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무라카미 카지노 게임의 작품들
일본 문화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팬이었다. 과거형이다.
카지노 게임의 팬들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잡문 등 에세이를 보면 그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카지노 게임라는 작가 개인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면 큰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의 작품에 대한 얘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세계는 현대적 상실감과 고독을 섬세하게 그려낸 특유의 감성과 스타일로 요약될 수 있다. 그의 초기작인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시작으로 최근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이르기까지 하루키는 줄곧 반복되는 특정 이미지와 주제를 변주하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는 그의 작품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폭넓은 독자층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1990년대 초반, 하루키는 한국 문단에 강렬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한국 소설은 정치적 억압에서 벗어나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하루키의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체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구조, 개인의 상실과 고독을 일상적이고 감각적인 묘사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당시 젊은 한국 작가들에게 일종의 '해방적 전범'으로 자리 잡았다. 하루키의 영향을 받은 한국 작가들은 문체의 세련미와 내면세계의 깊이를 갖춘 작품들을 쏟아내며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하루키 문학이 가진 매력과 별개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이콘과 모티프에 대한 비판 역시 피할 수 없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여성 인물은 대부분 수동적이며, 흔히 주인공의 구원자로만 존재한다. 이는 여성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성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축소시키는 문제를 낳는다.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부터 『해변의 카프카』의 사에키, 『1Q84』의 아오마메까지, 여성들은 반복적으로 남성 주인공의 내적 성장을 돕거나 치유하는 구원적 존재로 묘사된다. 이러한 여성상은 문학적으로 단조롭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하루키 작품의 재즈와 미국 문화에 대한 경도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작가는 미국 문화의 특정 부분을 자신의 작품에 빈번히 차용하면서 세계 문학적 보편성을 추구하지만, 이는 때로는 작품의 깊이와 독창성을 희석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재즈, 클래식 음악, 미국식 브랜드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집착은 작품마다 비슷한 톤을 만들어내어 독자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음악이나 음식, 특정 브랜드와 관련된 세부 묘사는 작품의 문학적 밀도를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상품 진열장을 연상케 하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하루키의 작품에는 또한 일각수(유니콘), 깊은 우물 같은 상징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처음 등장할 때 이러한 상징들은 신비롭고 매혹적이었지만, 여러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점차 상징적 신선함과 독창성을 잃어 진부함의 위험에 빠지고 있다. 최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도 이들 상징이 집대성되어 다시 등장해,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자신의 관습에 갇혀 새로운 문학적 실험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한다. 결국, 하루키 특유의 상징들이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점차 약화되고, 그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상징적 요소들이 오히려 창조적 한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카지노 게임의 문체는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작가 폴 오스터와 상당히 닮아 있다. 두 작가는 모두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 일상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사건의 교차, 우연성의 미학 등을 작품의 핵심으로 삼는다. 물론 카지노 게임가 의도적으로 오스터를 모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유사성이 두드러져 일부 독자들에게 작가의 개성이 흐려진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두 작가 모두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가며 인물들이 겪는 고독과 소외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뚜렷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이러한 문체적 유사성은 카지노 게임만의 독창성이 약화되었다는 비판을 더욱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키가 지닌 문학적 힘과 영향력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의 작품은 현대인의 내면적 고독과 상실감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으며, 일상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독특한 상상력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또한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마주하고 그것을 작품 속에서 탐구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앞으로의 하루키 작품들이 자기복제의 함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학적 실험과 창의성을 보여줄지, 아니면 계속해서 익숙한 틀 안에서 머무를지는 작가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독자들은 하루키가 더 이상 진부한 반복에 빠지지 않고 문학적 도약을 이루기를 기대하며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키가 자신만의 상징과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이루어내야만, 그의 문학은 앞으로도 세계적인 영향력과 보편성을 지닌 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하루키의 나이와 그 불확실한 벽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오사카에서의 발견과 만남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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