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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o Apr 08. 2025

"가난하면 행복하지 않나요?"

맨발의 아이에게 배우는 가치

나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여행이 아닌 해외 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캄보디아.

‘말만 봉사지, 과연 캄보디아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통역이 있다지만 카지노 쿠폰과 의사소통할 수 있을까?’

‘오지 말 걸 그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캄보디아, 씨엠립. 기내 방송이 착륙을 알렸지만, 내 머릿속은 ‘정말 괜찮을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엄마, 나 이번에 해외 봉사 가려고.”

엄마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언제 네가 하고 싶은 거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 지상이 알지? 요즘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한다고 걔 엄마가 걱정이 많대. 혼자 가지 말고 지상이 좀 데려가.”

엄마의 친한 동생 아들이라는 이유로 난데없이 내 봉사 여행 동행자가 정해졌다.


캄보디아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무심코 해외 봉사를 검색했는데, 가장 먼저 뜬 곳이 <캄보 프렌드라는 단체였다. 알고리즘을 따라 캄보디아 봉사 사진 속 아이들을 보니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캄보 프렌드에 전화를 걸어 봉사활동과 경비에 대해 물었다.


씨엠립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촉촉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낯선 듯 익숙한 이 느낌이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한글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글자들이 오히려 정겹게 다가왔고, 처음 듣는 캄보디아어는 낯설지만 어딘가 따스하게 들렸다. 도착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서자, 옆에 선 지상이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우린 잘할 수 있을 거야."


공항 밖으로 나와 마중 나온 직원과 함께 숙소로 향했다. 처음 보는 씨엠립의 풍경은 마치 시골길을 달리는 듯했다. 가끔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된 건물들이 보였다. 직원은 영어로 일정을 설명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카지노 쿠폰을 만나러 가는 길은 숙소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다. 처음엔 아스팔트 도로를 달렸지만, 20분쯤 지나자 차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이 비포장도로가,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카지노 쿠폰과의 만남을 방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학교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자 카지노 쿠폰이 우르르 몰려왔다.


흰 와이셔츠와 남색 바지가 교복인 듯했지만, 와이셔츠는 누렇게 때가 묻어 있었고, 바지는 마이클 잭슨 스타일의 칠부 길이였는데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다. 맨발로 달려오는 카지노 쿠폰의 까만 발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지상이는 마치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 카지노 쿠폰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민망해졌다.

카지노 쿠폰

컴컴한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전등 하나 없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1960년대 한국에서나 볼 법한 낡은 책상과 걸상. 지저분한 시멘트 바닥 위로 카지노 쿠폰의 검은 맨발이 보였다.

‘내가 이 카지노 쿠폰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진 속 환하게 웃는 카지노 쿠폰만 상상했지, 이런 환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카지노 쿠폰은 나를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찢어진 옷과 얼굴, 몸 곳곳에 선명한 검은 땟자국. 눈이 마주치는 순간, 카지노 쿠폰은 검은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왜 웃는지도 모르고 따라 웃었는데, 가슴이 따스해졌다.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이 나를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찢어진 옷과 얼굴, 몸에는 검은 땟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검은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왜 웃는지도 모른 채 따라 웃었더니 가슴이 따스해졌다.


어릴 적 태권도 선수였던 나는 카지노 쿠폰에게 한국어와 태권도 기본 동작을 가르치며 첫 수업을 시작했다. 지상이는 태권도 검은 띠였기에 함께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태권도는 동작을 따라 해야 하기에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한국어임에도 카지노 쿠폰은 곧잘 따라 했다. 지상이가 내게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침을 간절히 바라는 카지노 쿠폰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눈빛이 빛났다. 쉬는 시간이 되자, 동네 어른들과 카지노 쿠폰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지상아, 우리가 이 동네 첫 외국인이래.”

“누나, 그럼 카지노 쿠폰은 외국인이 우리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겠네요.”

“수스다이!(안녕하세요!)”

손을 모아 동네 사람들과 인사했다.

“이쿤(고맙습니다).”

신발을 신지 않은 카지노 쿠폰 틈에 나도 신발을 벗고 함께 뛰어놀았다.

카지노 쿠폰

동양인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외국인 선생님인데, 카지노 쿠폰은 해맑게 다가와 주었다. 신발을 신지 않고 노는 카지노 쿠폰 틈에 끼어 신발을 벗고 함께 놀기 시작했다. 검은 발은 쉼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하얀 발은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을 디뎠다. 카지노 쿠폰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한술 밥에 배부르랴. 신발이 없어 맨발로 살아가는 카지노 쿠폰의 딱딱한 발을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뒤쫓아 가면서 웃음만 나왔다.

“지상아, 우리는 안 되겠다.”


시내의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평범한 시골 일상에 첫 외국인을 맞이한 마을. 환하게 웃어주는 카지노 쿠폰과 상반된 환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늘 카지노 쿠폰 보니 어땠어?”

저녁을 먹으며 물었다.

“카지노 쿠폰 눈이 예뻐요, 너무 재미있어요.”

새로운 걸 배울 기회가 많지 않은 시골 카지노 쿠폰과 좋은 환경에서도 공부하지 않는 지상이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너 왜 엄마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냐?

지상이는 중학교 때까지 전교 회장을 할 정도로 똑 부러지는 학생이었지만,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가 가란다고 그냥 누나를 쫓아왔을 것 같진 않은데, 어떤 마음으로 온 거야? “

”그냥요. “


작은 시골 마을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나무에 해먹을 매달아 누워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맨발로 나무에 올라 코코넛을 잘라 떨어뜨리는 사람이 있다. 신발을 신지도 않고 거친 땅바닥에서 뛰어노는 카지노 쿠폰과 강아지들이 마냥 즐거워 보였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허름한 집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변변한 찬도 없이 맛있게 식사하고 있다. TV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마을의 모습과 생활을 보게 된 것이다.


운이 좋아서일까. 마을의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행사가 열렸다. 봉사를 왔는데, 마을의 문화까지 경험할 수 있다니. 아이들과 함께 호수로 갔다. 날카로운 풀숲에 아이들의 거침없는 맨발이 또 보였다. 허리까지 물이 올라온 곳에서 그물을 던지는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저기 물고기를 잡아 기뻐하는 사람들 틈에 우리도 함께했다. 마을 이장이 잡은 물고기를 가져다가 즉석에서 나무 꼬치구이를 해주었다. 한쪽에서는 개구리를 잡아 굽고 있었다. 어디에 달려 있었는지 모를 나무 열매를 한 움큼 가져다주는 아이도 있었다.

”누나, 먹어요? “

”가져다준 건데 먹어보자. “

지난번 마을 행사에서 로컬 음식을 먹고 자신감이 생긴 우리는 동네 시장에 갔다. 한국의 오일장과 비슷하지만, 지저분했다. 날이 더워 아이스를 갈아 넣어 만든 사탕수수 음료를 마셨다. 시장 구경은 한참 이어졌다.

”지상아, 누나 숙소 가야겠다. “

”힘들어요? “

”아니, 배가 너무 아파. “

떠나는 날까지 배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외국 음식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그날 이후로 로컬 음식을 절대 먹지 않게 되었다.


”지상아,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

힘없이 대답했다.

”네 “

짧았지만 깊었던 시간. 떠나는 날이 되었다. 학교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중, 지상이가 울고 있었다.

“누나, 저 한국 가면 열심히 할게요.”

“엄마 말씀도 잘 듣고.”


군대를 다녀와도 3개월이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데, 일주일 봉사로 지상이가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후, 엄마의 전화가 걸려왔다.

“선희야, 지상이 삭발하고 폴더폰으로 바꾸고 공부만 한대.”

“잠깐 하겠지.”


그런데 몇 개월 후,

“누나, 저 대학 합격했어요. 감사합니다.”

“내가 뭘 했다고. 축하해.”


그때 한 아이가 떠올랐다. 맨발로 달리다 지쳐 잠시 앉아 있을 때, 아이가 다가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행복해.‘

‘가난한 삶이 어찌 행복하냐?’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아이가 다시 물었다.

‘가난이 뭐야?’

나는 대답했다.

‘지금 네 삶이 가난이야.’

아이는 또 물었다.

‘가난하면 행복할 수 없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의 편안한 생활보다, 불편함이 가득한 시골 마을에서 배운 것이 더 많았다. 완벽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완벽해지려 노력했다. 하지만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었다.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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