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뵤뵤리나 작가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
결혼 날짜를 잡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설날 아침이었다. 친정에서 치르는 마지막 차례라고 생각하니 별스럽지 않던 명절날 풍경이 유난히 낯설다. 예비 신랑의 손을 잡고 시부모님을 만나 뵈러 가는 길,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 든다. 주방에서 후다닥 달려 나온 카지노 게임는 나를 잡아끌어다 식탁에 마주 앉혔다. 테이블 위에는 아직도 못다 치운 제기와 차례 음식들이 어지러이 놓인 채로.
“가면 인사 잘 드리고, 일 빠릿빠릿하게 도와드리고, 안 시켜도 눈치껏 설거지도 하고 그래야 한다. 알겠제?”
“우리 시댁으로 바로 안 가요. 다 같이 해운대에 카페 가기로 했어.”
“차례는? 거기도 차례는 지낼 거 아니가.”
“성당 다니시잖아. 위령미사로 차례 지내신대.”
“맞나? 진짜로? 성당은 차례 안 지내나? 그렇게도 하드나?”
천주교 신자들도 제사를 지내지만, 시부모님은 객지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을 생각해 미사로 대신한다고 하셨다. 상견례 때도 분명 오고 갔던 얘기인데 깜빡하신 건지, 아니면 카지노 게임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건지. 대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물어보시는지 모르겠다. 아, 잠깐만.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지금 우나? 왜 우는데?
“에휴, 눈물이 와이래 나오노. 주책맞구로.”
훤히 열어젖힌 거실 창문 너머로 마당을 서성이는 예비 사위의 뒤통수를 흘끔거리던 카지노 게임는 황급히 눈가를 닦는다. 내 손을 꼭 부여잡은 카지노 게임의 손은 엊그제부터 이어진 명절 음식 준비로 물 마를 새가 없던 걸까, 눈물을 훔쳐서일까. 쪼글쪼글 물기를 잔뜩 머금었다. 갑작스러운 눈물 바람에 당혹스러웠던 찰나에도 축축하던 카지노 게임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그대로였다.
“니는 진짜, 진짜로 복 받았데이. 카지노 게임가 니 지낼 거까지 다 지내서 그런가 보다. 내 같은 고생 안 해서 천만다행이다.”
시부모님께 무조건 잘해드려라를 반복하며 딸의 머리부터 어깨, 팔을 연신 쓰다듬고 주무르시던 카지노 게임.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고 뭐라 정의할 수 없는 표정에서 안도감, 기쁨, 부러움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이 느껴진다. 그날 붉어진 눈시울로 함박웃음을 지으시던 카지노 게임의 얼굴은 앨범에 곱게 끼워둔 사진처럼 생생한 장면으로 남았다. 30여 년을 당연한 듯이 지내왔던 제사가 그동안 얼마나 카지노 게임를 옥죄인 굴레였던가 새삼 몰랐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날 불쑥 비져나온 카지노 게임의 눈물은 호락호락하지 않던 시집살이의 증명이었다.
무려 1년에 10번이다. 정작 제사를 지내야 할 종가는 가족들이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면서 제사 면죄부를 받았다. 덕분에 종부도 아닌 카지노 게임는 그 노무 이 씨 가문의 강복을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연 10회의 제사 노동을 끌어안게 된다. 합병증으로 거동 못 하는 시아버지를 임종 직전까지 모시는 것도, 6남매 장남의 아내인 그녀의 몫이었다. 조금만 덜 동그랗고, 조금만 덜 복스럽게 생기시지. 그랬더라면 할아버지한테 맏며느리감으로 콱 눈도장 찍히지 않았을 텐데. 할아버지는 이 모든 사달을 버텨줄 쇠심줄 같은 인내심을 카지노 게임의 관상으로 미리 점쳐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배다른 시동생들 학교 도시락 싸랴, 의붓시어머니 등쌀에 눈치 보랴 마음이 부대끼던 시집살이었다. 사무실에서 주판과 타자기를 두드리던 아가씨에게 국자와 주걱을 쥐어 줬으니, 어둑어둑한 새벽 부뚜막에서 연탄 곤로를 앞에 두고 느꼈을 막막함이란 어땠을까. 적은 생활비로 빠듯하게 차려야 하는 대식구들 밥상 고민이 얼마큼 치열했는지, 어렸던 내가 이해할 리는 없다. 다만 연지 곤지 같은 붉은 바탕에 금빛 봉황이 수 놓인 카지노 게임의 가계부를 들춰 보면 어렴풋이 눈치는 챌 수 있었다. 힘주어 쓴 볼펜의 잉크가 번져서 깜지가 되어버린 페이지에는, 그 당시 밥상 단골 메뉴였던 밑반찬들이 빼곡히 적혔으니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우리 집 책장 가운데에 20년 가까이 꽂혀있었다. 나의 부모님을 두고 하는 말일까. 아빠는 이따금 카지노 게임를 보고 이기적이라고 했다. 아빠의 기준에서 카지노 게임가 ‘현모양처’답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 말은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바로 남편과, 시댁, 자식이 그녀의 선택에서 우선순위가 아닐 때였다.
아이를 낳았다. 모유 수유 대신 분유를 먹이고, 외할머니께 나를 맡기고 일하러 나갔다. 첫 번째 이기적인 카지노 게임가 되는 순간이었다. 둘째를 임신했다. 남편은 육아에 전념하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어쩔 수 없이 앞날이 창창하던 직장을 그만뒀다. 수입이 반 토막이 났지만, 생활비를 따박따박 받는 날은 드물었다. 만삭일 때, 그토록 당기던 짜장면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서럽게 울었다. 첫째에 비해 발달이 느린 둘째를 볼 때마다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걸 못 먹고 굶주렸던 게 자꾸만 떠올라 미안했다.
아빠의 이기심 타령이 계속 되었다. 고3 수험생 딸이 있는데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유다. 카지노 게임가 공부하는 시간은 단지, 모두가 잠든 새벽과 식구들이 집을 비운 뒤 가사 노동을 내려놓는 짬짬이었을 뿐인데도. 장녀의 실망스러운 수능성적을 두고 수험생 뒷바라지를 잘못했다며 비난하는 남편의 고성이 연일 이어졌다. 그녀가 지지 않고 악다구니로 소리 지르던 때, 첫째 아이는 불화의 근원이 돼버린 자신을 탓하며 방구석에서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다.
옥희 씨의 꿈은 처음부터 아빠의 아내도 아니었고,
할아버지의 맏며느리도 아니었다.
모성과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옥희 씨도 내내 자유로울 순 없었다. 옥희 씨의 딸인 나도, 카지노 게임가 되어보니 알겠다. 카지노 게임는 결코 이기적인 게 아니라 온전한 자신을 지키고 싶으셨다는 걸. 내키지 않아도 해내야만 하는 의무들 열댓 가지 중에, 단 하나쯤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숨통이 트일 테니까. 아내와 며느리 외에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픈 삶이 있을 테니까.
그녀도 한때 인정받는 중견기업의 경리였다. 본사에서 전국 지점의 경리들을 모아 주산대회를 열었단다. 그중 2등으로 뽑혀서 서울 여행을 공짜로 다녀온 추억을 회상하며 은은한 미소를 짓던 카지노 게임. 꿈같은 옛 영광을 되살릴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매일 한 발짝씩, 새롭게 나아가고 싶었다. 아침상을 물리면 신문을 스크랩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노란 형광펜으로 표시해 둔 신문 조각을 꼬깃꼬깃 가방에 넣고서 자식들이 등교하고 없는 시간에 강연을 듣고,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며 지적 허기를 채웠다. 남편의 무시와 어깃장이 무색하게 보란 듯이 자격증을 2년 만에 땄고, 경제적 독립도 일궈냈다. 그 이후로 아빠에게서 '이기적'이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옥희 씨는 적어도 자식들에게 이기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카지노 게임가 된 우리 자매에게 그녀가 롤모델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수다쟁이 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고, 언제 어느 때고 우리 입장에서 공감해 주었다. 분명 가슴 치도록 속상하게 한 적이 있었는데도 잘한 거, 기쁘게 한 거밖에 기억이 안 난다는 카지노 게임. 알아서 잘 커준 덕분에 힘든 세월을 흔들림 없이 버틸 수 있었다던 카지노 게임. 그녀의 강인함 속에서 우리도 불안정한 유년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털어내고 긍정의 씨앗을 품은 어른이 되었다.
카지노 게임,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아빠랑 결혼할거야?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아빠랑 결혼할 거다. 아니면 너희를 못 만나잖아. 너희 없는 삶은 상상도 몬한다.”
어릴 적 안방 장롱에서 발견한 상자 속에는 미용사, 칵테일 전문가, 한식조리사, 양식조리사. 꿈 많던 그녀가 지나온 20대의 훈장 같던 자격증들이 누렇게 세월을 좀먹고 있었다. 빛바랜 앨범에서 발견한 아가씨 적 카지노 게임의 사진 속에는 설악산을 배경으로 봄꽃처럼 만개한 청춘이 있었고, 싱그러운 미소에 그늘은 없었다.
이제 그 미소를 되찾아 주고 싶다. 옥희 씨를 카지노 게임와 아내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다.
카지노 게임, 이제 아빠랑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져.
진짜 괜찮나? 너희가 시댁에 면목 없으면 우짜노?
면목없을 게 뭐있어. 내 인생 이제라도 되찾겠다는데, 엄청 멋진 일이지.
남들 보기 좋으라고 여생도 아빠한테 맞추고 살 거야?
한 번뿐인 인생인데이제 카지노 게임 이름 석자로 날개 펴고 살아요.
더 이상 아내도, 며느리도 아닌, 그냥 카지노 게임 자신으로.
우리도 걱정 안 끼치고 잘 살게.
그동안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사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사랑해요.
존경해요.
카지노 게임.
※대문사진 출처: Image by DAE YEON KIM from Pixabay
뵤뵤리나 작가의 브런치 스토리도 방문해 보세요!
아무튼, 카지노 게임 1 브런치북
밀리의 서재에서도 아무튼, 카지노 게임2가 연재중입니다. : )
https://millie.page.link/Nyp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