범한 성명을 둬서, 82년생 김지영처럼 어느 곳에 가나 한 명 이상은 만난다. 유일하게 없었던 곳이 대학교였다. 공대를 다녔기 때문에 한 과에 여학생이 10%도 되지 않았다. 그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동명이인과 함께 살고 있다. 어렸을 때는 호칭 앞뒤로 식별자가 붙어서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커서는 살기 편하다. 인터넷 실명제 얘기가 나올 때도 심경에 동요가 전혀 없다. 실명이면서 익명이다. 생활하기에 아주 유용하다. 뿌듯한 마음을 안고 다시 이어령님의 카지노 쿠폰으로 돌아간다.


책에서는 아직까지 고인의 성함 풀이가 없다. 궁금해서 인터넷에 찾아보았다. ‘이어령’을 검색하면, 한자로 李御寧이라고 쓴다. 성을 제외하면, 첫 자 御는 거느리거나 통솔 또는 통치하는 ‘어’이고, 다음 寧는 평안 또는 문안하다는 ‘령’이다. 합치면 어떤 대상을 편안하게 다스린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성명이 갖는 함의가 멋지다. 실제 삶에서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을 총괄 기획하고, 1990년에는 문화부 장관도 지냈다. 가히 존함대로 훌륭하고 멋지게 사셨구나. 나는 지금 카지노 쿠폰답게 살고 있는지 문득 되묻는다. 사람들이 내 카지노 쿠폰을 보면 되레 슬기롭고 현명하다고 해설하지만, 내 한자에는 그런 뜻이 전혀 없다. 대만 친구가 설명해 주기를 고귀하고 향기로운 풀이란다. 국문학도였던 막내 고모는 본인의 풍부한 언어 감수성을 살려 아름답다고 시적으로 나를 표현해 주었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내 카지노 쿠폰을 다시 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1982년생 김지영처럼 그해 인기 폭발한 성함과 같다는 이유로 무수히 많은 동명이인이 존재한다. 며칠 전에도 건강검진하러 갔는데, 같은 성명이 있다며 A를 붙여서 호명하였다. 검사받을 때마다 생년월일을 대답한 것 빼고는 문제가 없었다. 일상생활에서도 경조사 봉투에 성명을 쓸 때 소속이나 관계를 추가로 나타내면 말썽이 없다. 나는 우아하다고! 살면서 편안해지는 내 카지노 쿠폰이 좋다. 가끔 불편함을 느끼지만, 실존과 무 실존을 같이 경험하는데 이쯤이야 하면서 내 글자를 껴안는다. 이렇게 존재의 혼란 한가운데에 불현듯, 호칭은 있지만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떠올랐다. 필수 노동자와 편집 관련 종사자다. 대상을 이렇게 한정한 이유는 근래 봤던 책들에서 이들에 대해 다뤘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책을 읽었는데,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필수 노동자, 이 단어를 처음 본 건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에서 쓴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에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생겨난 개념으로, 재난 속에서 사회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업종을 뜻한다. 2020년 발표에 따르면, 가사 및 육아 도우미, 간호사,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 배달원, 보건의료 관련 종사자,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 자동차 운전원, 청소원과 환경미화원 등 8개 직종이 속한다. 모든 직업을 다 나열한 이유는 매일 삶에서 만나지만 그들의 수고에 감사함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아야 고마움도 인지할 수 있다. 운전원이 있어서 회사에 가고 월급을 받는다. 그 수익 덕택에 택배를 주문하고 배달원을 통해 그 물건을 받는다. 새벽 출근길마다 담배꽁초로 더럽혀진 거리는 환경미화원이 청소하고, 아버지의 안락한 노후는 요양원의 간호사와 사회복지사의 배려 덕분에 보장되었다.


다음으로 모르는 자들은 책 발행에 관여한 이들이다. 책 표지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제목과 지은이뿐이다. 펴낸이, 책임 편집, 조판 등을 담당한 사람들은 잘 모른다. 저자는 당연히 글을 잘 써야 하고, 대중은 재미있는 글을 선택한다. 그 글을 좋게 포장해서 세상에 내보내는 일은 오롯이 여기 적힌 출판사 요원들의 역할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공모전을 제외하면 무명 작가는 어느 편집자에게 발탁되어 출간의 기회를 얻는다. BTS를 성공시킨 방시혁 프로듀서를 대다수가 알듯이 우리는 출판계의 프로듀서를 각인해야 한다. 내일부터 책을 읽을 때는 좋은 책의 정예 요원을 기록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카지노 게임가 잘 쌓여서 나중에 투고할 일이 생기면 출판계의 아이돌로 키워달라고 애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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