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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수술실 Apr 11. 2025

Ep.12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내가 잊었을 뿐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카지노 게임이란 나에게 늘 편리하게 편집되는 영화 같다.
원하는 장면만 남기고, 불편한 장면은 잘라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게 원래부터 그런 이야기였던 것처럼 믿는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는 그 익숙한 자기기만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카지노 게임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이야기일 뿐일까?


완벽하게 설계된 소설, 두 번째 읽기를 부른다


이 책은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처음 1부를 읽을 때는 평범한 회고록처럼 보였다. 토니 웹스터는 조용한 중년의 삶을 살고 있으며, 과거를 더듬으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 연인 베로니카와의 관계, 그리고 영리하고 철학적이었던 애드리언까지. 그의 카지노 게임 속에 존재하는 과거는 꽤나 선명해 보인다.


그러나 2부에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흔들린다. 토니가 카지노 게임했던 과거는 조금씩 금이 가고,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1부에서 놓쳤던 작은 단서들이 하나둘씩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한다. 그제야 깨닫는다. 이 책은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1부를 펼쳤다.
처음에는 의미 없어 보였던 문장들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줄리언 반스는 독자가 의심하도록 철저하게 유도하고 있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낼 수 있는 소설이 아니었다.
한 줄, 한 단어조차도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였다.


카지노 게임의 균열 속에서

토니는 자신의 카지노 게임을 믿는다.
자신은 그저 평범했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독자는 그의 카지노 게임이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카지노 게임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그는 과거에 보낸 편지 한 통으로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편지를 카지노 게임하지 못했던 자신, 혹은 카지노 게임하지 않기로 했던 자신.
진실은 언제나 그 틈에 숨어 있다.


이 부분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카지노 게임을 조작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
상처받은 일은 선명하게 떠올리면서,
내가 누군가를 아프게 했던 순간들은 어느샌가 흐려졌다.


카지노 게임 진실을 따르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은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자주 과거를 편집한다. 어릴 적 친구와 다투었던 일, 그 친구가 나를 먼저 미워했다고 믿어왔지만, 사실 내가 먼저 상처를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카지노 게임은 늘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구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카지노 게임 실험’처럼 느껴졌다.
줄리언 반스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묻는다.
"당신이 믿고 있는 이야기는 정말 사실인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모른 척했을 뿐

책의 제목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
하지만 그 ‘예감’이 곧 진실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는 종종 예감을 억누르며,
카지노 게임을 왜곡하며 살아간다.
‘틀리지 않았지만, 카지노 게임하지 않았던 것.’
이 책은 바로 그 간극을 찌르고 들어온다.


책장을 덮고 나서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
거기 담긴 카지노 게임 선명했다.
하지만 그 선명함이 진실을 담보하진 않았다.
카메라가 포착한 건 이미지일 뿐,
그때의 감정과 관계, 맥락은 결국 내 카지노 게임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카지노 게임, 항상 완전하지 않다.



<오늘의 한 문장

“카지노 게임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중에서


(다음 이야기, Ep.13에서 계속)


카지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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