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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이 있는 삶 Apr 21. 2025

보이지 않는 손

총선 캠프 파견 첫 날부터

쉽지 않은 출근 길이 시작됐다.


스마트 폰이 막 보급되던 시대라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찾는 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차량용 네비게이션은 보편화 됐지만,

실제 휴대폰 지도 어플리케이션은 활성화가 되기 전 시절이다.


네이버에 주소를 검색해 지도에 뜬 나의 위치를 기반으로

길을 찾아 다니던 시절이었다.


과거 아버지와 지방을 내려갈 때면 조수석에 타서

두꺼운 지도책을 보면서 길을 설명하던 때가 생각났다.


겉 옷이 없으면 쌀쌀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겨울의 끝물에 더위를 느끼며 길을 헤매다 지각 직전에 사무실을 찾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선거 사무실을 상상했으나,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20평도 안 되는 사무실에

십 여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후보실이라고 분리된 공간에는

책상 하나와 등유 난로 한 개가 전부였다.


"이런 곳에서 국회의원을 시작하는구나.."


혼자 사무실을 몇번이나 둘러 보았다.


역시 사무실에서 나는 막내였다.

그나마 젊은 여성 한 분이 나와 나이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30대 초반이었다.


다들 나를 이방인이자,

객식구 정도로 경계하는 눈치였다.


선거판이 그렇다.

사람이 정말 너무 필요한 것 같고,

일손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막상 충원을 받으면 경계와 의심이 상존하게 된다.


혹시라도 새롭게 충원한 인원이 경쟁자가 보낸

간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실제 잘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정치 인생이 달려 있기에,

정치인들은 항상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버릇이 있다.


마치 생존에 대한 갈증이자 갈망이라고 볼 수 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보좌관이 나를 부른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무슨 일을 할 수 있지요?"


마치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안 하는 눈치였다.


"시켜만 주시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축사 하나를 써보지요"


그 보좌관은 지역 축제 초대장을 건네며,

이 행사와 어울리는 축사를 써보라고 했다.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인들은 지역 행사를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인물들 대부분이 유권자이기에,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물론 주최자가 어디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고려해 참석 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지역 유권자가 최소 30~50명 이상이 되는지,

참석 규모를 가장 먼저 살펴본다.


나는 형광등이 거의 꺼져가는 책상도 없는

어두운 구석 자리를 배치 받았다.


사무실 비품을 쌓아 놓은 먼지가 수북한

티테이블을 책상으로 쓰라고했다.


참으로 열악했고,

노트북도 주지 않았다.


이면지에 볼펜으로 축사를 썼다.


사실 기존에 근무했던 의원실에서

축사를 써본 적이 전혀 없었다.


국회의원의 축사는 사실 공장에서 찍어 내듯이

대부분 비슷하게 생성된다.


형식적인 틀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도입부에는 자신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날씨를 포함한 그날 상황에 따라 인사말을 작성한다.


본론에는 행사 취지와 주요 이슈를 넣고,

마지막에는 흥행 기원 문구를 작성한다.


축사도 공직선거법에 따라 사전 선거운동 여부가

저촉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상당히 조심히 작성해야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틀과 법적 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마치 고등학교 시절 사생대회 수준으로 작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좌관을 찾아가 작성한 축사를 내밀었다.


왜 손으로 작성했냐고 묻는다.

노트북이나 컴퓨터가 없어서 손으로 썼다고했다.


한참을 웃던 보좌관은 축사를 몇초 읽어 보더니,

잘 알겠다고 돌아가서 앉아 있으라고했다.


분명 낙제점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그 날 이후로 보좌관은 나의 어떤 점을 좋게 봤는지

선거와 관련된 많은 일들을 가르쳐 주고 과업을 지시했다.


어려웠고 생소했다.

그래도 무척 즐거웠다.


사실 내가 파견 나간 선거 사무실은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

후보가 공천만 받으면 사실상 당선은 확정이었다.


사무실 내부에서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 결과가 언제 나올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래서 그나마 내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후보가 큰 소리를 냈고,

보좌관과 비서관들이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사무실 밖에서 보좌관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욕설을 섞어 가면서 큰 소리로 통화를 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비서관은 TV를 봐야 한다고 다급하게 외쳤다.

다들 YTN 뉴스 속보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요즘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 결과를 뉴스 뿐만 아니라해당 정당의 유튜브나 각종 sns를 통해 발표하지만,

당시에는 소식을 들을 있는 채널이 뉴스 밖에 없었다.


"OO당 2차 온라인 카지노 게임 결과 발표"라는

제목 아래 YTN 뉴스 속보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최악을 결과가 나왔다.

내가 파견 나간 사무실의 후보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이상했다.

공천을 받은 사람은 해당 지역에 공천을 신청하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당에서는 전략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전략 공천이란 기존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신청한 인물보다

실제 선거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공천을 주는 것을 뜻한다.


사실 전략 공천은 해당 지역에 공천을 신청한 사람이

아무도 없거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신청한 후보군들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에만 성립한다.


그러나 당시 공천을 신청했던 사람은 현직 비례대표 현직 국회의원이었으며,

공천을 받기 위해 수년간 해당 지역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다들 공천과 조금이라도 관계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사무실 곳곳에서는 우는 사람까지 속출했다.


모두 온라인 카지노 게임 과정과 그 배경을 찾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결국 늦은 저녁까지 아무도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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