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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소복복 Jan 25. 2025

카지노 쿠폰 자랑

왈가닥 소녀의 꿈 찾기 대장정 2

“언제까지 왈가닥 할래? 눈치 좀 챙겨라!!”

“그래서, 뭐가 하고 싶노? 뭐가 될래?”

마음에 담아 둔 꿈을 찾아 가는 길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는 나도 모르게 나를 찾아 가고 있었다.




한 반에 60~70명, 한 학년에 열 세반씩, 90년대 교실은 국민학교나 중학교나 비슷했다. 한 학년에 천 명 가까이 되는 카지노 쿠폰들 사이에서 나는 시끄러운 아이로 유명했다. 국민학교 땐 남자아이들이 놀리면 참지 못하고 주먹부터 나갔고, 복도를 누비는 여전사 같았다. 6학년 마무리될 즘 학생회에서 내 이야기가 나왔다. 너무 시끄럽다나? 하하하하하. 나는 당당하게 반박했다. 너네도 만만치 않다고 그래도 그렇게 이야기가 나왔으니 참고는 하겠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다른 반박이 있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조금 부끄러웠을 뿐인데 더 부끄러운 일이 이어졌다. 그 뒤론 이성에 눈을 떴는지 줄기차게 고백을 하고 다녔다나?? 동갑인 외사촌 언니의 증언이다. (한 달 차이지만 양반을 외치시던 외할아버지 덕분에 서열에 밀려 나는 한 달 차 동생으로 지금껏 외사촌에게 언니라 부른다.)




나의 시끌함 못지않게 국민학교 졸업을 앞두고 다들 어느 학교로 배정받을지 기대와 설렘, 걱정과 불안으로 시끌벅적했다. 다행히 친한 친구들과 생일이 한 달 차이 나는 외사촌 언니와 같은 학교로 배정받았다. 사실 내게 친한 친구라고 딱 정해진 친구는 없었다. 워~~~낙 왈가닥이고 누구에게나 가서 아는척하고, 언니가 말한 대로 난 '금.사.빠' 였다니까. 지금 생각하면 난 돌+ I 가 분명했다. 그 덕분에 나를 모르는 이 없고, 사촌 언니 덕분에 울 카지노 쿠폰도 나의 소식을 매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동네 토박이 카지노 쿠폰의 귀에 언니의 이야기만 들렸을 리가 만무하다. 우리 아파트에 누가 누가 사는지도 다 아는 울 카지노 쿠폰였기에 오죽하셨을까 싶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뭐라고 나무라시거나 혼내시질 않았다. 역시나 "뭐 저런 게 다있노? 가시나가 와 저래하노?" 포기였던 건가? 아무튼 난 유명하고도 유별난 왈가닥이었다.




중학교 1학년, 집 가까이 중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공립이든 사립이든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나는 뺑뺑이로 사립학교를 다녔고 다행히 스쿨버스를 운행했다. 나는 스쿨버스에서도 진심이었다. 스쿨버스 6대 중 한 대는 우리 집 앞을 첫 번째로 하여 동네 한 바퀴를 돌아 학생들을 태웠다. 우연히 1번으로 탄 스쿨버스에서 카지노 쿠폰들과 언니들 가방을 들어주며 인사도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며 나는 그 뒤로도 등하교 때마다 1번으로 스쿨버스를 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세수도 마다하고 가방을 둘러메고 집 앞 길 건너 전봇대로 향했다. 혹시나 깜빡하고 집에 두고 온 것이 있으면 뒤에 누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 자리야."라고 하며 가방을 내려두고 다시 집에 다녀오곤 했다. 차량 문이 열리는 쪽 맨 앞 창가자리는 언제나 내 자리. 버스가 출발하고 자리가 어느 정도 찰 때쯤이면 나는 열어 둔 창문으로 가방과 도시락을 받아 들고 내가 앉은자리 앞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그리고 하차할 때 하나둘씩 본인의 물건을 찾아주며 건네면 고맙단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언니들과 카지노 쿠폰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한 동네 카지노 쿠폰들이고 언니들이라 나를 귀여이, 유쾌하게 받아준 것은 아닐까?? 막 아무렇게나 생각해 본다. 하하하하하하하

매일 그 자리가 아닐 때도 있었지만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며 내가 앉곤 했다. 정말 열심히 그 자리를 사수했다. 그 자리와 창문은 나를 알리고 소통하는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름 유명했었던지라 버스를 타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기사님들과 인사하고 종종 등굣길에 얻어 타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의 왈가닥 유명세는 학년 전체에서도 뒤처지지 않았다. 그렇게 일찍 집을 나서는데 그날의 준비물, 교과서, 체육복 어느 하나 빠지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했지. 교과서가 없는 날은 옆 교실 가서 나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책을 빌려달라고 외쳤다. 또 없냐며 웃으며 빌려주곤 했다. 그리고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에게 가서 "나는 몇 반 누구인데 나 알지?" 하며 그 친구의 관심사를 묻곤 했다. 만화책, 연예인 그리고 무용 등등. 음악시간에는 늘 음이탈 유발자. 예쁜 음악선생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몬나이(못난이)~ 장난치치 마라~~" 예쁘게 웃는 얼굴로 혼을 내시면 그제야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우리 학교는 매년 합창대회를 했기 때문에 노래를 잘하면 중간중간 독창을 하거나 지휘를 하거나 했다. 역시나 음악과 거리가 멀었지만 앞장서는데 진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용시간도 나는 나를 드러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미 무용부는 포화 상태였기에 선생님 눈에 못난이로 변한 내가 눈에 띌 리 없었다. 영어시간도 마찬가지. 우리 동네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전교 1.2 등 친구들. 전교 1등 친구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지만 카지노 쿠폰들끼리 잘 알아서 카지노 쿠폰에게 노하우 아닌 노하우를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나에게 의미가 없었겠냐마는 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 입학 하기 전부터 전교 2등 친구와는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룹 과외를 했다. 그런데 웬걸 영어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1학기는 영어를 백점 받았다. 왈가닥 소녀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얻고 영어 말하기 대회까지 신청했다. 카지노 쿠폰도 과외선생님도 기암 하셨지 싶다. 짧은 글쓰기로 말하기 대회를 나갔는데 역시나 구연동화에, 둘이서 연극을 하는 선배들까지 잘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렇게까지 잘하는 지도 몰랐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었으려나 싶지만 그 당시 나로서는 자부심 넘치는 아이였다. 이렇게 카지노 쿠폰 자랑은 말도 안 되는 것만 골라서 하는 세상 무서운 것이 없는 또 하나, 사춘기도 없었던 중학교 2학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나와 이름이 똑같은 카지노 쿠폰가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 그래서 2학년 10반에 같은 이름이 3명이나 되었다. 박 씨, 서 씨 그리고 전학 온 이 씨. 전학 온 카지노 쿠폰는 개성이 강하면서도 예뻤다. 게다가 공부도 잘했다. 예쁜 아이를 좀 논다는 카지노 쿠폰들이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나도 의도치 않게 그 카지노 쿠폰를 건드리게 되었다. 어떤 운명이었을까?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점수가 차례대로 나오면서 전학 온 카지노 쿠폰는 단짝과 점수를 맞추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들은 서 씨 카지노 쿠폰가 나에게 와서 "쟤들 커닝했대, 그래서 점수가 같다더라!" 하며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전교 2등인 카지노 쿠폰와 스쿨버스 타러 가는 길에 계단에서 나는 난간 미끄럼틀을 타며 서 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랬더니 전교 2등 카지노 쿠폰가 "야~! 아니야. 그리고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몬난아~" 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고 하며 그 뒤로는 그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복도에서 내뱉은 이야기는 어느새 전학 온 카지노 쿠폰의 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복도로 나를 불러 세웠다. "너~!! 네가 봤어? 왜 거짓말을 하고 다녀?" 앙칼지게 서울말로 나에게 쏘아붙였다. 나는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얘기하며 서 씨에게 들은 말이라고 또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서 씨도 불려 나왔다. 그런데 거기서 서 씨가 자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딱!! 잡아떼고 있었다. 그러고 서 씨는 교실로 들어갔다. 이렇게 어이없을 수가. 보다 못한 전교 2등 카지노 쿠폰가 나왔다. "내가 이 못난이 잘 아는데 그럴 애 아니니까 믿어도 된다~ 그리고 네가 아니라는데 누가 뭐라하겠노!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나는 카지노 쿠폰의 보호아래 있었던 어리숙한 청소년이었다. 전학 온 카지노 쿠폰도 어느 정도 수긍하고 나에 대한 오해도 접은(?) 듯 넘어갔다. 예쁜 전학생과 나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카지노 쿠폰 자랑이 되기까지 나의 시작은 바로 예쁜 전학생 이 씨 친구이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예쁜 전학생을 지켜내기 위해 학교 선생님들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공부도 잘하고 예쁜데 놀기도 잘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잠시 했다던 발레를 계속 배울 수 있게 무용부에 들어가도록 권하셨다. 무용부 선생님 또한 학교 생활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그 친구에게 손을 내미셨고 이 순간 굳게 닫혀있던 무용부 문이 열렸던 것이다. 같은 반이었기에 나도 함께 입성할 수 있었다. 카지노 쿠폰에게 물어보니 카지노 쿠폰가 상담 때마다 담임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었다고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카지노 쿠폰의 노력이 뒤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1995.11.6 나는 무용부에서 첫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앉아 몸을 푸는 친구들 사이에서 단발머리 못난이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국민학교 6학년 말부터 이때까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개나 소나 무용 다 하네", "저렇게 구부정해서 무슨 발레를 한다고." "못생긴 게"... 친구들의 독한 말이 비수로 마음에 꽂혔지만 나는 다 감내할 수 있었다. 슬픔과 행복이 함깨 했다. 낮잠에도 욕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카지노 쿠폰의 걱정이 늘었지만 무용실에서 배우는한국무용도 발레도 현대무용도 하나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이 가득 넘쳤다. 여전히 왈가닥에 아무 생각 없는 나를 함께 한 예쁜 전학생이 챙겼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예쁜 전학생은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무용실에서 나를 살리고 있었다. 설움과 못난이를 딛고 나는 첫 콩쿠르를 나갔다. 생전 처음 무용 콩쿠르를 보게 된 우리 카지노 쿠폰. 나의 짙은 화장을 보고 겁에 질린 남동생은 나의 첫 무대를 보고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콩쿠르장에는 오지 않았다. 첫 무대의 긴장감이라고는 없이 관객석을 향해 나를 봐다라 애절한 눈빛 발사하며 작품을 마치고 내려왔다. 카지노 쿠폰는 울고 있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카지노 쿠폰가 사시나무 떨 듯이 떠셨다고 한다. 나의 모든 긴장을 카지노 쿠폰가 가져갔나 보다. 중학교 3학년을 보내는 동안 많은 콩쿠르를 다니면서 나는 한 번도 떨지 않았다. 그렇게 입시 직전 세종대 콩쿠르에서 나만 입상을 했다. 다들 놀라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예쁜 전학생 친구도 없이 나는 덩그러니 혼자 1년을 버텨냈다.





학교, 집, 학교, 집 나의 일과였다. 공연을 보러 가야 할 때면 집에서 1시간 넘게 걸리는 곳까지 버스를 탔다. 공연이 끝나면 저녁 8~9시, 집에 오면 11시 가까이 되기도 했는데 처음 공연 보고 온날도 잊히지 않는다. 카지노 쿠폰는 울며 불며 편지를 써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덤덤히 앞으로는 걱정 마시라 말했지만 편지를 읽고 나도 흠뻑 울었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나의 마음이 더욱 단단해졌으리라!!


입시 준비로 분주할 때에도 카지노 쿠폰는 학교에 한 번 오질 않았다. 혼자서도 잘 해내는 딸이었기에 또 그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싫으셨다고 한다. 나는 예고에 덜컥 붙었다. 함께했던 친구들이 떨어져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가서도 학원을 다니지 않고 나는 중학교 무용부를 들락거리며 나를 갈고닦았다. 후배들을 봐주고 서울에서 워크숍이라도 다녀온 다음은 레슨도 해줬다. 그렇게 사랑하는 선배에게 작품도 받고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며 나는 서울로 대학 진학을 했다. 중3 마지막 콩쿠르이었던 곳으로...


무용부 카지노 쿠폰들 모임에서도 카지노 쿠폰친구들 사이에서도 아파트에서도 친척들도 난리가 났었다. 그 황당하게 큰 왈가닥 못난이가 서울로 대학을 갔다고. 아줌마들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춤을 추라고 하면 춤을 출 정도 스스럼 없었다.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겐 즐거움이었고 진심이었기에 나는 내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나는 왈가닥에서 성격 좋은 딸내미로, 서울 간 딸내미로, 카지노 쿠폰 자랑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나는 카지노 쿠폰 자랑이다. 카지노 쿠폰의 홈쇼핑도 , 카지노 쿠폰의 하소연도 마다하지 않고, 카지노 쿠폰의 잔소리도 달콤하게 듣는 딸. 시집가서 아들, 딸 셋이나 낳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딸.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열정 가득한 딸. 카지노 쿠폰 눈에 날씬하고 예쁜 딸로 늘 자랑거리이다. 앞으로 남겨진 나의 꿈들이 많다. 어떻게 카지노 쿠폰 자랑이 되려는지 모르지만 나는 즐겁게 하루하루를 진심을 다해 보내려고 한다. 나의 꿈을 찾는 즐거움이 카지노 쿠폰의 즐거움으로 자랑으로 건강으로 행복으로 자리하길 바라며 글은 마무리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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