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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나라 Feb 25. 2025

멀고도 먼 카지노 게임 - 우째 이런 일이?

카지노 게임의 계곡에 신들은 떠나고

이른 아침 택시를 타고 가겠다는 우리를 조르조는 굳이 자기 차로 버스 정거장까지 태워준다. 미안하기도 하고 정말 고맙다. 우리는 시칠리아식 허그로 석별의 정을 나누고 카지노 게임행 버스를 타기 위해 매표소로 간다. 그런데 헐! 오늘 카지노 게임행 버스는 없단다. 아니, 어제 분명히 시간표를 확인했는데. 직원이 말하기를 카지노 게임행 버스는 월요일, 토요일 단 2회만 운행한단다. 세상에 이런 낭패가 또 있을까? 조르조는 벌써 돌아가 버리고 꼭두새벽에 맥을 놓고 멍하니 서 있는데 마침 버스 1대가 들어온다. 카타니아행이라고 쓰여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일단 타고 본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2시간 만에 카타니아에 도착한다. 에트나도 보이고 사흘이나 있던 곳이라 낯설지가 않다. 카타니아는 큰 도시라 다행히도 아그레젠토 가는 버스가 9시 30분에 있지만 3시간은 더 가야 한다. 모디카에서 바로 갔으면 3시간 거리인데 5~6시간이나 걸리는 셈이다. 할 수 없지. 여기는 시칠리아이니까!


카지노 게임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익살스러운 시골 풍경


카지노 게임제주도와비슷한농촌의 돌담들


SAIS 사라고 적힌 버스는 시골 버스답지 않게 커다란 2층버스이다. 승객은 겨우 반쯤 될까? 우리는 편하게 자리하고 시칠리아 내륙을 가로지르며 시골 구석구석을 제대로 구경한다. 3시간여 만에 버스는 카지노 게임 정류장에 도착한다. 멀고 먼 여행이다. 모디카에서 6시간 30분 만에 온 셈이다. 정류장은 도심 가운데 있고 주위는 제법 붐빈다. 아내와 함께 짐을 챙겨 내려 숙소로 향하려는 순간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항상 몸에서 떼지 않고 메고 다니던 크로스 백이 없지 않은가? 순간 정신이 멍해진다. 그 속에 지갑, 여권, 카드, 카메라, 여행 수첩 등 이번 여행의 모든 것이다 들어 있는데. 아무리 둘러보고 뒤져봐도 없다.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다. 아내는 옆에서 방방 뛰고 있다. 우째 이런 일이 또? 로마에서 카메라를 잃어 먹더니 이번엔 손가방을 잃어버리다니 하며!


그동안 희희낙락하던 여행 분위기에 찬물을 끼 얻는 순간이다. 시칠리아 여행 전부가 몽땅 날아가 버린 기분이다. 앞으로 무슨 기분으로 여행하나? 여권과 카드는? 또 사진들은? 보따리 싸서 귀국해야 하나? 머리가 왕창 복잡해진다. 돌아보니 버스는 이미 떠나고 없다. 정류장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타고 온 SAIS 버스 사무실이 보인다. 내가 아는 이탈리아 말을 총동원하여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하니 버스는 시외에 있는 차고로 갔단다. 전화를 좀 해달라니 전화로 지금 연락할 수 없다며 그 대신 차고지 주소를 적어준다. 아내를 버스 사무실에 남겨둔 채 급히 나와서 택시를 잡으려니 주위에 택시라곤 그림자도 안 보인다. 발을 동동 굴리는 나를 보고 같이 버스를 타고 왔던 영국 여자가 안 됐다는 듯 '단념해요(Forget it). 여기는 시칠리아예요.'라고 한마디 한다. 단념하라니? 누구 약 올리나.


그러기를 10여 분, 갑자기 내 앞에 다 낡아빠진 승용차가 한 대가 선다. 아까 버스를 내릴 때 택시! 택시! 하고 호객하던 자가용 영업차다. 지금 이 판에 택시, 자가용 영업차 가릴 땐가? 아무리 급해도 흥정부터 한다. 왕복 15유로에. 운전기사한테 Presto! Presto!(빨리, 빨리)를 여러 번 외친다. 내 나이 또래의 이 영감 운전기사는 다행히 영어를 몇 마디 한다.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하기야 영어 한마디도 모르면 고물 자가용차로 어떻게 밥 먹고 살겠는가? 현지인이 탈 것도 아니고. 차는 계속 신호에 걸리고 밀리기조차 한다. 벌써 버스에서 내린 지 30분은 족히 지났다. 차고까지 30분은 더 가야 한단다.


낡은 차는 우리가 보러 온 카지노 게임의 계곡을 지나 한적한 시골길로 한참을 더 간다. 드디어 택시(?)는 대형버스가 몇 대 서 있는 버스 차고 앞에 선다. 급히 내려 둘러보니 우리가 타고 왔던 2층 버스가 보인다. 허겁지겁 사무실로 뛰어들어가니 우리를 태워 온 멋쟁이 키다리 버스 기사가 다른 사람들과 잡담을 하고 있다. 내 표정을 보더니 물어보지도 않고 버스에 가보란다. 문은 열려 있다. 급히 텅 빈 버스에 뛰어오른다. 가슴이 두근두근, 숨이 막힌다. 과연 내 크로스 백이 그대로 있을까? 사라졌을까?



십년감수, 이런 말을 이런 때 쓰는 건가? 손가방은 내가 앉았던 좌석에 고스란히 그대로 있다. 지갑도 여권도 카메라도 다. 버스 안에서 나 혼자 온갖 환호성을 다 질러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보다 더 큰 목소리로. 시칠리아가 우리를 배반하지 않은 것 같아 무엇보다 감사하다. 만일 가방이 사라졌다면? 그동안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과 호의, 좋았던 인상들은 순식간에 지워지고 우리는 얼마나 시칠리아를 미워하며 떠나게 됐을까?


가방을 목에 걸고 개선장군처럼(?)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자 아내는 그제야 안도하며 얼굴의 굳은 표정이 풀린다. 아내의 엄중한 훈계(?)가 뒤따랐지만 그 정도야 감수해야지. 카지노 게임(Agrigento)는 사실 시칠리아의 간판 이미지이다. 시칠리아 관광지 책자의 표지를 항상 장식하는 꼭 봐야 할 곳(Must See)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민박집에 짐을 던져만 놓고 신전의 계곡을 찾아 나선다. 버스 속에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아내와 나는 한동안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참지 못한다. 가방을 못 찾았다면 지금의 기분이 어땠을까? 너무 짜릿하면서도 아찔하고 행복하다. 지금부터는 완전 보너스 여행 기분이다.




카지노 게임카지노 게임의 계곡 전경(사진 출처: Valle dei Templi 홈페이지)

카지노 게임의 계곡은 시내에서 멀지 않다. 버스로 10분쯤 가니 나지막한 언덕 사이로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카지노 게임 광장(Piazza dei Tempi)에 내리니 노천카페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주변에는 기념품 가게와 노점들이 빼곡하다. 카지노 게임의 계곡은 차도를 가운데 두고 동과 서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는 길 위 능선에 자리한 동쪽 카지노 게임으로 먼저 향한다. 매표소를 지나 말만 계곡인 완만한 구릉의 능선을 따라 오르니 벌써 저 멀리 카지노 게임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헤라 카지노 게임


가장 높은 지대에 헤라(Hera) 신전이 자리한다. 신성한 결혼과 출산을 관장하는 헤라 여신에게 바쳐진 이 신전은 절반 정도 잔해만 남아 있다. 하지만 잔해만으로도 우아하고 아름다웠을 자태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언덕 아래로는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신전 주위에는 올리브나무, 아몬드나무, 선인장들이 풍성하게 심겨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헤라 카지노 게임을 한층 돋보이게 하며 아득한 신전의 세월을 상기시키고 있다. 2,500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 우리가 그리스 신전에 혹하는 이유가 이런 것일까?


콘코르디아 카지노 게임


능선의 한가운데에는 거의 완전한 모습의 콘코르디아 카지노 게임이 자리하고 있다. 시골 농사꾼의 장딴지만큼이나 굵고 튼튼해 보이는 기둥이 붉은 대지 위에 굳건히 신전을 받치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5월의 태양을 향해 강렬하게 뿜어내는 황토 빛깔의 콘코르디아 카지노 게임은 그아우라와 위용이 대단하다. 전쟁과 지진, 그리고 종교를 내세운 인간의 악의적인 파괴 행위 속에서도 2,500년이란 세월을 이렇게 잘도 견디다니 정말 놀랍고 고맙다. 같은 그리스 사람들이 만들었지만, 시칠리아의 그리스 신전은 그리스식이 아닌 시칠리아식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하얀 대리석 석주가 풍기는 인상만큼이나 고상하고 품위 있어 보인다. 그 속에는 그리스인들의 차가운 듯한 이성적 감성이 묻어 있다. 하지만 시칠리아의 그리스 신전은 소재와 색깔부터가 다르다. 매끈하게 다듬고 간 대리석 기둥이 아니고 별다른 장식 없이 투박하면서 거칠게 깎아 만든 황토색 응회암 돌이다. 마치 황토를 손으로 빚어 말린 듯한 형색이다. 그래서 더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정감을 자아낸다. 시칠리아가 화산섬이니 당연히 대리석이 아닌 응회암을 사용했다. 그러나 색깔까지도 황토색인 이유는 돌 속에 철분 성분이 많아 산화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란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 했던가? 황량하고 척박한 시칠리아의 자연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조화이다.


헤라클레스 카지노 게임


아직 5월이지만 오후의 햇살은 마냥 뜨겁기만 하다. 그늘도 없는 길을 오르내리기가 꽤 힘들다. 다행히 중간에 간이 휴게소가 있어 젤라토 하나씩을 사 들고 벤치에서 잠시 땀을 식힌다. 내려오는 길의 헤라클레스 카지노 게임 역시 아쉽게도 기둥만 8개 달랑 남아 있다. 하지만 부서지고 남은 아름드리 큰 기둥이 오히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헤라클레스가 이 육중한 기둥을 들어 올리기는 식은 죽 먹기였겠지? 삼손도 이 정도는 쉽게 했는데. 기둥들을 다 빼서 엿 사 먹었나? 왜 이것만 남았지?


제우스 카지노 게임


그리고 길을 다시 건너 서쪽에 위치한 제우스 카지노 게임으로 향한다. 제우스라는 이름답게 신전의 계곡 중 규모가 가장 컸다는 이 신전은 전쟁과 지진 등으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다 무너져 돌덩어리만 무성히 흐트러져 있다. 괴테는 이를 두고 '거인의 해골 덩어리 같은 돌무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무너진 신전 주위에는 진짜 거인 하나가 누워 있다. 신전 측면 기둥 사이를 장식하고 서 있었다는 7.75m의 텔라몬(Telamone, 남자의 형태를 한 돌기둥)의 모습은 제우스 카지노 게임의 크기와 위용을 상상할 수 있게 하고도 남는다.


거인 텔라몬의 기둥
카스트로와 폴룩스 카지노 게임


제우스 카지노 게임을 돌아 한참을 걸어 내려간다. 널따란 폐허 위에 수많은 돌 잔해들이 흐트러져 있고 그 위에 달랑 기둥 4개가 서 있다.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와 폴룩스(Castor & Pollux) 신전이다. 4개 남은 기둥이 우리의 빈약한 상상력의 한계를 테스트한다. 그림이 영 잘 그려지질 않는다. 우리가 지금까지 둘러본 신전들의 잔해와 돌무덤에는 신들은 이미 다 떠나고 단지 그것들을 만든 인간의 흔적만이 보일 뿐이다.




카지노 게임스 사람들은 2,500년 전 외진 이곳에 왜 이렇게 많은 신전을 지었을까? 1~2개도 아니고 20개나? 정말 신들을 모시기 위해서일까? 기원전 581년 이곳 아크라가스 강가에 카지노 게임스 사람들이 아크라가스(Akragas)라는 식민도시를 건설한다. 그 이후 한때 아크라가스(Akragas)는 시칠리아섬에서 지배력을 크게 넓히며 막강한 부와 세력을 자랑한다. 시민들이 상아 침대에 잘 정도로 벼락부자같이 사치를 부렸다고 한다. 필경 그들은 그들의 세력과 부를 보란 듯이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스 본토보다도 훨씬 더 크고 멋있는 신전을 지어 자랑하려 한 것이 아닐까?


당시 한 시인은 '인간들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한때 우리나라 졸부들도 갑자기 큰돈을 벌면 조상의 호화로운 무덤부터 만들어 고향 사람들에게 폼을 잡았었지. 그렇다면 이 많은 카지노 게임들이 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영광을 자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들의 허욕의 잔해에 불과하단 말인가? 수천 년 묵묵히 서 있는 돌들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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