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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 Apr 22. 2025

미지의 세계

「 미지 」


「 미지 」



눅진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물방울 소리가 벽 너머 어디선가 잔잔하게 울린다. 낡은 드럼, 색 바랜 기타, 계란 판을 덧댄 벽이 눈에 부옇게 들어온다. 머리가 욱신거린다. 누군가 나직이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오른편에서 들린다.


“어, 미지야. 괜찮아? 이제 정신이 좀 드니?”


나는 야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아 눈을 비빈다. “네가… 왜? 여긴 어디야?”


“미안, 얘기가 좀 길긴 한데...”


흐릿하던 감각이 맑아지며, 비누 향과 땀 냄새가 섞인 카지노 게임 추천의 체취가 코에 스민다.


“네가 그런 거야?” 나는 지그시 어금니를 깨문다.


“미안해.”


“무슨 속셈이야? 이번에 신고하면, 진짜 감옥 갈 수도 있다는 거 몰라?”


“그냥… 무서웠어. 네가 다칠까 봐. 그 자식, 느낌이 너무 안 좋아서…” 그가 말끝을 흐린다.


“어쩔 수 없긴 뭐가 어쩔 수 없어, 이 자식아! 여긴 대체 어디야?”


“어, 어, 교회 합주실.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여기밖에 안 떠올라서… 마침 CCTV도 공사 중이라.”


카지노 게임 추천아, 집착이 좀 심하구나. 내가 여지를 준 거니? 아니, 피해자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할 필욘 없지. 그건 그렇고 얘 참 대책 없다. 소심한 줄로만 알았는데, 무슨 용기가 나서 이렇게까지 일을 벌였다니.


“... 내가 봤다니까.” 카지노 게임 추천이 힘없이 웅얼거린다.


“응? 뭐라고?”


그가 눈에 힘을 주더니 다시 입을 뗀다. “그 남자 좀 위험한 것 같아. 느낌이 싸해서 몇 번 따라가 본 적이 있거든.” 카지노 게임 추천이 침을 꿀꺽 삼킨다. “며, 며칠 전에도 봤어. 시온이랑 누가 같이 들어가더라고. 근데 이상해. 같이 들어간 사람들, 나온 걸 한 번도 못 봤어.”


“아니, 왜 걔까지 미행하고 그래? 그리고 그게 다야? 그 집은 사무실도 겸하고 있다고. 파트너 미팅 몰라?” 내 목소리가 갈라진다. “거기 다른 출입구도 있는데 거기도 봤어? 상대는 여자야? 남자야?”


“남자도 있긴 한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도대체!”


카지노 게임 추천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검지를 입에 갖다 댄다. “미, 미지야, 목소리 좀 낮춰 주지 않을래? 부탁이야. 어쨌거나, 오늘 너희 집에 같이 들어가는 걸 보고… 식은땀이 나더라. 그냥, 느낌이 안 좋았어.”


“질투에 눈이 멀었던 건 아니고?” 나는 옅게 코웃음을 친다. “카지노 게임 추천아, 근데 이거 범죄야. 너 쓰레기는 아니잖아?”


“저기,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잠시 진정하고 내 얘기 좀 생각해 봐. 그 자식, 뭔가 이상해… 진짜야. 나, 이번엔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시온이 만나는 사람들, 금세 행방이 묘연해진다. 그의 소행인 것 같지만 증거는 없다. 근데 그게 나는 상관없거든. 카지노 게임 추천은 방황하는 나침반 같다. 반면 시온은, 어긋날 리 없는 메트로놈 같은 남자. 시온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




우린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다. 퀴퀴한 지하 공간에 불편한 침묵마저 감돈다.


“나 목말라.”


“그, 그래? 근처에서 물 좀 사 올게. 한 십 분만 기다려 줄래?” 카지노 게임 추천이 엉거주춤 일어서며 바지 엉덩이를 툭툭 턴다.


핸드폰을 켜 보니, 배터리 표시가 깜빡이며 꺼진다. “지금 몇 시야?”


“어, 지금… 9시가 다 돼가네.”


눈을 기름하게 뜨며 카지노 게임 추천을 바라본다. “시온인 어떻게 했어?”


“아, 그냥 집에 두고 나왔어. 이, 이제 정신이 들었겠지.” 카지노 게임 추천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는다.


“하아, 일단 빨리 물 좀 사 와.”


“어, 그래. 갔다 올게. 어디 가지 말고 있어 줘.”


어리바리 문밖을 나서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정신을 잃은 후 두 시간 정도 지난 건가. 시온, 그 아이 성격이면 지금쯤 카지노 게임 추천이 잡으려고 혈안이 돼있을 텐데. 조심해라, 권카지노 게임 추천.


하릴없이 기다리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다가, “아이고, 삭신이야.” 피가 모자란지 금세 현기증이 인다. 아이씨, 카지노 게임 추천아 왜 누나 일을 방해하고 그래? 그리고 너 왜 이렇게 허술하니? 시온인 그대로 두고 오고, 나는 그냥 가버리면?




일 년 전, 정욱 선배가 당부한 소개팅을 마지못해 승낙했었다. 상대는 선배의 대학교 동기. 그 외에는 별다른 인적 사항을 들을 수 없었다. 직전까지 만나던 개자식 — 바람을 피웠다 — 을 정리한지 보름밖에 되지 않아 별로 내키지 않는 때였지만, 아마 허한 마음을 달래 보자는 심산이었겠지.


별 기대 없이 카페 문을 열고 무표정한 얼굴로 실내를 둘러보았다. 홀로 앉은 테이블은 단 한 곳이었는데, 웬걸, 나는 그곳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짧게 친 아이비리그 헤어스타일, 고양이 눈매, 오뚝한 콧날 — 근사한 느낌 — 가만, 샛노란 반팔 티셔츠? 고즈넉한 카페에서 그의 노란색 티셔츠만이 소리를 지르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미지라고 합니다.”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권카지노 게임 추천이라고 합니다.”


그가 배시시 웃었고, 나는 엄마 미소를 그렸다. 커피 머신의 스팀 노즐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코를 스치는 묘하게 달큼한 금속 냄새에, 나는 눈을 반짝이며 혀끝으로 입술을 적셨다.


그는 낯을 가렸다. 얼굴이 자주 빨개지고 눈길은 종종 갈 곳을 잃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씨는 어떤 일하세요?” 내가 묻자 그는 목까지 붉어졌다.


“아, 저는…” 그가 머그잔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음, 현재는 부모님 회사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백수인 거죠. 아, 이건 개그인데... 웃으시면 됩니다. 하하.”


나도 모르게 얼빠진 표정만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카지노 게임 추천이 난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 그게… 그냥 요즘은 공부 중이에요. 시험 준비요… 좀 애매하죠, 하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측은할 지경이었다. “열심히 준비하고 계시겠네요.” 고작 그의 말을 되풀이하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정욱 선배, 카지노 게임 추천 씨…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더라고요? 아하하”


“잘생겼지? 성격 괜찮지 않아? 원래는 대기업 다녔는데, 뭔 바람이 들었는지 때려치우고 공시 준비한다더라고. 걔 머리 좋아. 금방 붙을걸?”


“시험 준비 중인데 데이트라니, 좀 이르지 않아요?”


“올, 사귈 마음은 있나 봐? 함 만나 봐. 애 괜찮아.”


전화를 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매력적인 얼굴에 건강하지만, 잔향이 없는 사람. 벌떡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다리를 까딱까딱 움직이며, 날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그 흐릿한 존재에 빨간 엑스표를 긋는 상상을 했다.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덕분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곧 다시 만나요!


바로 답신을 했다.


네, 저도 즐거웠어요. 좋은 밤 되세요.


카지노 게임 추천은 이내 애프터를 신청했다. 우리는 그 주말 저녁 이자카야에서 만났다. 좁고 어두운 가게 안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고, 석쇠 위 꼬치가 치익치익 익어가는 소리와 도마 위 생마늘의 알싸한 향이 정신없이 뒤섞였다. 카지노 게임 추천과 서로의 어깨가 부딪히는 순간마다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술이 한 잔 두 잔 돌고 그의 눈이 풀리고 내 머리도 핑 돌고 끝내 우리는 입술을 포갰다.




그가 제안하는 데이트 장소는 카페와 음식점, 간혹 영화 관람이 전부였다. 나는 그 쳇바퀴에 금세 질려 카지노 게임 추천의 손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우리 오늘 서바이벌 게임장 가볼래?”


“용평에 야간 스키 타러 가자.”


“같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따지 않을래?”


카지노 게임 추천은 손사래를 치다가도 막상 발을 들이면 나보다 더 즐거워했다. 작은 새장을 벗어난 새 한 마리가 바람을 타는 법을 배우며 창공을 갈랐다.


벚꽃이 사그라들던 계절, 코트 깃을 세우고 학원 밖을 나서는데 카지노 게임 추천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지야!” 그가 장미 꽃다발, 사람만 한 곰인형을 들고 반겼다. “수업하느라 목말랐지? 여기.”


에비앙만 마신다고 농담 삼아 얘기했더니 계속 에비앙만 사 오는 귀여운 녀석. 물을 마시며 곰인형을 가리켰다.


“오빠, 이게 다 뭐야?” 나는 용케 눈에 반달을 그렸다.


“어, 이거 우리 100일 기념으로, 장미 100송이 준비해 봤어.” 그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리고, 우리 자기를 지켜줄 귀여운 곰돌이 기사야. 헤헤.”


곰인형도 분리수거 가능한지 잠깐 생각하다가, 그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눈을 맞췄다. “나 진짜 감동했잖아. 우리 오늘 어디로 가?”


“아, 서양식 레스토랑인데… 헤헤, 미리 예약해 놨어. 버스 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버스?” 인형과 장미 다발에 번갈아 눈길을 주며 물었다. 그가 멋쩍어하며 말을 바꿨다. “아, 저… 우리 택시 탈까?”


택시가 멈춘 곳은 어둑한 시장 골목 입구. 80년대식 레스토랑 간판이 빛바랜 조명 아래 걸려 있었다. 침묵 속에 그를 따라 들어가 선홍색 스테이크를 묵묵히 썰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아, 언제 정신 차릴래. 그러나 우려와는 다르게, 육즙 가득한 고기 조각은 풍미가 좋았고 내 몸을 따듯하게 덥혔다.




카지노 게임 추천과 나의 옷차림이 가벼워질 무렵, 정욱 선배와 함께 만나 셋이 잔을 부딪쳤다.


정욱 선배가 물었다. “근데 데이트는 자주 하니? 카지노 게임 추천이 공부하느라… 돈도 별로 없을 테고.”


빨대로 블러디 메리를 쪽쪽 빨며,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더니 카지노 게임 추천이 답했다.


“그냥… 내년에 꼭 붙자고 마음먹고 있어. 요즘은 좀 천천히 하는 중이야. 미지가 비용을 많이 부담해서 미안하지…”


머리를 긁적이며 사람 좋게 웃는 카지노 게임 추천을 따라 기계적인 웃음을 흘리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꺼내기 싫었던 생각을, 굳이 꺼내서 들이미니 숨이 턱 막혔다. 목까지 발그레하게 취해 웃고 떠드는 카지노 게임 추천의 옆모습을 힐끗 바라보며, 혀로 이를 핥았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와의 마지막 날, 카페에 감도는 커피 향이 불쾌하게 느껴졌었다. 창밖에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는... 한숨을 길게 내쉬자 허파 끝까지 차오른 말들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그만하자, 오빠.”


“응? 뭘? 아, 아… 다 먹은 거야? 이제 갈까?”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랑? 그건 모르겠고,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아, 넌 앞으로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할 거야. 난 계속 생긴 대로 살 거고.


“헤.어.지.자.고.”


그가 선물한 목걸이를 끌러 자리에 두고 카페를 나왔다. 그는 나의 세계에 입장 불가.


카지노 게임 추천은 이별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척하더니 사나흘 후부터 구질구질하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오밤중에 뭐 하냐는 둥, 지나가다 널 봤다는 둥, 생일 축하한다는 둥. 연락이야 차단하면 그만인데, 그가 먼발치에서 날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아량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온을 만났다. 그와의 세 번째 만남, 그날따라 카지노 게임 추천의 밋밋한 체취가 가깝게 느껴졌지만 보란 듯이 시온과 함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시온은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한 남자다. 기준은 밖에서 찾지 않았고, 자신이 정한 질서 위에만 발을 디뎠다. 검은 강철 향이 짙게 밴 남자. 자석의 반대 극처럼 나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이 아이는 나의 세계에서 VIP. 우린 내내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식사 후에는 그가 내 손을 잡도록 내버려 두었다.


“미… 미지야!” 느닷없이 카지노 게임 추천이 우리 테이블 앞에 나타났다.


“카지노 게임 추천 오빠?! 여기서 뭐 해?”


“우연이네, 정말! 나도 여, 여기 단골이거든… 이 분은 누구야? 사촌? 아니면 친오빠? 둘이 좀 닮았다. 아하하.”


일그러진 표정으로 슬쩍 시온 눈치를 살피니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빠, 아니 카지노 게임 추천 씨. 우리 데이트 중이야. 이쪽은 시온 씨, 인사해." 둘은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리 아직 식사 중이야. 카지노 게임 추천 씨도 맛있게 먹고 가.”


카지노 게임 추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이 분이 너 부,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와 봤어. 별일 어, 없는 거지?”


냅킨으로 입을 닦고 냅다 한 마디 쏘아붙이려는데, 시온이 벌떡 일어섰다. 180 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큰 키에 걸린 냉정한 표정, 나조차 마른침을 삼키게 하는 아우라.


“카지노 게임 추천 씨, 방금 전 들으셨다시피 저희 아직 식사 중이거든요. 볼 일 다 보셨으면 이만 가던 길 가주셨으면 합니다만?”


“아, 아… 네네 그러셨구나. 그, 그런데 저 아직 미지와 얘기 중이라서요.” 카지노 게임 추천은 말을 절면서도 의외로 시온 앞에서 굽히지 않았다. 시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레스토랑 안의 다른 손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나는 최대한 차갑게 말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씨,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


“미, 미지야, 나 공무원 시험 준비 그만뒀어. 너처럼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 찾아 도전해 보려고. 또 마음에 안 드는 점 있으면 알려줘. 내가 고칠게. 나한테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되겠니?”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안 돼. 꺼져.”


카지노 게임 추천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카지노 게임 추천을 바라보던 시온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네, 여기 홍대 삼거리에 위치한 크레아티바입니다.” 그는 카지노 게임 추천의 팔을 꽉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는 놈을 붙잡고 있어요. 빨리 와 주세요.” 시온은 카지노 게임 추천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카지노 게임 추천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스쳤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피해 눈을 질끈 감았다.




합주실에 끌려오기 몇 시간 전, 처음으로 집에 시온을 초대했다. 시온은 깜짝 선물이 있다며 커다란 가방과 함께 나의 공간으로 들어왔다. 집 구경을 시키고 와인을 잔에 따르던 중, 도어 벨이 울렸다.


“치킨 배달이요.”


“치킨 시켰어?” 시온이 물었다.


“아니, 안 시켰는데? 잘못 왔나 봐. 아니라고 해야겠다.”


“뭡니까? 안 시켰어요.”


모자를 푹 눌러쓴 배달원이 더듬거렸다. “어, 여기 101동 1305호 맞는데…”


“내가 나가볼게.” 시온이 무심히 현관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하얀 물체가 날아 들어왔다. 퍽 깨지는 소리와 함께 금세 매캐하게 퍼진 연기. 느닷없는 테러에 놀라 어쩔 줄 몰라하던 중, 어느새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 의식을 잃었던 것이다.




끼이익.


“미지야! 안에 있어?”


시온? 빨리도 찾았네.


“오빠!”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볼이 가볍게 달아올라 침을 꿀꺽 삼킨다.


“미지야!” 시온이 재빨리 달려와 내 손을 잡는다. “걸을 수 있겠어?” 묵직한 그의 내음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역시 너는 나의―


나는 대답 대신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젓는다.


시온은 나를 둘러업고 문밖으로 나와 계단을 오른다. 밀착한 몸에서 탄탄한 근육이 느껴진다. 동작에는 흐트러짐이 없지만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현관 유리문을 통해 스치는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춘다. 우리의 그림자가 벽에 드리워져 두 사람이 한 몸처럼 춤추는 모양새를 그린다.


“나 납치한 사람 못 봤어?”


“못 봤어. 누구지? 혹시 권카지노 게임 추천?” 항상 포마드로 깔끔하게 빗어 넘기던 그의 머리가 용수철처럼 삐죽삐죽 흐트러져 있다. “일단 경찰서부터 가자.”


건물 현관을 빠져나오는데 문 옆에 덩그러니 모로 누운 에비앙 하나가 눈에 스친다. 나는 그의 목을 꼬옥 감싸안고 속삭인다. “나 힘들어. 일단 집으로 가자.”


“알았어.” 그의 귀가 씰룩거리고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서서히 나를 달군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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