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입니다.
카지노 게임가 된 이들이 원가족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유년의 따뜻한 기억과 추억이 있는 누군가에게는 원가족과의 만남이 또 다른 행복의 원천이 되겠죠.
하지만 어린 시절 받은 카지노 게임와 아픔 때문에 원가족과의 만남이 힘든 누군가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늙어버린 카지노 게임님, 나름 최선을 다해 힘들게 키워준 그분들에게 마음속 카지노 게임를 운운하는 자기 자신에게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할 거고요. 그럴 때면 늘 그랬듯 황급히 원망의 감정을 눌러 버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외면한 묵은 감정은 가만히 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냉장고가 아무리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해 준다지만, 주기적으로 청소해 주지 않으면 음식이 곪아버리는 것처럼요. 내 마음에 눌러 놓은 감정은 무의식 중에 튀어나와 삶을 흔듭니다.
카지노 게임님의 가치관에 억압당했던 경험, 카지노 게임님의 말과 행동들에서 자신의 존재가 하찮다고 느꼈던 경험,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낀 경험, 형제자매와 비교당했던 서러운 경험, 잘했어도 칭찬 한번 듣지 못했던 경험, 애정을 갈구해서 노력했으나 야단만 맞았던 경험들을 겪으며 마음속에 시나브로 카지노 게임가 쌓입니다.
착한 사람들은 이런 카지노 게임를 받을 때,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입니다. 카지노 게임는 안으로 깊이 쌓여 좌절이 됩니다. 좌절이 오래되면 분노로 변합니다.
문제는 이 분노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녀에게 향한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자 제프리 영은 <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에서 ‘학대받은 사람은 때때로 학대자가 된다. 실은 대부분의 아동학대자들은 어릴 적에 학대받은 경우가 많다.’라고 했습니다.
카지노 게임은 사람이 자녀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것이죠.
무서운 것은 이 모든 일들이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일이라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고3 담임을 할 때 만난 별이 엄마가 그랬습니다. 3월 초, 경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반 별이 엄마가 가정 폭력으로 신고를 당했다더군요. 별이가 친구들과 놀다가 밤늦게 귀가했답니다. 알고 보니 별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두들겨 맞고 자랐는데요. 이 날도 엄마에게 맞았답니다. 폭행당할 때 별이 전화기가 켜져 있었고, 별이가 맞는 소리를 들은 친구가 전화기 너머로 들었답니다. 이 친구가 경찰에 가정 폭력으로 신고한 것이었죠.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바로 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는 ‘이런 일로 웬 유난이야?’라는 식으로 반응했습니다.
“걔는 대가리에 똥만 들었어요. 갠 맞아도 싸다고요.”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이를 때리는 건 아동학대죄예요. 범죄잖아요. 앞으로 때리시면 안 됩니다.”
별이 엄마는 전화기 너머로 황당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도 맞고 컸어요.”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면서 책으로만 보던 ‘폭력과 학대의 대물림’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엿본 기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른이시잖아요. 어머니가 그 고리를 끊으셔야죠.”
별이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겠죠. 무의식 중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시는 별이를 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다음 날, 별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저희 엄마에게 따졌거든요. 내가 쪽팔리게 아동 학대 신고당한 거 다 엄마 때문이라고요.”
“그랬더니 뭐라고 하시던가요?”
“엄마가 그게 왜 자기 잘못이냐고 했어요. 우리 땐 다 때리면서 애 키웠는데, 넌 왜 유난이냐고요.”
예상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이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원래 카지노 게임님들은 사과하지 않아요. 힘들게 키워놨더니 왜 원망하냐며 오히려 화를 내시죠.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러니 카지노 게임님께 사과를 받으실 생각을 하면 안 돼요.”
그렇습니다. 카지노 게임님들은 대부분 사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섭섭해하실 것입니다. 혹은 사과를 하더라도 현재 상황을 개선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 전 어떡해야 해요?”
“어머니가 폭력의 대물림을 끊으셔야죠.”
“그걸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어머니가 어머니 자신의 카지노 게임가 되어주세요. 별이 나이 때, 엄마한테 듣고 싶었던 말, 이해받고 싶었던 말을 스스로에게 들려주세요. 그리고 꼭 가족 상담 별이랑 받아 보세요.”
별이 엄마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제가 담임을 하는 1년 동안 정말로 별이를 때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폭력 충동이 들 때쯤이면, 저에게 전화를 하곤 했습니다.
“선생님, 저 별이 때리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려요. 걘 좀 맞아야 해요.”
“아뇨. 어머니. 절대 때리지 마시고, 오히려 이따 아이 오면 안아주세요. 어머니도 어머니 자신을 꼭 잘 돌보시고요.”
그 말을 반복해 주었습니다. 매번 별이 엄마는 마음을 다잡는 듯했습니다.
별이 졸업을 앞두고 또 별이 엄마가 별이의 못마땅한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별이 칭찬할 만한 일은 없나요?”
별이 엄마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별이가 자기 용돈 아껴서 이번에 저한테 스마트 워치 사 줬어요. 걔 참 착하긴 해요.”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이렇듯 자기를 학대한 카지노 게임조차 사랑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별이 엄마에게 앞으로 별이의 좋은 점을 잘 찾아달라고 당부하며 마지막 통화를 마쳤습니다.
별이 엄마처럼 내 탓으로 생기지 않은 카지노 게임를 나도 모르게 대물림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별이 엄마의 경우처럼 카지노 게임에게 엄청난 육체적, 신체적 학대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커가면서 크고 작은 카지노 게임를 받습니다.
이런 카지노 게임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프리 영은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을 멈춰라. 당신은 학대를 받을 만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자신이 부족해서 카지노 게임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나는 카지노 게임을 만했던 존재가 아니다.”
이 말을 스스로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어릴 때는 카지노 게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리처럼 마음에 박힙니다. 카지노 게임의 비난이나 꾸지람을 듣고 자랐다면, 스스로가 부족한 존재라는 마음의 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에게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그 사람이 정말 부족한 사람은 아닙니다.
살면서 피치 못하게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는 것처럼,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뿐입니다. 카지노 게임님도 그 카지노 게임님들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소통 기술이 없어서 벌어진 일들입니다.
카지노 게임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카지노 게임님에게 찾아가 따져 묻는 것만이 답이 아니더라고요. 카지노 게임님이 이미 돌아가신 경우도 있고요. 현실의 카지노 게임님은 내게 카지노 게임를 준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카지노 게임님께 카지노 게임받았다면, 그건 분명 카지노 게임님 잘못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카지노 게임님께 사과를 받아도, 그 시절 카지노 게임는 아물지 않습니다. 카지노 게임님이 사과했는데도 여전히 자신에게 원망의 마음이 남는다면 다시 한번, 그 마음을 누르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감정을 충분히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받기에도 모자랐을 시간에 카지노 게임받고 아파했던 그 시간을, 그 카지노 게임를 이겨내려 애쓴 시간을 애도해야 합니다.
충분한 애도 시간을 갖은 후, 카지노 게임를 내 자녀에게 대물림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카지노 게임를 대물림하지 않는 답은 ‘책임’에 있습니다.
그 카지노 게임를 아물 수 있게 하는 건 오직 현재의 나뿐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제는 내 인생이 카지노 게임님 책임이 아니고, 내 책임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됩니다.
<라디오스타에 탤런트 진서연이 나와서 ‘엄마적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릴 때 진서연은 딸 셋 중 둘째 딸로 태어나 보살핌을 못 받고 자랐다는 결핍이 있었다고 해요.
그럴 때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 내가 나를 돌봐야겠다는 것'을깨달았다고 해요.
자식을 돌보듯 나를 잘 먹이고, 입히고, 재우면 되는 일이라고요.
제게도 저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날마다 ‘오늘은 내가 날 위해 뭘 해 줄까?’를 묻는 것입니다.
작년 벚꽃이 만개할 때, 저는 제에게 화사한 벚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퇴근하고 먹고 설거지하고 나가면 해가 져 버려서 꽃을 제대로 못 보니까, 전날부터 다음 날을 위해 조금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아침에 저녁에 먹을 것까지 미리 챙겨놓고 설거지도 간단히 해 두는 것. 저녁을 일찍 먹고 봄날 산책을 만끽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가는 것도 내가 날 위해 해주는 일입니다. 좋아하는 대공원이 있는데요. 목련이 만개할 때 갔더니, 목련이 이렇게 말을 해주는 것 같더군요.
“늦지 않게, 딱 맞게 날 보러 와 줘서 고마워.”
저는 날마다 ‘오늘은 내가 날 위해 뭘 해 줄까?’ 묻습니다.
미래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기 위해 아픈 곳을 빨리 치료하는 것, 달리기를 시작한 것, 제 꿈인 ‘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날마다 책 읽고 글 쓰는것, 날 위해 요리해서 예쁜 접시에 음식을 먹는 것, 내 노래 취향을 찾기 위해 음악을 들어보는 것.
제가 저를 위하는 일을 해 주는 일을 반복하자, 제 자신이 기특해졌습니다.
이 질문으로 저는 제 인생을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때는 제 카지노 게임와 결핍을 채움에서 얻으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서 어릴 때 못 받았던 사랑과 기대를 채우려고 했고, 남들보다 뛰어난 성취를 해서 어릴 때 못 느꼈던 존재감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기대니, 이 카지노 게임와 결핍이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남들도 다 자기 삶을 사느라 바쁜 사람들이거든요.
이제는 카지노 게임를 나아감으로 치유합니다.
나를 돌보고 성장시키며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치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일을 내가 계획해 보는 것, 그것을 묵묵히 실행해 보는 것, 소모적인 관계를 멈추고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과 만나 함께 성장하는 것.
내가 나의 안부를 묻고 나를 챙겨줄 때, 카지노 게임와 결핍이 서서히 채워지더라고요.
요즘 제 일상은 충만합니다. 제가 저를 가장 위하니까요.
그렇게 카지노 게임님이 어릴 때 못 해 채워준 결핍을 원망하지 않고, 제 삶을 기쁨과 소망으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귀히 여기자, 제 아이를 더 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한때 저는 제 마음을 '카지노 게임가 준 카지노 게임'라는 빙하가 할퀴고 간 피오드르 해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지형이 다 깎여 나간 '결핍 덩어리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스로 저를 위해 주고 가꾸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피오르드 해안에 비록 빙하에 쓸려나간 자국은 있을지언정, 그 해안에도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 아름답고 독특한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 알게 되었습니다.
피오르드 해안이 그 환경에 적합한 수많은 동식물들의 터전이 되어준 것처럼, 제 마음도 제 아이에게는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안식처가 되었더라고요.
설입니다.
원가족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얽히고설킨 감정의 실타래가 복잡한 만큼 누군가에게는 힘든 시간일 것입니다.
올 설에 어떤 마음이 들든, 내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면 어떨까요?
있는 힘껏 자기감정을 보듬어 주세요.
그 후, 카지노 게임에게 받았던 카지노 게임로 나도 모르게 내 아이에게 주고 있었다면, 아이를 한번 꼭 안아주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카지노 게임받았음에도 애쓰며 살아온 자신도 마음으로 꼭 안아주세요.
당신은 카지노 게임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사랑받기에 부족함 없는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