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음공주였다. 사악하리만큼.
차갑디 차가운 그녀의 눈빛 하나로
수많은 왕자들이 목을 잃었다.
잘려나간 목들은 성 앞에 참혹하리만치 줄지어 세워졌고, 피비린내가 온 마을을 진동했지만, 또 다른 희생자는 망설임 없이 성문을 들어서 징을 울린다.
백성들은 피에 취해있고, 그녀 투란도트 공주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세 개의 수수께끼는 오늘도 어김없이 제시되고, 그걸 풀지 못한 숱한 왕자들은 오늘도 목이 잘려 나간다.
뭐가 그렇게도 매혹적이었을까.
그저 멀리서 한두 번 바라봤을 뿐일 텐데..
목숨을 걸 만큼의 사랑이었을까.
한 나라의 왕자였을 그들이,
그녀 하나 때문에
대가 끊긴 나라가 한둘이 아니었겠다 싶다.
막상 그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한 번씩 생각난다.
아주 오래전 외국에서 오페라를 참 많이 사 오던 시절,
이탈리아의 유명 연출가의 투란도트 작품을 국내의 큰 오페라단에서 통째로 들여왔었다.
당시 국내 연출팀였던 20대의 나는 아주 작은 귀걸이 한 짝까지 갖고 오던 그 할아버지 연출가를 잊을 수가 없다. 미술에 조예가 깊던 그는 오브제와 컬러를 정말 환상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눈으로 본 동양의 문화가 가득 묻은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새로웠다. 특히나 금발의 단발머리에 몸매가 드러나는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투란도트는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시종일관 차갑고 냉소적인 모습으로 극을 진행하다 마지막에 사랑을 알게 된 그녀가 칼라프와 손을 맞잡고, 온 무대를 아이처럼 맨발로 뛰어다니며 죽음의 상징이던 징을 장난치듯 두드리던 장면.
관도, 마스크도, 신발도, 그 어떤 장신구도 모두 벗어던지고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칼라프의 품에 안긴 그녀는
더 이상 얼음공주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자유로운 한 명의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소녀였을 뿐.
23살,
대학을 막 졸업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카지노 쿠폰
그저 무대에 던져진 날것의 존재였다.
연출이 뭔지 내가 알게 뭐람.
아주 어릴 적부터 노래를 했지만, 태생이 청개구리 인지라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반항 아닌 반항으로 예술 고등학교가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해 놓고는 갑작스레 또 성악과 시험을 봐버렸다.
대학교 1학년 어느 날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다가 한 소프라노 선생님께 완전히 매료되어 그 길로 자퇴를 감행하고 그 선생님이 계신 학교로 다시 시험 쳤다.
기껏 또 들어간 학교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고, 카지노 쿠폰 또 딴짓을 시작했다.
'카지노 쿠폰 성악가가 될 거니까 미리 답사를 가보겠다'며 유럽 배낭여행을 훌쩍 혼자 떠났고,
'이 청춘 끝나기 전에 이건 해봐야 한다'며 국토대장정을 떠나 한 달간 걸어 다녔다.
급기야 '나중에 내 이름 걸고 오페라단 단장은 한번 해야 하지 않겠냐'며 갑자기 경영학과 복수전공까지 시작했다. 음대 돌대가리가 경영대를 갔으니, 성적은 뚝뚝 떨어졌지만 신세계는 늘 흥미로웠다.
우리 부모님은 조선시대도 아닌 고조선시대에 사시는 분들이라, 그냥 뭐 앞뒤가 꽉꽉 막히다 못해 옆구리까지 터졌다고 생각하면 쉽다. 당시 우리 집은 종교가 없었는데, 누가 물으면 우리 집은 유교 믿는다고 할 정도였으니.
당연히
나의 별명은 언제나 신데렐라였다.
물론
카지노 쿠폰 그 안에서 허용되는
최대한의 일탈을 하느라
청춘을 다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무렵,
우연히 친한 언니 쫓아서 오페라 합창오브리, 일종의 합창알바를 가게 되었다.
처음이라 낯설고 어렵고,
잘생긴 오빠나 한 명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냥 언니들 만카지노 쿠폰 재미로 갔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한 선생님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게 되었고,
무섭게 생긴, 모두가 선생님이라 부르던
그분이 엘리베이터에서 어색함을 깨고 내게 물었다.
넌, 몇 살이냐?
누구세요?
세상에나.. 연습기간중였는데 누구세요라니..!!
한참을 나를 보던 그는 껄껄 웃으며 본인을 이 작품의 연출가라 소개했고,
오히려 하찮은 합창 따위의 나에게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내리셨다.
카지노 쿠폰 당장 오페라 연출가라는직업을 찾아봤고, 그분이 계신 대학원도 알아냈다.
" 앗싸 "
숨쉬기도 버거운 우리 집였지만, 공부라면 관대했기에, 나는 곧장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다. 연출 지식이 하나도 없던 무식쟁이 카지노 쿠폰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시중에 있는 오페라 관련 책을 모조리 읽었고, 실기시험은 나의 감으로 무작정 밀어붙였다.
합격.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았던 그때, 나는 그렇게 연출가의 길에 설레임으로 첫 발을 들였다.
대학원 생활 내내 학교에 간 날보다 극장에서 먼지를 마신 날이 더 많았다.
멀리서 신처럼 보였던 선생님은 가까이에서 제자가 되고 보니, 누구보다 바쁜 연출가였고, 그의 제자인 조연출은 진짜 몸이 수백 수천 개라도 모자랄 판국였다. 선배들은 이미 경험이 많은 베테랑 들였고, 대학 졸업 후 바로 들어온 꼬맹이는 오직 나 하나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입학하던 해, 선배들 사이에선 또라이하나 들어왔다며 회의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 나는 분명 골칫덩이였을 것이다. 당연히 실수도 많았고, 어리바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이 맡은 거의 모든 작품에 나를 데려갔다. 나는 그렇게 뛰어다니며 살이 쭉쭉 빠지고,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단기 속성으로 조금씩 무대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밤낮 없는 생활에 집에서는 걱정과 반대가 이어졌지만,
그러나 알 수 없는 매력에 이상하게도 이 일은 멈출 수 없었다.
작품을 핑계로 학교를 핑계로, 카지노 쿠폰 계속해서 그 세계에 머물렀다.
대학원 졸업이 다가오자, 부모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그만두기를 바랐고,
카지노 쿠폰 그 마음을 알기에 먼저 선수를 쳤다. 박사과정에 진학하겠다고.
모두가 '연출가가 무슨 박사냐'며 말렸지만,
나에겐 그게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핑계이자 방패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몸은 힘들었지만,
이게 일종의 일탈였었나 보다.
친구집에서의 외박 한번 허락되지 않았던 우리 집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공연하는 그 팍팍한 유랑극단의 삶이 나의 욕구를 해소시켜 준 것 같다.
그러나 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건 상상 이상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내 활동도 본격화되었고, 선생님의 작품은 계속 도와야 했고, 나만의 연출도 시작해야 했다.
심지어 정신없는 와중에 출강까지 시작하면서
스물아홉,
카지노 쿠폰 대학 강단에 섰다.
아마도 이건 그토록 인정해주시지 않으시던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인정받고 싶어서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마치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것마냥 미친 듯이 계속 달렸고, 그 결과 20대에 하고 싶었던 대부분의 버킷리스트는 하나씩 하나씩 다 이뤄냈다.
딱 두 개만 빼고.
그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이 아니더라.
친구들은 모두 너무 빨리 결혼해 버렸고, 카지노 쿠폰 아가씨로 홀로 남았다.
왠지 도태된 것 같은 기분에 우울증이 찾아왔고,
카지노 쿠폰 일에 더 깊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열정이었을까, 도피였을까.
아마도 무언가에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만나던 사람은 집에서 계속 반대했고, 숨이 막혔던 나는 무언가 내 인생이 미친 듯이 꼬인 것만 같았다.
카지노 쿠폰 점점 지쳐갔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점점 더 일에 집착했다.
그리고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려 나갔다.
아무도 내 곁에 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고, 단 하나의 오차도 내 삶에 용납하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레고마냥 삶을 꽉꽉 맞춰도 무엇인가 계속 채워지지 않았다.
어딘가 계속 비어 있었다.
십 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남자친구와도 결국에는 이별을 했다.
심지어 내가 먼저.
착한 사람이었고,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와 끝없는 줄다리기에 너무 지쳤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도 너무나 아까웠고,
나의 청춘과 그의 청춘, 이 모든 것들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을 놓았다.
그 당시의 카지노 쿠폰,
투란도트의 참수형을 내 손으로 직접 내리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땐 몰랐더라지.
누군가 어느 때가 오면 나의 진정한 입봉시기가 온다고 했는데, 나 또한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조연출생활을 거진 십여 년 거치고, 실제로 몇 작품을 연출했음에도,
카지노 쿠폰 아직 '내 것'이라는 감각이 없었다.
연출가로 본격 입봉하고 나니, 모든 게 달라졌다.
더 바빠졌고,
더 예민해졌고,
더 많은 일들이 쏟아졌다.
그렇게 워커홀릭의 접점에 다 달았을 때,
나의 차디찬 얼음벽을 뚫고 한 남자가 온기 가득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는
내가 예민하든, 바쁘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듯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미소로 나를 따뜻하게 바라봤다.
나는 그가 거기에 그렇게 있는지도 몰랐다.
사실 첫 만남은 그가 너무 귀찮아서,
욕이라도 시원하게 퍼부으려고 나갔다.
그런데...
그의 눈빛을 보고,
카지노 쿠폰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나 소망했던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 단단하고 따뜻한 눈빛.
나는 그렇게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그렇게 나의 안식처가 되어갔다.
하지만 연출가의 삶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내 삶은 더 바빠졌고, 더 차가워졌고,
그의 한결같은 따뜻함으로도
나를 다 녹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무대에서
카지노 쿠폰 점점 얼어가고 있었다.
“ 쿵-!! ”
한 대학교 오페라를 연출하던 시기,
교내 교수 기숙사에 머무르던 카지노 쿠폰 늦은 밤 갑자기 쓰러졌다.
홀로 정신을 잃고, 한참 동안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행히 겨우 깨어나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뇌진탕 진단을 받아 입원하였다.
회복이 절실했지만,
이미 약속된 작품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카지노 쿠폰 곧바로 복귀했다.
“ 쾅-!! ”
이번엔 신호 대기 중이던 어느 날,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트럭이 내 차를 들이받았고, 그 충격에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차의 뒷좌석이 사라졌고, 카지노 쿠폰 다시 입원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무대는 멈추지 않았고, 회의는 내 병실로 찾아왔다.
결국 카지노 쿠폰 또 조기 퇴원을 했고,
또다시 무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부터가 문제였을까.
풍요 속의 외로움이라고
정신없이 달리던 나날 속에서도,
어느 순간 몰려오는 막막한 고독.
양지가 많으면 음지도 많은 법.
도마 위의 채소처럼사람들 손에 이리저리 썰려가던 내 몸과 마음.
아니면, 그냥 너무 바빠서일까.
회복을 못하고 계속 달려서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그 당시 카지노 쿠폰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람때문에.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들 참 나쁘다.
카지노 쿠폰 점점 미소를 잃어갔고,
무슨 이유로 이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또 다른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끝에는 즐겁지 않았다.
행복하지 않았어.
숨이 막혀 도망가고 싶었거든.
목이 졸리는 기분이야.
그리고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짬을 내어 밀린 병원 진료를 받으러 다니던 날.
한 의사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큰 병원 가보셔야겠어요.”
그 길로 대학병원으로 달려갔고, 조직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듣고야 말았다.
“자궁경부암입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사이,과도한 스트레스가 내 몸을 무너뜨렸다.
정말 열심히 살았고,
누구에게도 해 끼친 적 없고, 성실하게 버텼다.
그런데 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면서 막 울었다.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나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초기라 괜찮습니다. 크게 전이되지만 않으면, 지켜보면 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직 미혼이시니, 건드리진 않겠습니다.
삼 년만 함께 지켜보죠.”
삼 년.
삼 년은 무슨.
삼 년 후는 나에겐 보이지도 않았다.
역시 내 인생에
칼라프의 손을 잡고 달려가 함께 두드릴 징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최악의 끝이 어디인지,
그저 그것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병원 문을 나서며
그저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물만 끝없이 흘렀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