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선배님.
여러분 중에는 "빠따"라는 말을 모르시는 젊은 세대들이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 선임들에게 엎드려막대기로 엉덩이를 맞는 것을 말한다. 요즘은 군대생활이 많이 자유롭고 폭력이 금지되어 있지만 옛날엔후임들은 맞는 것이 일상이었다."빨리 맞아야 잘 텐데...."라는 말을했을 정도였다.
옛날은 불쌍했다. 때리는 선임도 그만큼 맞고 그 자리에 왔을 테니 말이다.
내가 대학원시절 외국 논문을찾아보니다른 나라들에서 하고 있는 연구들이보였다.
나도 그런 수준의 연구를 하고 싶었다. 우리 실험실선배들의 논문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시약도기구도구입할 수가 없었다. 파는 곳도 없고 돈도 없었다.
연구비가 부족한 교수님들이 잘 사주지 않았으니까....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외국 시약회사에 편지를썼다. 그 시절은 인터넷이 없었다. 이런 시약 구입하고 싶다고썼다.
그리고 교수님께 사달라고 매일 졸랐다 교수님이 "얼만데?" "얼마 안 해요.감사합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 시약이 김포세관으로 무료 카지노 게임고찾아가라고 연락이 왔다.
김포공항 뒤에 김포세관이 있었는데 넓디넓은 장소에 버스 같은 것이 없어서 걸어 걸어 찾아갔다.
어떤 문을 여니 조그만 방들이 쭉 나열되어 있는데 각 방 앞마다 사오십대 아저씨들이 한 명씩 앉아있었다. 세관통관업무 대리인들이었다.
내가 들어가자 환호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치마 입은 아가씨가 다 왔네~
우리가 하는 건데 직접 하려고,.... 여자가 웬일이야?어이, 아가씨!" 못 들은 척 해당 방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세무 공무원이 세금을 내라 했다.
돈도 없어 겨우 샀는데 무슨 세금을 내,...
"아니, 대학에서 연구용으로 쓰는 건데 이 나라는 그것도 세금 내요?"그랬더니 총장의 확인서를 받아오라 해서 나왔다. 또 뒤에서 아저씨들의 환호인지 야유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다.
내 나이 25이었다.왠지 속상하고 창피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비를 맞으며 걷는데 너무 처량한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내가 길을 터논 곳으로 후배들도 시약을 신청하고 실험들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군을 전역한 박사과정 선배가 왔다.
이 선배님이 자신의 시약 신청도 실험도 후배들을 다 시켰다. 본인은 바둑만 두다 5시면 퇴근했다.
난 다른 사무실에 있는데 후배가 오더니 하소연을 했다. "나도 4학기라 내 실험해야 졸업하는데 어떡하면 좋아, 언니?"
"못한다 그래!그리고 본인도 뭘 알아야 교수돼서 학생을 가르치지 뭘로 가르쳐! 대신할게 따로 있지!"
자연과학 쪽은 실험을 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있지 이론 만으로는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 지나자 내 사무실로 선배가 찾아왔다.
"군대였으면 내가 너 빠따 쳤다!"
해병대 출신이었다. 여긴 군대도 아니고.
후배가 내가 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일인데 왜 날 끌고 들어갔는지....
"엎드릴까요?"
"이걸 그냥!"
아직도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왜 자신이 날 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더 모른다.
이게 세대차이가 빚은 선후배개념의 동떨어짐인지, 아님 남녀의 선후배 개념차이인지 어떤 것인지 아직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니 그 선배는 교수가 되었고 그 대학의 요직을 맡았다.
세상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