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wn of Everything
'인류사회의 서막'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책은, 인류학자 (David Graeber)와고고학자 (David Wengrow) 둘이서, 인간사회의 기원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그동안 배워서 알고 있는 인류사회의 '변화과정' (흔히 '진화과정'이라고 우리는 배웠지만, 저자들은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에 대해 묵직한 돌직구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너무 방대한 내용을 기술한책이라서, 읽기가 어려워 중간에 한 번 포기했다가 굳게 맘먹고 다시 시작해 끝내기는 했지만, 나의 머리는 지금 망치로 여러 군데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무언가 수렁에서 헤매다 나온 기분이다. 내용을 이해 못 해서 (물론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한 부분도 많다)라기보다는 그동안 알고 있던, 인류의 시작부터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인간 사회의 형태에 이르기까지 인류사회에 일어난 일련의 과정을 '단순하고', '과학적 근거가 없는'논리로 설명하는, 계몽주의 사조에 기반한이론이 얼마나 많은 불편한 진실들을 숨기고 외면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7세기에 시작된 유럽의 살롱문화는 많은 지식인들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키는 교류의 장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주워들은' 이야기나 몇몇 선교사, 탐험가들이 방문한 일부 지역의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사회제도를 기술한일지를 바탕으로 하여, 머릿속에서 풀어낸 '썰'에 불과한 이론들이 난무했던 것도 사실이다. 과학적 증거가 부족한 몇몇 '썰'들이 인기를 얻어 후대의 학문적 사조로 자리 잡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다. 인류학에서 우리가 보통 배우는 인간 사회의 진화이론 (수렵-유목 사회에서 농업 혁명을 거쳐, 크고 복잡한 사회제도를 가진 제국의 형태로 '진화'해 왔다는 이론)의 근간이 되는 아이디어의 기원이, 장 자크 루소가 '인간 상회 불평등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솔직하게 말해서, 그 당시 유럽사회에 존재하던 사회 불평등을 변명하기 위한)에세이 콘테스트에 출품한 한 편의 글이었다는 사실은 약간의 허무함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물론 루소의 글이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것과 같은 수준의 '뇌피셜'은 아니었겠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편향되지 않은 객관적인증거가 결여된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계몽주의 사상 (대부분 그 당시 유럽이 처한 사회적 모순을 이해하고 이를 문명의 진화 과정으로 포장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생각들)에 기반한 인류학 연구에 대해, '증거 있어?"라는 질문을 하면서, 실제로 저자들이 수집하거나 다른 고고학 연구결과를 참조해서 나열하는, 세계곳곳에서 생성, 소멸했던여러 종류의 부족, 사회, 국가들에 관한 얘기들을 쫓아가다 보면, 고고학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편향된 자료에 의지해 마음에 드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해서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음식의 편식'이 우리의 몸에 해로운 것과 마찬가지로 '정보의 편식'도 우리의 생각과 사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은 자명한 사실일 터. 사실과 거짓이 혼재된 정보가 난무하는 복잡한 현대사회를 슬기롭게 살아가려면 항상 마음에 담아 두고 있어야 할 사실이다.
저자 중 하나인 David Graeber가 2011년 시작됐던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반적인 책의 기조가 서구 중심의 계몽사상에 기반한 기존의 인류학을 거부하고, 고고학에서 실제로 발견되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제도를 그저 어쩌다 생겨난 일부 돌연변이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행태를 비판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이해할 수 있다. 또 그것을 감안해서 읽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이 하는 질문들은 다른 학문분야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나 천문학을 하는 입장으로서 인류학 연구자가 가지는 고민 (과연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다 인가?)은 천문학자가 항상 고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큼 알 수 있다. 언제든 새로운 무언가가 발견되어 우리의 상식에 도전을 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