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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 사무엘 Apr 14. 2025

카지노 게임에 관하여

꼭 해야 하는 말, 하고 싶지만웬만하면하고 싶지 않은 말

. 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저는 원래 예정일인 2005년 2월이 아닌 2004년 11월 8일 날 조그마한 미숙아로 힘겹게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남들보다 확연히 늦은 나이에 바닥을 기고, 남들보다 확연히 늦은 나이에 걷기 시작했습니다. 뛰는 건 가능은 하겠으나, 만약 제가 "뛰는" 걸 보신다면 제가 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절뚝거리며처연한 모습으로 애잔하게 다가오는 바쁜 걸음으로 치열하게 이 삶을 살아나가시는 수많은 현대인들을 위한 행위예술을 하는 건지 헷갈려하실 겁니다. (다소 과하게 현학적일 수도 보이는 이 묘사는 제 창피함을 열심히 가려보려는 면피임을 말히며 부디 너그러운 이해 바랍니다.)


아무튼, 저에게는 바닥을 기는 것, 걷는 것 하다못해 "뛰는" 것 마저도 저에겐 카지노 게임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글을 시작하면서 썼던 그 문장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때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은 내 장애는, 내 한계는 내가 정하는 것이고, 결국은 암들의 눈으로 본 나 자신은 대부분 매우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나나, 매우 벅찬 기분이 들더군요. 그 과정에서 제가 찾은 인생의 진리를 말씀드려 보자면:지금 여기서 좌절하고 슬퍼하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짧다는것과 도전하지 않고 후회하는것보단 뭐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는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들었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덕에 고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간절하게 입사하고 싶었던 프로야구단의 라이벌 팀 임원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존 카르피노 사장)과 전화통화도 해보고 이메일도 보내보기도 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서 바꿔먹은 마음 하나가 저에게 엄청난 발전을 도와줄 배움의 기회로 돌아왔습니다.

카지노 게임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존 카르피노 사장(출처: MLB/Getty)

사실 위 사진은 주인공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15분) 정도의 통화는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았습니다. 그분이 인상적이지 않았다기 보단 오히려 제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혀도 꼬이고 식은땀만 흘리다가 끝나버리죠. 그래도 결국 카지노 게임은 카지노 게임이었으니 큰 후회는 없습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일단 해봤으니까요. 카지노 게임은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인상적이고 빠른 방법입니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많은 기회를 놓쳤고,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곧 더 좋은 기회가 올 테니까요. 다만 카지노 게임 제 자신에게 바라는 건 새로운 기회가 다시 왔을 때 그걸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눈썰미가 남아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 제가 이 글 위에 첫 문장처럼 장애가 있다" 하면서 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제가 끔찍이도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제 소개를 할 때, "제가 장애가 있어서요..."로 시작할 경우, 그분들이 저를 연상할 때 저 자신이 아닌 저의 장애가 먼저 연상이 돼버리는 상황은 꼭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부로 제 신체적인 이야기들을 피함으로써 저라는 사람을 단순히 제가 가지고 있는 장애로 정의하지 않았으면 하는 절박한 바람이자, 간곡한 부탁을 상대에게 하는 것이죠. 너무나도 다행스럽게도 제가 만난 분들 대부분은 제 우회적인 바람과 부탁을 들으셨는지, 제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제 장애에 관해 굳이 이야기를 꺼내시지 않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카지노 게임은 뭐니 뭐니 해도 "평범"에 대한 카지노 게임이자 다른 사람들의 관점으로 본 "평범"에 대한 카지노 게임이고, 어찌 보면 저만의 "평범"과 저만의 관점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비범"이나 단순히 "발달 저하"라는 차가운 단어들로 저라는 사람 고유의 인간성이 지워지는 게 아니라, 저를 볼 때 저의 절뚝거리는 다리를 보고 당황하며 어색해하는 게 아니라, 제가 쓰고 있는 야구 모자, 제 인스타그램 프로필의 사진이나 피드들을 보며 "보통 사람"으로 다가오는 그런 관점이 만연한 세상이 되기를 매우 절박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제가 인스타 돋보기를 유영하다가 찾아낸 한 책의 글귀로 이만 글을 줄이고자 합니다.


어쩌면 각자가 경험한 한 조각의 진실을 마치 온전한 세상인 양 믿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믿음의 테두리 안에서, 타인의 삶을 제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쓰다 보니, 쓸 만해졌습니다 위한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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