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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Apr 25. 2025

[노파에세이] 구덩이 속 카지노 쿠폰와 한강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



카지노 쿠폰


어젯밤 꿈에 나는 방을 온통 밀실로 만들고 있었다.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창을 막고 문도 막았다.


그런데 낯선 카지노 쿠폰가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경을 끼고 팬티만 걸친, 못생기고 더러운 카지노 쿠폰였다. 아무리 나가라고 해도 카지노 쿠폰는 요지부동이었다. 자신은 이 방에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목청껏 엄마를 불렀다.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는 카지노 쿠폰도 들어왔다. 나는 저놈을 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카지노 쿠폰를 끌어내는 대신 방안에 구덩이를 파서 카지노 쿠폰를 집어넣었다. 카지노 쿠폰는 구덩이에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엄마와 아는 카지노 쿠폰를 한 번씩 돌아봤다. 그들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식칼을 꺼내 구덩이에 앉아 있던 카지노 쿠폰를 찌르기 시작했다. 꺼져, 꺼져! 하면서 카지노 쿠폰의 머리와 살찐 얼굴을 마구잡이로 찔러댔다.


꿈에서 깬 나는 이 정신병자의 마음속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생각하며 영 심란한 하루를 보냈다.


친구가 저녁에 양꼬치를 사줬다. 고기 먹는 꿈이었나 보다.


*

하루에 8시간씩, 10시간씩 집중해서 쓰다 보면 왜 몇 달씩 이런 쓰레기에 시간을 쏟고 있는지 의아해진다.


어서 나가서 남들처럼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할 시간에 대체 왜 출판도 안 될 카지노 쿠폰 같은 것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울렁이면서 급격히 불안해진다. 모든 것이 망할 것 같다. 월세도 식비도 못 내고 책상 앞에서 말라가다가 어느 날 모래처럼 우수수 부서져 내릴 것 같다.


나이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망하면 딴 거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이 안 드는 나이. 이 나이에도 이러고 있으면 어쩌자는 것이냐, 하며 스스로를 주저앉히는 나이. 마흔이라는 나이는 그런 거였다.


*

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었다. 작가가 서른두 살에 쓴 소설이다. 살과 조각과 진짜와 가식에 관한 이야기다.


“오래전부터 이 아이는 따뜻함과 사랑을 혼동해왔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희미한 쓸쓸함을 느꼈고, 그보다 희미한, 까닭을 알 수 없는 구역질을 느꼈다.”


살이 많았던 아이는 오랫동안 추워했기에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온기를 주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꼈다. 고마움을 사랑이라고 착각했다. 서른두 살의 나는 그런 건 알지 못했다.


한강은 사람들이 꺼릴 만큼 어두운, 심연 속 이야기를 주로 쓴다. 그런 이야기를 30년 넘게 써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겨 읽을 수도 없는 그런 고통의 이야기를 작가 인생 내내 쓸 수 있었던 건, 쓸 때마다 확신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진실을 쓰고 있다. 이 감정, 이 상황, 이 사람들에 관한 절대적인 진실을. 최선의 문장으로 쓴다는 확신.


*

나는 내가 쓰는 것에서 그런 확신을 느끼지 못한다. 쓰면 쓸수록 이런 건 뭐하러 쓰나, 하며 의심과 불안을 느낀다. 나는 진실을 쓰고 있나? 교훈을 쓰지. 교조적이지. 가르치려 들지. 드러워서 원.


구덩이 속 살찐 카지노 쿠폰는 내가 느끼는 그런 불안과 의심일 것이다. 카지노 쿠폰가 방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고 전부 그만두고 싶어진다.


그러므로 어제 그 더럽고 못생긴 카지노 쿠폰를 좀 더 확실하게 죽였어야 했다.


다시 오너라. 이번엔 엄마와 아는 카지노 쿠폰가 없어도. 혼자서도 능히 너를. 두 번 다시 구덩이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84178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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