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토시 하나에 담긴 것
두 가지 '-나'에 대하여
'-나'가 쓰이는 말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 조금 가벼운 '-나'
너나나나
여자나 남자나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나 자식이나
힘 있는 자나 힘없는 자나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개나 걸이나
모두 구별하지 말라고 외친다
아니,
구별이 차별로 이어지지 말기를 바라는 거겠지
# 조금 거슬리는 '-나'
가슴에 얹어 본다
맷돌의 무게다
머릿속에 굴려 본다
숨 막히는 막다른 골목이다
몇십 년 전, s대 미대입시를 본 작은오빠가 1장 반, 즉 3 바닥의 시험지에서 둘째 바닥이 인쇄 안 된 걸 받았었다. 오빠는 시험장 담당 교수에게 손을 들어 그 사실을 알렸으나 그는 간과했다. 와서 보고 확인하지 않은 채 둘째 장의 뒷면이인쇄되지 않은걸로 이해하고 다 그렇다고 성의 없게 답했고국어에 자신 있던 오빠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다 그렇다니까 긴가민가하며 반 쪽을 빈칸으로 냈으니 당연히 낙방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닌 집에서 미대를 보낸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으므로 국립을 선택했던 건데, 작은 오빠의 낙심은 심했으리라.
엄마는 궁리 끝에 단대 교수인 6촌 친척에게 찾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지 의논했건만 가재는 게 편이었다. 그 교수는 같은 교수가 잘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했고 젊은이의 일 년 세월을 유예시켰다. 이미 끝난 일을 문제시하지 말라는 말로. 애절했던 엄마는 어이없어하며 선처를 요구했지만, 지금처럼 SNS도 없던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당한 건 오빠였다. 오빠는 일 년을 고스란히 꿇어 재수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고 속 타는 엄마에게 뭘 그렇게 안달복달하냐며 정 안 되면 '농사나 짓게 하지'라고 했다. 그 말 한마디, 그 토시 하나 때문에 엄마는 격분해서다시는 그 육촌 오라버니를 카지노 게임취급 하지 않았고 그 뒤로만나지 않았다. 자기 자식 일이라면 그렇게 넘겼겠냐며. 40년이 훨씬 넘는 내게도 남아 있는 말인데 농사는 아직도 그토록 허룩하게 여겨지는 직업의 하나이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직업군에 속하는구나,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는데 나는 돌아 돌아 다시 농사를 선택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쓰는 카지노 게임 되기까지 5번 글 참조)
한 번은 내가 서울에 갔을 때 부산 사는 친한 친구 남동생이 친구와 나에게 밥을 사준 적이 있었다. 친구랑 남동생이 사준 밥을 얻어먹고 나서 그냥 호기심에 너는 귀농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동생으로부터'한 마디로 루저 아니냐?'는 답을 들었다. 약간 황당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아, 넌 그렇게 생각카지노 게임구나... 넘어갔다. 하기사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잘 나가는 유명인사이자 회사대표인 친구 남동생이 보는 관점은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업이라 언제나 자신을당당히'농부'라고 소개하고 스스로는 하늘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라 여기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런 생각이구나. 그래, 너와 나, 가치관의 거리는 거의 천문학적인 수준이려니 그리생각하고 말았다. 농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누구라도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농사나 지어라'의 농사나였다.
그 토시 '-나'는 송곳보다 날카로운 가시였다.
최근 나도 그 비슷한 말을 들었다.
제주에 감귤 농사짓는 잘 아는 친구 부부가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그 친구 남편 왈, '유상언니는 첼로나하고 글이나써야 카지노 게임데 그동안몇십 년 농사지으며 사느라 애썼다'는 말을 툭 던졌다. 순간, 마음이 푹 땅으로 꺼져 내렸다.
낮추어져 낮아진다.
바닥에 깔린 얇으레한 깔개처럼
아니, 종이장처럼 얇게 깔린다.
내가 카지노 게임 일이 너무 하찮게 여겨졌다. 그가 나를 아프게 할 의도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잘 안다. 다만 내가 이제야 정말 좋아카지노 게임 일을 찾아냈고 그동안 먹고 사느라 힘에 부치는 일을 하고 고생했다는 게 담겨 있다. 안쓰러워카지노 게임 마음으로 이제야 드디어 해방의 길로 들어섰구나 카지노 게임 격려의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말은 내 가슴 언저리에 남아 뻐근히 아파왔다. 글을 쓴다는 게 저린 일일 수가 있구나. 나도 무심히 일상을 즐기며 실컷 놀고 싶지만 시간을 비집어 만들고 굳이 엉덩이로 버티며 쓰고 또 쓰고 고치고 수없이 고치는 일을 하고 있건만... 그에겐 '글이나'였다. 내 안에 자격지심이 있어 이렇게 받아들이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 일하는 사람이 자기 목소리로 자기 언어를 갖고 표현해 살려내는 걸 누구에게라도 응원하는 마음이 있는 내겐 갑자기훅 나타난돌부리에 툭 차여 넘어지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가끔은 이런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리고 아프다.
나를 납작하게 카지노 게임 말에 짜부라지지 말자.
나는 나니까.
나로서 이미 충분하니까.
그는 내 마음을 알 리 없고 낱장으로 갈피마다 끼어 있는 아픔과 고단함, 억울함을 알 리 없다. 아프게 쑤셔 오던 그 말에 몇 날 며칠 머물렀다. 무얼 하는 사람이지? 무얼 하겠다고 식구들을 저버리고 온 거지? 식구들 말 마따다 노벨상을 탈 것도 아니면서. 그만한 사건들 살면서 겪지 않은 사람 몇이나 된다고 엄살떠는 거니?
혹시라도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겨우 그거나 하려고 그랬어? 이런 식의 말을 무심히 내뱉게 되는 건 아닌지, 나 역시 같은 가시로 누굴 찌르게 될까 봐 마음에서 거름망을 촘촘히 쳐 경계하게 된다. 그 어떤 일도 그 어떤 카지노 게임에게도 이런 토시를 쓰지 않기를... 내 혀를 내 마음이 제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꿋꿋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