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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Mar 12. 2025

20년(5) - 카지노 게임 추천, <바냐삼촌과 <세 자매

조락의 두 가지 사례, 아스트로프와 안드레이




직업은 연출자이지만 최근 몇 차례 배우로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습니다. 안똔체홉극장에서 올리는 워크숍과 본 공연들이었어요. <바냐삼촌 워크숍에서는 조락한 의사인 ‘아스트로프’ 역을 맡았고요, <세 자매 본 공연에서는 세 자매의 남자 형제인 ‘안드레이’를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체홉의 세계에 더 깊이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캐스팅된다’는 것이 상당히 설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지요. 누군가가 나를 통해 어떤 캐릭터의 구현을 상상한다는 것은 제게 완전히 낯선 일이었으니까요. 저는 카메라 뒤나 편집실에서 세계와 인물의 최종 구현에 힘쓰는 것이 주 일이죠. 조금 더 넓히면 대본을 완성해 나가는 데에 방향타를 같이 잡고 디테일을 더카지노 게임 추천 입장이거나요. 배우의 위치에 선다는 것은 교집합 없는 입장 바꾸기였습니다.


일단 제 외적 모습이 연출로서 스스로의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화술이나 액션, 표정까지 뭐 하나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그래도 하기로 한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다행히 카지노 게임 추천 작품은 긴 시간동안 워낙 많은 해석을 거쳐왔기에 참고할 것이 많았습니다. 연기를 공부처럼 하는 것이 늘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의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습니다. 과문했던 카지노 게임 추천의 장막들에 대해서 공부해들어가면서 젖어들 듯 인물들에 들어갔습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도대체 극작가가 자신의 인물들에 대해 따뜻한지 차가운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듭니다. 특히 희곡만 읽어서는 한 장면에서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체적인 흐름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가 어려웠어요. 무대에 섬으로써 카지노 게임 추천 장막들의 독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특히 배우들에게는 자기답게 다양한 뉘앙스로 인물의 결들을 해석할 수 있는 군상극이라는 점에서, 팀의 사기를 돋우는 종류의 극입니다.


4개의 막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막마다 자기 씬이 확실하게 있는 만큼, 그 막 별 차이와 흐름을 구성카지노 게임 추천 재미가 컸습니다. 전반적인 해석과 막별 목표를 구축카지노 게임 추천 것은 연출의 일과 다르지 않아 해낼 수 있었지만, 가장 애를 먹은 것은 그 배역에 더 들어가 몰입카지노 게임 추천 것이었어요. 어쩌면 그 경험을 하려고 한 일이었으니 쉬울리가. 시선 처리와 살아있는 리액션을 수행카지노 게임 추천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기술적인 팁들이 필요했는데, 팁으로부터 접근하면 연기에 썩 좋지는 않지요. 그걸 모르지는 않지만 미로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고전을 바탕으로 여러번 이 극단에서 연행된 레퍼토리 공연들이어서, 기본 동선들은 나와있는 상태였지요. 동선을 발견하며 쌓아나가는 과정이 없었어요. 그 동선에 걸맞는 동기와 반응들을 채워넣는 일이 알쏭달쏭 했습니다.


소리 역시 애를 먹었습니다. 다행히 소극장이라 대사 전달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볼륨을 키우면 키울수록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스스로를 극복해야 했어요.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을 어떻게 수행하고 넘어가느냐의 문제도 컸지요. 학원이 아니니 전문적으로 제게 집중된 교정을 바랄 수는 없었고, 제가 가능하고 가진 것 안에서 스스로 가다듬어야 했어요.


표정 처리도 어려웠어요. 어떤 표정을 목표로 한다기보다, 경직되어 있다거나 그 캐릭터 밖에 있는 듯한 흐름 끊기는 표정이 종종 나오는 것 같은 게 신경 쓰였지요. 깜빡깜빡 몰입이 끊기거나 다음 대사 생각카지노 게임 추천 게 들키는 것 같았어요. 실제 무대오르기 직전까지, 혹 몇 군데는 오른 후에도 어찌나 깜빡깜빡하던지.


연극학도 출신으로, 또 현장 영상연출자로 나름의 연기 기준이 있는데, 그게 지금 이 무대의 나에게 적절한 건지 헛갈리기도 했고요. 특히 드라마 작업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경계시키는 것이 자기연민이 드러나는 연기, 혹은 자기 행위에 대한 평가를 내포하고 있는 연기 등등입니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 추천의 대사는 대부분 자기 연민과 자기 평가가 드러나 있어요. 제 생각과 정반대의 대사들인 것이지요. 이걸 어떤 기준으로 연행해야 하는지 초반엔 꽤 헤맸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캐릭터의 메타인지 부족? 혹은 씬 전체의 톤을 생각하며 서브텍스트를 잡아나가 보았지요. 그러니 나름의 욕망과 목표들이 조금 새롭게 보였습니다.


<바냐삼촌에서 제일 멋지고 재미있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아스트로프입니다. 극 내 인기인이죠. 환경보호와 환자 구제라는 직업과 목표와 철학이 있고, 알콜중독과 세상과 스스로를 혐오하는 결핍이 있죠. 처음엔 이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에 스스로가 택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오를 날이 다가오니 이렇게 자신없고 ‘겸손’한 상태로는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죠. 그러고 나니 기댈 수 있는 건 소위 ‘메소드’ 상태였습니다. 아스트로프는 자신의 상처를 유쾌함과 플러팅으로 돌파해보려는 중년남자입니다. (홍상수 영화의 남주들... 이라고 하면 체홉이 싫어할까요. 일단 체홉이 19세기 남자라는 걸 염두에 둡시다.) 그러니 배역과 스스로의 싱크로율을 올리기 위해 온갖 감정과 경험들을 다 끌어내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서서히 나름의 몰입상태로 들어가, 배역의 감정과 스스로의 감정을 일치시키는 기간을 보냈습니다. 스스로를 놀리고 싶어 죽을 지경이면서도 일종의 ‘달콤한 우울’ 속에 빠져서 허우적 댔죠. 저는 이 상태를 스스로에게 ‘꼴값’으로 정의합니다. 아주 그냥 대배우 나셨죠.


<세 카지노 게임 추천에서 맡게 된 안드레이는 상황이 달랐어요. 극 중에서 가장 찌질한 인간입니다. 애초에 예상하던 배역이 아닌 급하게 바뀐 캐스팅이어서, 사전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연습이 시작됐어요. 그 인물에게 마음 붙일만한 장점이나 목표랄 게 보이지 않았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드레이는 다른 인물들과의 소통이 거의 끊겨있다시피한 인물입니다. 앙상블을 통해 캐릭터를 구축해가기도 어려웠어요.


그러다보니 아스트로프 때와는 다르게 배역을 더 이성적으로 접근하게 됐습니다. 아스트로프는 개인과 배역을 포개는 방식으로 구축을 고민했다면, 안드레이는 개인과 배역을 명확하게 구분해놓고 끌어다 쓸 수 있는 표현적 부분들을 끌어쓰는 쪽으로 가게 됐어요. 결과적으로는 그게 더 효과적인 접근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리고 이게 인간이 가진 아전인수적 습성인 것 같기도 해요. 나보다 나은 배역을 만나면 그 배역의 장점과 자신을 포개고 싶어지고,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배역을 만나면 확연히 거리를 두고 작업적 측면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 따지고 보면 연출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고결한 지점을 추구하는 이야기를 만나면 연출적 이입이 강해지고, 인간의 저열한 부분을 다루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 지적 접근이 더 강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한 이야기에 모든 것이 섞이기 마련입니다. 두 가지 접근법을 유연하게 오가며 이야기와 배역에 적합한 순간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전례들을 찾다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앤소니 홉킨스가 1970년 BBC의 연극의 드라마화 버전들을 찍으면서 <바냐 삼촌의 아스트로프를, <세 자매의 안드레이를 맡았다는 것 아니겠어요? <세 자매는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지만 <바냐 삼촌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두 편 모두에서 앤소니 홉킨스의 연기에 대한 평이 그리 좋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그가 했던 고민들과 같은 결의 고민을 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초보 배우에게는 흐뭇한 일이었어요. 판의 크기와 나의 위치가 다르다 할지라도 고민의 디테일은 같았을테니까요. <세 자매에서는 앤소니 홉킨스의 연기를 통해 좀 더 저다운 캐릭터 라인을 잡아가 볼 수 있었습니다.


배우로 체홉 장막의 앙상블 안에 들어와 있는 일은 행복했습니다. 못나고 가망없지만 안스러운 인간들이 벌이는 무대의 소요를 세 시간 동안 살아간다는 것. 연출은 외로운 직업입니다. 반면 배우의 입장은 개인의 친소관계와는 무관하게, 하나의 팀으로 존재하는 유대가 더 깊게 느껴졌어요. 연출하면서 부러운 점이기도 했지요. (물론 다른 종류의 외로움이 또 있지만요.) 극장에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입을 풀고, 의상을 입고, 간단한 분장을 하고 막 뒤에서 기다리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행위는 담담하면서도 긴장되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즐거웠어요. 이는 연출님이 이끌어간 프로덕션의 미덕이기도 했고, 동료 배우들의 인품이기도 했으며, 모든 배역을 배려하는 체홉 극의 구성 덕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끝나고 나니 사람들이 묻습니다. 워크숍과 본 공연으로 연기를 하고 나니 앞으로 연출이 달라질 것 같냐고. 글쎄요. 선무당이 사람 잡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겠죠. 연기 지도의 측면이 달라질 것이라기보다는, 연출의 입장에 더 담담히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의 선 자리와 보이는 풍경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면서요. 배우에게는 오히려 말이 줄 것 같아요. 쓸 데 없는 말을 덜 할 수 있다면 그게 발전이겠지요.


또 묻습니다. 앞으로 계속 할 생각이 있냐고. 그럼 전 답하곤 하죠. 그게 제 마음대로 되나요? 불러줘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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