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방 안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틈새로 드나드는 바람을 따라 커튼이 살랑거렸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림 같은 하늘. 파스텔 톤의 푸른 배경과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한 구름.
아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 모습과 달랐다.
'짱구는 못말려'에 나올 법한 2등신 강아지 캐릭터.
큰 머리에 짧은 팔과 짧은 다리. 그가 키득거릴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말풍선에 쓰인 글자들. “낄낄”, “큭큭”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또 시작이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눈앞에 풍경과 사람들이 가끔씩 카지노 쿠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카툰 캐릭터처럼 변했고, 말풍선 같은 효과가 떠다니곤 했다.
카지노 쿠폰 같은 전경은 이전까지 예고 없이 찾아왔지만, 최근엔 거의 내 의지에 따라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반대는 어렵다. 다시 현실을 보고 싶으면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나는 이 현상, 아니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들 이런 걸 보며 사는 거겠지.’하며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그 시절, 친구 세원이와 함께 도시락을 먹다가 무심결에 물었다.
“야, 너도 사람들 모습이 가끔 이상하게 보일 때 있지 않아?”
세원이는 젓가락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뭐? 무슨 소리야?”
나는 당연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갑자기 돼지 캐릭터로 보이고, 친구들은 오리 떼처럼 보일 때 있잖아. 카지노 쿠폰로 그린 것처럼”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야, 너 정신과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게 보인다고?”
그때 처음 사람들이 나처럼 세상을 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얼굴이 확 달아오른 나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농담이야, 농담. 어쩌다 그렇게 보이면 재밌겠다는 거지.”
그날 밤, 방 안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나는 다르다.’
이 문장을 쓰고 잠시 멈췄다. 처음엔 불안했지만, 이내 웃으며 덧붙였다.
‘이거 끝내주는데? 세상을 다르게, 나만의 방식으로 볼 수 있다는 거.’
대학생이 된 나는 여전히 내가 보는 세상을 받아들이며, 아니 즐기며 살고 있었다.
강의실에서는 항상 웃음을 참아야 했다. 특히 교수님이 우스꽝스럽게 보일 때는 더 그랬다.
어느 날, 교수님이 강의 중에 질문을 던졌다. “… 이 문제에 대해 답해 볼 사람?”
그의 얼굴이 커다란 펭귄으로 변했고, 홍조를 띤 얼굴 옆에 커다란 말풍선이 떠올랐다.
나는 킥킥거리며 고개를 숙였지만,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학생, 왜 웃고 있나요?” 나는 고개를 들며 변명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요.”
옆자리 친구 민지가 팔꿈치로 쿡 찌르며 속삭였다.
“야, 너 정 교수님한테 찍히면 진짜 큰일 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 대신 웃었다. 민지는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따라 웃었다.
이따금 도서관에 홀로 앉아 태블릿에 내가 보는 세상을 그렸다.
사람들은 내가 카지노 쿠폰처럼 세상을 본다고 하면 정신이 이상하다고 하겠지.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이 카지노 쿠폰 같은 세상이 진짜고,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전부 잘못된 게 아닐까? 그들이 말하는 정상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따분한지, 단조로운지 몰라서 그런 말들을 하는 거겠지. 나는 세상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을 뿐인데.
인생에서 슬픈 일이 일어날 때, 나는 눈앞의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바꿔버렸다.
이를테면 남자친구가 이별을 고할 때, 그를 짱구로 만드는 거다. 그의 말은 말풍선 속에 갇히고, 얼굴은 귀여운 개구쟁이가 된다.
이별이 우습게 보인다. 그의 표정도, 말투도 다 나를 웃게 만든다.
내가 울지 않고 계속 웃을 수 있도록. 어둡고 슬픈 일은 싫다. 내 인생은 언제나 카지노 쿠폰처럼 유쾌해야 한다.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야 편안하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찢어버린다.
하지만 가끔은 기억을 우습게 만들어도 뒤에 남는 감정이 있다.
방 안에 홀로 앉아 스케치북을 펼치고 정신없이 그림을 그리다 정신을 차려보면, 기괴하고 왜곡된 얼굴들이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도, 왜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아니, 어쩌면 그 뒤틀림 속에 카지노 쿠폰 숨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카지노 쿠폰 얼마나 불안정한 사람인지, 사람들은 몰라야 하니까. 그걸 아는 순간, 모두가 나를 떠날 테니까. 사람들이 날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그들 눈엔 카지노 쿠폰 평범하게 보일까? 아니, 어쩌면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몰라. 카지노 쿠폰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카지노 쿠폰 숨기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하지만… 만약 그들이 내 스케치북을 본다면? 내 머릿속을 잠깐이라도 엿본다면?
어느 겨울, 강의실을 나서던 중 갑작스레 눈이 내렸다.
하얗게 변해가는 캠퍼스를 보며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한 프레임씩 천천히 재생되는 카지노 쿠폰의 한 장면 같았다.
나뭇가지에 쌓이는 눈송이, 웃으며 사진을 찍는 친구들, 카페로 뛰어드는 연인들. 모든 게 과장되고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이건 내가 만드는 건가? 내가 보지 않으면 사라질 세계일까?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걸까? 이건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세상을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건 특별한 일일 텐데… 내가 보는 이 세상이 정말 내 거 맞아? 아니면 내가 이 세상에 사로잡힌 걸까? 귀엽고 유쾌한 풍경일 뿐인데, 왜 가끔은 무섭게 느껴지지? 내가 만든 세상이 나를 삼킬 것 같은 기분. 웃긴 거야, 그렇지?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한다니. 그냥 이대로 살아도 괜찮잖아. 내 세상은 너무 매력적이야. 조금 이상한 사람이어도, 내가 보는 모두가 즐겁고 나도 행복하면 되는 거잖아?
아라레를 닮은캐릭터 하나가 얼어붙은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듯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본능적으로 손을 내뻗었더니, 갑자기 그가 공중에서 멈춘 것처럼 보였다.
손끝에서 무언가 퍼져 나가는 감각이 있었다. 내 눈 앞 모두의 움직임이느려졌다.
카지노 쿠폰… 멈춘 거야?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민지였다.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자, 세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어쩌면 내가 보는 카지노 쿠폰 속 세계가 원래인 걸까.
방긋 웃으며 답했다. “밥 먹으러 가자.”
오랜만에 아빠 가게에 놀러 갔다.
“아빠, 용돈 좀 줘.”
“뭐야, 저번에 준 거 벌써 다 썼어?”
“학기 초라 전공 책 살 거 많단 말이양.”
“으이구, 알았다.”
아빠는 수납기 앞에서 잠깐 고민하다가 오만 원 두 장을 건넸다.
“김예지 양, 여기 용돈 받고 멋진 사람 되세요.”
나는 아빠에게 가볍게 윙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아빠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도. 아니, 어쩌면 이해하려 노력하겠지. 따스한 미소로 나를 다독이며, 내 안의 기괴함도 사랑하려 할 거야.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만든 이 세상이 더 낯설게 느껴질 거야. 아빠가 내 그림을 본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웃어줄까? 아니면 무서워할까? 내 세상은 내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이리 불안할까? 특별한 사람이라는 건 그냥 착각일까? 내가 남들처럼 사는 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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