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갔더니 한쪽 가득 수박이 쌓여있었다. 문득 스무 살쯤, 슈퍼마켓 캐셔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한 카지노 게임, 커다란 수박 하나를 3천 원에 주신다길래 욕심 껏 두 덩이 샀다. 가지고 갈 방법은 따져보지도 않은 채.양손에 끈으로 묶은 수박을 들고 휘청이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 갑자기 쏟아지던 소나기를 맞고그대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깨어져빨갛게 드러난수박 속살 위로 무심하게 내리던 빗물과수박물이 든티셔츠. 끝내빈손으로 집까지 올라가며 나도 모르게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 일은 이후에도두고두고 이야기할 웃지 못할 추억이 됐다. 어처구니 없이 무모했던 스무 살의 카지노 게임. 그날, 수박 옮기기에 성공했더라면 내가 한때 슈퍼마켓 캐셔였단 사실은 까맣게 잊고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친구 M을 바다에서 잃었다. 친구들과 떠난 첫카지노 게임 여행이었다. 월드컵 응원을 한 바탕 치른 그다음 해였을 것이다. 그날 함께 바다에 놀러 갔던 친구들은 모두 신발까지 잃어버렸다. 모래사장에 신발을 벗어 묻어두고 물속에 뛰어들었었기 때문이었다. 맨발로 버스를 탔는데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이후 리아의 <네 가지 하고 싶은 말이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그 해 카지노 게임 내내 그 노래를 들었다. 가사를 보며 작사가도 우리와 같은 일을 겪었던 걸까,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비하인드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카지노 게임에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카지노 게임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만나는 날이 왔다면 그는 이미 꽤 가까운 사람이 된 것이리라. 다행히 아직은 그런 사람들이 몇몇 남아있다.
|나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 H도 몇 년 전 카지노 게임에 떠났다. H가 있던마지막 카지노 게임에주고받던카톡 메시지들은 아직도 남아있지만, H의 이름은 (알 수 없음)으로 변경되어 있다. 나는 이제 H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H와 자주 가던 시장 안 반찬가게에서 오랜만에 오이소박이를 샀다. 인기가 많아서 갈 때마다 한 두 개 밖에 남아있지 않는.H가 아니었으면 나는 거기 오이소박이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오이소박이 맛은 변함이 없었다. (이 글을 쓰고 몇 달 지나 반찬가게도 폐업했다.)
|카지노 게임에 혼자 강릉에 갔었다. 처음으로 혼자 가는 여행이었다. 바다를 보고 물회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노트북을 가져가 일도 조금 했다. 맥주도 마셨다. 새로 지은 숙소에서 기념품이라며 꽃 화분을 주었고, 가져온 그 꽃은 이제 나무가 되었다. 아직도 가끔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없는 그때의 기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